초삼이의 고급 질문 1. 단어와 문법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33

by 최영훈

질문의 수준이 달라졌다.

"아빠 관념이 무슨 뜻이야?"

"왜?"

"고정관념이란 말을 쓰고 싶어서."

결국, 사물과 상황에서 시작해서 개념과 관념을 거쳐 고정관념까지 나아가서 편견과 선입견까지 설명했다. 거실에 큰 테이블을 놔둔 덕에 딸이 독서록을 쓰거나 숙제를 할 때, 난 딸과 마주 앉아 책을 본다. 그 덕에 딸은 질문이 생기면 바로 질문한다. 전날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딸이 일기를 쓰다가 물었다.

"아빠,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가 맞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가 괜찮아?"


내심 감탄했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것도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에 문장은 함께 한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함께 A, B, C를 할 수 있는데 그중 B를 했다는 의미가 강하다. 반면 뒤에 문장은 "저녁 식사"라는 목적을 누군가와 함께 해결했다는 의미가 강하다.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딸이 질문한 문장 중에서 고르면 그 뉘앙스의 차이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은 "데이트할 때 뭐 했어?"라는 질문의 답으로 적절하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저녁 혼자 먹은 거야?"라는 질문의 답에 걸맞다. 그래서 결국 앞에 질문의 답은 "함께 넷플릭스만 봤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고, 뒤의 질문은 "친구와 함께 먹었어."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


글로 먹고사는 이의 예민함

요즘 지역 방송에서 아파트 광고 하나가 나오는데 뉴스를 볼 때마다 보다 보니 거슬리는 걸 피할 수 없다. 카피는 "광안리 해변가에 브랜드가 옵니다."이다. 알다시피 이건 문법상 틀리다. <해변+가>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건 한글 문서에 입력해도 알 수 있다. 빨간 줄이 뜬다. 그럼 왜 이런 카피가 방송을 타게 됐을까? 보통 광고 카피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테스트를 받는다. 카피라이터-디자이너-AE-심의 담당-사장-광고주 실무자-광고주 대표-제작자-방송사 등등. 이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 카피가 무사히 통과됐다면 광고주가 이 표현을 고집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꼰대가 돼 가는지 요즘 부쩍 우리말 표현과 문법에 신경이 쓰인다. 어제도 칼럼을 수정하다가 “서린다.”와 “어린다.”라는 표현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평범한 표현으로 임시방편 채워 놓고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광고홍보학과에서는 문법이나 우리말 표현은 안 가르친다. 그러니 현업에 나오는 사람이 꾸준히 공부하며 성찰하는 수밖에. 그러지 않으면 이런 카피에도 무신경하게 된다.


좋은 글을 향한 동반자

다섯 살쯤, 딸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라 기대했었다. 사소한 표현, 단어, 문장 등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어떤 책이, 어떤 작가의 문장이 더 맘에 드는지, 그 이유를 놓고 설전을 벌일 날이 오길 고대했었다. 아빠가 쓴 카피를 처음 보여주고 평가받는 사람이 딸이길 바랐었다. 때로는 그 카피에 날카로운 비판과 은근한 감탄도 해주길 바랐었다. 여러 카피의 대안을 보여주고 어떤 카피가 더 좋은지 물어보고, 아빠와 선택이 다를 땐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긴 논쟁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랐었다. 그날이 그렇게 어느 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