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충실히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36

by 최영훈

3학년은 다르다.

3학년이 되니 바뀐다. 공책도 칸이 좁아지고 과목도 늘고 영어와 음악은 전담 선생님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오후까지 학교 수업이 있다. 5교시 6교시가 있는 것이다.


딸이 그런다.

"학년이 올라가면 7교시도 생긴데, 중학교 가면 8교시도 있대.

그래서 중학교 가서 적응하라고 지금부터 훈련하는 거래"

자기 생각인지 선생님 말씀인지는 모르지만 미리 적응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 아닐까?

초딩의 카오스

초딩은 초딩이다. 딸의 줌 수업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 현장은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였다. 극한직업, 그 말 그대로 초등학교 선생님은 극한의 인내심과 능력이 필요한 직업임을 실감했다. 차라리 교실에서 수업하시는 것이 더 편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방에서 밥 먹다가 시작하는 녀석, 카메라 옆에 밥을 숨겨 놨다가 선생님 눈치 보며 한입씩 먹어가며 하는 녀석, 아이의 뒤로 지나가는 아빠와 엄마, 아이의 품으로 뛰어드는 강아지와 고양이. 그야말로 야단법석, 난장판 그 자체였다. 뜬금없이 선생님을 부르고 친구가 대답할 때 질문하고 선생님이 질문하면 못 들은 척 하기 일쑤고...


대학에서 강사 노릇하면서 학생들의 산만함 때문에 강의가 어려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내가 보기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그 자체였다. 쉬는 시간도 정신없었다. 오디오를 끄거나 적당히 카메라를 벗어나 쉬면 될 텐데, 아이들에게 그런 의식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 자기네 집 TV 바꿨다고 자랑하고, 강아지와 슬라임과 장난감을 자랑했다. 그게 초딩의 Flex였다.


오늘, 충실한 단 하루

1학년은 1학년이고 2학년은 2학년이다. 1학년이 아무리 성숙해도 2학년처럼 학교에 다닐 순 없다. 1학년 동안 몸도 마음도 크고 공부에 적응되고 학교에 적응된 후 세월이 흘러 2학년이 되면, 그때 자연스레 2학년스럽게 학교를 다닌다.


아이들에겐 매 학년, 매 순간이 크고 작은 단계다. 모든 교과 과정, 학교에서의 모든 순간이 그렇다. 오늘 이것을 배우는 것은 내일 저것을 배우기 위한 디딤돌이다. 그래서 오늘 이것을 터득하고 잘 한 아이는 내일 저것을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게 된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그러니까 지금 이것을 못하던 아이가 갑자기 내일 저것을 잘하길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그럭저럭 버텨낼 것이다. 물론 사춘기라는 변수가 있지만 사다리에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이때까지 밟고 올라온 칸의 높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사교육이나 개인적 계기로 공부에 매진해서 학업 성적 정도는 좋아질 수 있지만 그건 소위 천지분간을 하는 고등학교 때나 가능한 얘기다. 아니 어쩌면 대학, 또는 그 이상의 나이가 돼서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런 전환점이 오더라도 칸이 빠진 사다리를 가지고 꼭대기까지 오를 수는 없다. 중간에 돌 하나가 빠진 징검다리를 건너는 건 어렵다. 가능하더라도 당연히 무리가 따르고 위험하다. 무난하고 순탄하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큰 다는 건 하루하루 자기 앞에 놓인 자잘하고 사소한 단계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충실히 만끽하며 살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