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겐 답이 있다.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38

by 최영훈

길을 걷다 찾아온 짜증

집에서 수업을 듣는 딸에게 점심을 챙겨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방학 때와는 또 다른 난관이다. 방학 때의 점심 챙겨주기가 일종의 레저 활동이라면 학교를 못 가는 학기 중의 점심 챙겨주기는 노동에 가깝다. 그래서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학교 급식과 내 점심을 챙겨줬던 어머니에게.


선선한 봄인데도 딸은 밀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집과 제일 가까운 밀면집이 문을 닫아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갔다. 걸으면서 원인 모를 짜증 비슷한 것이 났다. 좁은 못골 시장 차도를 비집고 들어오는 거만한 쇳덩어리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수업이 해를 넘겨 지속되면서 하루에 서너 시간은 아이들의 두서없는 질문과 그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해주려는 선생님의 고단함에 대한 공감이 피로로 쌓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딸, 아빠 갱년기인 가봐.”

“왜?”

“짜증이 너무 나는데.”

“그래?”

“어디 밖에 아빠 혼자 한 일 년 살다 올까?”

“아냐, 아냐. 지금 행복한데 왜.”

“야 아빠가 매일 짜증내면 너도 우울해질 테고, 그럼 사는 게 힘들지 않겠어?”

“괜찮아. 우울한 건 공부하면 없어져.”

“야 최근에 들은 말 중에 최고 명언이다.”


우울할 땐 운동이라는 소린 들어봤어도, 우울할 땐 고기 앞으로라는 상투적인 말은 지겹게 들어 봤어도 이런 말은 처음이었다. 우울할 땐 공부라니. 아니 공부하면 우울함이 없어진다니...

“야, 너 정도면 서울대도 가겠다.” 그렇게 밀면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답이 있다.

아이에겐 답이 있다. 마음이 힘들었을 때 무엇이 자신을 위로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안아 주세요.”할 땐 그 안김이 필요한 순간이다. 맛있는 밥을 먹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달달한 음료수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렇게 아이는 나름의 해결책을 갖고 있다.


어른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화를 내고 바다로 산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우울이나 슬픔을 없애려 한다. 심지어 절로 교회로 다니면서 신과 부처에게 속을 털어놓고 내일의 회복을 기원한다. 그래도 그게 쉽지 않다. 그게 답은 아니다. 아이처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안아줘.”라는 한 마디, 그리고 그 한 마디에 기꺼이 자신의 품을 내어줄 누군가, 그 한 명이면 해결될 일을 갖고 그렇게 생난리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별 수 없다. 스스로를 꼭 안아줘라. 누군가 안아줄 사람이 있더라도, 글쎄, 내 생각엔 스스로 위로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린 결국 혼자니까. 물론 이런 얘기를 딸에게 해주진 않았다. 그러나 언젠간 해줘야 할 이야기다. 인간은 그렇게 외로운 존재라는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