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도 자리가 있다.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39

by 최영훈

반장도 나름 준비가 필요하다.

3월 둘째 주에 반장을 뽑는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은채네 학교의 1학년, 2학년엔 반장이 없다. 모듬을 이끄는 이끄미 정도가 리더 비슷한 역할을 할 뿐, 반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자리는 없었다. 입학 때부터 반장을 하고 싶어 했던 은채였기에 3학년 개학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혼자서 공약문 같은 걸 썼다. 일종의 출마의 변이라고나 할까. 스스로를 소개하고 앞으로 반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었다. 목요일 선거를 앞두고 수요일 오후 늦게 완성했다.


"아빠 어때, 이 정도면 돼?"

"응 잘 썼네. 군더더기 없고."

"그래?"

"응, 근데 '불가'나 '방법' 같은 표현만, 친구들한텐 어려울 수 있으니까, 좀 쉬운 걸로 바꿔보자.

뭐 어렵다... 마음 표현 이런 걸로.."


문장의 구조는 아빠보다 나아서 손댈 것이 없었다. 단지 3학년치고는 좀 어려운 표현이 많다 싶어 그것만 몇 개 고치라고 했다.

KakaoTalk_20220521_183053988.jpg 공약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해야 한다.

아빠는 아웃사이더

선거 날 아침, 괜스레 걱정이 됐다. 행여나 긴장을 하진 않았을까, 당선을 너무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떨어지면 어떡하나, 붙으면 어떡하나... 걱정의 종류는 많았고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딸 반장 안 돼도 너무 신경 쓰지 마.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

"응."

딸은 간결하게 대답하고 학교로 들어섰다.


하굣길, 만나자마자 물었다.

"어떻게 됐어?"

"반장 됐어."

"축하해 최반장."

"열 명이나 후보로 나왔는데..

내가 아홉 표, 한별이가 일곱 표 나왔어."


자의 반 타의 반 에이스의 길을 가는구나 싶었다. 누굴 닮아 자발적으로 피곤한 인생을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쭈욱~ 있는 듯 없는 듯 한 학생이었고,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기숙사 동장을 하기 전까진 이렇다 할 장을 맡아본 적도 없다. 그야말로 평생 마이너이자 아웃사이더였다.



작게 피어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하교 길의 공원, 캐나다 단풍나무 아래 핀 하얀 꽃이 보였다. 찾아보니 갯개미자리였다.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이라는 사이트에는 이 식물이 서해안과 남해안 일부 지역에만 서식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내륙에선 보기 힘들지도. 이렇게 작은 들꽃도 다 자기 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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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다 자기 자리가 있다. 한 번 반장이라는 이름을 차지했다고 그것이 영원히 내 자리라 생각하지 말길 바랐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욕심은 나겠지만 그 자리가 당연히 내게 올 것이라 여기지 말길 바랐다. 해마다 철마다 나름의 자리에서 고유의 빛을 발하는 존재이길 바랐다. 이제 겨우 꽃이 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