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40
"다희는 나랑 얘기도 안 해. 1학년 때 같은 반 애들이랑 몰려다녀.."
"그래?"
"반장이 이거 이러다 아싸 될 판이야."
"인싸 될 필요도 없어. 그리고 너 친구 있잖아."
"누구?"
"뒷자리 태용이도 있고. 채원이도 있고."
"그러네."
"그리고... 혼자되는 걸 두려워마. 뭔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혼자되는 거, 혼자 남겨진 시간을 두려워해선 안 돼. 그리고 유독,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응?"
"나중에 커보면 알아. 페북에서 가벼운 이야기, 소소한 사진에는 <좋아요.>를 눌러도 어려운 책에 대한 서평은 함부로 <좋아요.>를 누르지 못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아... 그래?"
목요일, 수학 학습지 선생님이 가시고 딸에겐 스트레스가 남았다. 딸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마침 아내가 주문한 인제의 곰취가 도착했는데, 곰취만 갖고 쌈밥을 하기엔 좀 허전해서 양배추 쌈을 추가하고 청국장을 곁들이고 싶었기에, 어차피 장을 봐야 했다. 팥빵을 사주겠다고 꼬드겼다. 엄마가 알면 둘 다 혼나겠지만.
아내는 늘 조직과 무리의 중심에 있어 왔다. 무슨 모임을 만들 때 총무를 맡겨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아내다. 반면 난 늘 테두리, 또는 그 밖에 있었다. 사사키 아타루의 표현을 빌리면 야전에 있는 사람이었다. 경계 밖에서 경계 안의 규칙을 응시하는 사람. 때문에 딸은 아빠와 엄마에게 다른 형태의 삶을 배우고 있다. 아내는 딸에게 조직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난 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해야 할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때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주목받고 관심을 받을 때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널 만드는 건 아니라고, 친구들 무리에 억지로 끼어 어울리려 애쓸 필요 없다고, 너에게 끌리는 사람은 자석처럼 네 곁에 오고 만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방과후 교실 바이올린 선생님은 유독 은채에게 엄하신 모양이다. 은채가 종종 선생님이 자기한테만 잔소리를 많이 하신다고 불평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난 음악은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 곡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기 위해 꼼꼼히 반복해서 가르치시는 거라고 타일렀다. 수학 진도 나가듯, 페이지 넘어가는 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바이올린 선생님이 너한테 더 엄격하게 하시는 건 네가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위로했다.
선생이 열심히 하고 성실한 학생에게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학문과 기술을 막론하고 당연해서, 선생님이 너의 연주를 들은 후 “이게 왜 잘 안 될까요?”라고 말하시는 건 유독 너에게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고 견디며 묵묵히 연습하면 너에 연주는 더 큰 아름다움과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물론 이런 가르침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개와 늑대는 같은 개과 동물이지만 개는 늑대의 황야를 그리워하지 않고, 늑대는 개의 안락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삶을 흉내 내려 애쓰지 말아라. 나중에 좀 크면 이 말도 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