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42
"아빠, 저 여자애가 자꾸 날 째려봐."
"신경 쓰지 마. 너 살면서 저런 눈초리 많이 볼 거야. 키 크고, 예쁘고, 똑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부러움, 하나는 질투."
"부러움 하고 질투는 다른 거야?"
"응, 아빠 생각엔... 부러움은 닮고 싶은 거야. 그러니 당연히 친해지려고 하고 널 곁에 두려고 할 거야. 그러나 질투는 애쓰고 노력해도 그렇게 안 될 거라고 느끼는 애들이, 그런 노력도 안 해본 애들이 그러는 거야. 그래서 저렇게 쳐다보고 험담하고 그러지. 너도 너보다 잘 난 사람, 부러운 사람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닮고 싶은 게 있으면 노력하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럼 예하가 날 질투했었나?"
"어린이집 때 예하?"
"응. 내가 다섯 살 때, 처음 갔을 땐 서로 모르니까 놀이에 안 끼어주고 그랬던 건 그랬다 쳐. 그런데 여섯 살 때도 좀 그랬고. 나중에 무슨 곰 그림인가... 그런 걸 그렸는데... 왜 배꼽을 그려야 되잖아? 그런데 예하가 좀 예쁘게 그렸어. 그래서 애들이 자기도 그려달라고 그랬어. 예하가 예쁘게 그려주더라고... 그래서 나도 그려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예하가 나는 엑스 표 딱 긋고 말더라고."
"걔, 산성교회 부목산가 전도사 딸 맞지?"
"응."
"걔는 그럴 만 해. 그럴 수 있어."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아이도 있다. 소년소녀를 막론하고. 반면 타고난 것조차 질투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것들인데도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른다. 냉정하게 말하면, 타고난 것들은 질투해도 소용없고 화를 내도 소용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낼 대상을 굳이 고르라면 부모뿐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내 가족이 다른 가족과 다른 걸 눈치채는 건 세상에 태어나고도 한참 뒤의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교는 고사하고 그 다름도, 그 차이도 인식하지 못한 채 집 안에서 성장한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처음 들었던 단어가 야식이었다. 그러니까 저녁을 먹은 후 야식으로 치킨을 먹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초등학교 가서도 야식으로 치킨을 먹는 집이 많다는 걸 알고 다시 놀라기도 했다. 우리 집에선 한 달에 두세 번, 저녁 끼니로 치킨을 먹는다. 그것도 세 명이서 한 마리. 치맥을 좋아하는 아빠들이 많다는 것도 어린이집 가서야 알았다. 나 같은 경우, 제법 맥주를 많이 마시지만 특별히 안주를 두고 마시진 않는다. 집에 먹다 남은 반찬이 있으면 그냥 그걸로 먹는다.
집안에 키 큰 사람이 있으면 키 클 확률이 있고, 집안에 뚱뚱한 사람이 많으면 역시 그러할 확률이 높다. 가족력이다. 그것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저 먹는 걸 조심하거나 열심히 운동하거나 하면서 개선을 향해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가족력은 극복하고 그 차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 우리 감독은 자기 머리를 돌대가리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 기가 막히게 영어로 메일을 써서 특수한 촬영 장비를 주문 제작한다. 이 업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영어로 된 촬영 용어나 CG 용어들, 방송 기술 용어들이 어려워서 선배들 어깨너머로, 책을 사서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번 보면 모르니까 두 번 보고 세 번 봤다고 한다.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이 봤다고 한다. 빼곡한 메모들이 두툼한 노트를 꽉 채웠다. 그 노트를 아직도 갖고 있다. 감독은 초심을 잃을 때마다 그 노트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갖고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살면서 나보다 나은 재능을 갖고 있거나 앞서가는 이를 따라잡기 위해선 성실과 노력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딸은 음악 줄넘기를 하면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미술을 배우면서 그렇게 끈기와 인내, 반복, 연습 등의 중요성을 내면화하고 있다.
살다 보면 천재를 만난다. 소위 넘사벽인 존재들이 있다. 그런 천재를 부러워해봤자 소용없다. 비정한 말일지 모르지만 세상엔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내가 어렵게 하는 걸 남은 쉽게 하는 걸 볼 때가 있다. 반면 자기가 쉽게 하는 걸 남이 어렵게 하는 걸 볼 때도 있다. 그러니 부러워할 것도 질투할 것도 없다.
대학에서 카피라이팅 강의를 할 때, 강의 첫 주에 학생들에게 늘 해줬던 말이 있다. "카피를 못 쓴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아이디어가 없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광고를 사랑하고 그 업계에서 일하고 싶지만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광고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합니다. 누군가는 광고주를 만나야 하고, 누군가는 영업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복잡한 스케줄을 교통정리해줘야 합니다. 누군가는 돈을 맡아야 하고, 누군가는 모델을 섭외하고 녹음실을 섭외하고 스튜디오를 섭외해야 합니다. 조를 짜면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과 다른 조원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카피는 못 쓰지만 지갑에 돈 좀 있으면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십시오. 지친 조원들에게 응원을 주십시오. 다들 바쁘니 스케줄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셔도 됩니다. 갈등이 생기면 그걸 조율하는 역할을 하셔도 됩니다. 카피라이터는 한 명이면 됩니다. 결국 이번 학기의 학점은 그 적절한 한 명을 얼마나 잘, 빨리 발굴하느냐, 그리고 조원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교훈을 난 카피라이터 초년병 시절에 깨달았다. 이 시절에 콘티까지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큰마음먹고 미술학원에 등록해 다녔는데, 한 두 달 만에 깨달았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콘티를 잘 그리는 게 아니다. 공간의 깊이와 동선을 기가 막히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화 하고는 조금 다른 영역인데, 감독과 난 아직도 그 영역의 능력이 특출 난, 맘에 쏙 드는 한 사람을 찾고 있다.
딸과의 대화가 끝나갈 때쯤 한 노인이 노약자 전용 전동차를 타고 가는 걸 봤다. 딸은 무심히 말했다.
"와, 진짜 편하겠다. 나도 저런 거 좀 타고 다니고 싶다."
"저런 건 다리가 불편하거나 노인들이 타고 다니는 건데..."
"아니 그러니까. 다리가 다치거나 그럴 때 말이야."
"야. 다리가 다치거나 그러면 고치고 그래서 빨리 나아질 생각을 해야지."
"그럼 뭐 80살쯤 됐을 때는?"
"너 지금처럼 열심히 운동하면 백 살까지 뛰어다니니 걱정 마.
허리 바짝 세우고, 배에 힘주고, 가슴은 좀 내밀고...
다리가 몸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몸이 다리를 끌고 간다는 느낌으로 씩씩하게, 지금처럼 걸으면 돼."
"아빠는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
"뭐 운동을 좋아하니까 혼자 이것저것 알아봤었지. 아빤 마라톤 할 때도 혼자 검색해서 훈련하고 그랬어.
딸에게 자신의 신체를 아끼고 사랑하고 가꿔나가는 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을 하기 위해선, 자신을 갈고닦기 위해선 자신 스스로 그 도구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내 최후의 주치의, 내 마지막 트레이너, 내 마지막 친구, 내 마지막 동반자는 자기 자신이다. 그것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후배 민우의 말처럼 내가 날 부끄러워하면 끝이니까.
이런 대화가 있고 나서 열흘쯤 후 딸은 새로우면서도 생활에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하는 학내 대회에서 상을 못 받았다고 서운해했다. 수학 학습지 형성평가도 몇 개 틀렸다고 했다. 서재에 있는 아빠 품에 안겨 잠시 울며 억울해했다. "경진대회는 주최 측과 심사위원의 시선이 너와 다르면 상을 못 받을 수 있으니 너에 부족이라기보다는 너와 그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서라고 생각을 해."라고 위로를 해줬다. 뒤 이어 이런 말들을 덧붙였다. "아빠가 하는 일도 감독과 조감독, 수많은 스태프가 힘을 모아 만들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심지어 절반도 만족 못 시킬지도 몰라. 그러나 모두를 위한 광고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때론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획득하는 건 불가능 해"라고 말해 준 뒤 마지막으로 지금 해야 하는 걸 하고, 할 수 있는 걸 하며, 잘하고 싶은 걸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 학생의 자세이고 어쩌면 인생의 자세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줬다.
물론 아빠의 위로를 딸이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다만 딸이 물을 때마다 성실히 답해줄 뿐이다. 묻지도 않는 질문에 답하려고 하는 인간은 어른이 아니라 꼰대니까. 딸의 첫 번째 선생님은 아빠라는 걸 잊지 않고 살려고 한다. 그러면 남은 생도 조금은 덜 부끄럽게 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