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 45
6월 마지막 주부터 7월 첫 주까지 몸이 말썽이었다. 우선은 장이 탈이 났다. 뭘 먹고 그랬는지 짐작은 가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 모든 걸 사랑하는 맥주 탓으로 돌리고 며칠 고생했다. 그래도 6월 마지막 주 화요일 출근엔 별 무리가 없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오른쪽 골반에 담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엉덩이가 시작하는 허리 끝에서부터 엉덩이 전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장이 안 좋으면 그 증상으로 허리가 아픈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신의 장이 아직 정상이 아닌가 보다 하고 나무랐다. 그렇게 며칠 빨리 걷지 못하고 느리게 걸었다.
등하교 동행 시간도 몇 분 늘었다. 아비가 빨리 걸을 수 없으니 학교 일찍 가기 좋아하는 딸로서는 답답할 터인데 어진 녀석이 그럭저럭 아빠의 느린 걸음에 맞춰 걸었다. 조금 앞서가다 돌아보고, “엉덩이 괜찮아?”라고 묻곤 했다. 아빠가 아픈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는 녀석이라 어기적 걷는 아빠의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이렇게 저렇게 수를 내어 담을 풀어갔다. 생전 안 겪은 신체의 불편을 겪고 나니 마음이 꺾인 기분이다. 애초에 과식, 과음도 자제하고 육식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도 꾸준히 한다. 이 모든 것이 건강을 자신하고 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대학 때부터 나 자신이 그다지 건강한 사람이 아님을 실감하고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조처였다.
덕분에 거죽은 나이치 곤 멀쩡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그 속은 들여다볼 재간은 없으나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검진한 바에 따르면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다 짐작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렇게 예상치 못한, 처음 겪는 불편과 고통을 겪게 되니 목전에 다다른 쉰이라는 나이를 실감케 된다.
은채는 긴 다리에 긴 팔을 자랑하며 벌써 140Cm가 넘는다. 내 키가 170이 갓 넘으니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도 멀지 않았다.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는 아이는 일주일의 빡빡한 스케줄에도 지침이 없다. 방과 후 학교에서 방송 댄스도 하고, 음악 줄넘기도 하는 데다가 등 하굣길은 온전히 왕복 삼십 분을 걷는 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 아이의 체력과 에너지는 앞으로도 꾸준히 상승할 것이다. 그에 반해 아빠의 그것은 하향 곡선일 테고 말이다. 그야말로 반비례하는 부녀의 삶이다.
아비의 노쇠함을 눈치채어 제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더 조심하며 살고 몸에 좋다는 걸 먹고, 더 절제하며 살 수밖에 없다. 제가 뛰놀고 싶은 만큼 삶을 온몸으로 힘차게 밀고 나가길 바랄 뿐이다.
밖에 나오면 딸이 보고 싶다. 처음엔 이 마음이 그저 궁금함인 줄 알았다. 1학년 때, 또는 그 전 어린이집 시절부터 그런 마음은 있었다. 보내 놓고 나면 잘 지내는지 별 탈은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친구랑 싸우진 않는지 장난치다 다치진 않을지, 그런 걱정들을 했었다. 그러다 서서히 걱정은 줄어들고 궁금증만 남았다. 학교 급식도 잘 먹고 학교 적응도 잘하고 공부도 잘 따라가고 친구들과 관계도 원만하니 걱정할 거리는 없었다. 그저 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집에서 일을 할 때도 아이가 궁금하지만 울산의 사무실에 출근해서 감독과 이동하거나 일을 할 때, 또는 밖에서 다른 일로 혼자 움직일 때 불쑥 아이가 궁금했다. 그 궁금함이 보고 싶은 마음임을 최근 깨달았다. 그렇다. 딸이 보고 싶었다.
평생 누굴 보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그리워서 밤잠을 못 자본 적도 없다. 미국에 들어가 사는 어머니에게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한 적은 있어도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다. 하나뿐인 동생도 그리워한 적이 없다. 외가나 친가나 그 어떤 친척도 보고 싶어 한 적이 없다.
냉정하다면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름 사랑이란 걸 했다. 물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 기억도 있다. 아내 또한 열렬히 사랑했고 보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면 사랑하는 데로, 헤어지면 헤어지는 데로 담담히 일상을 살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 마음이 일상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드러난 적은 없었다.
요즘엔 차로 이동 중에, 카피를 생각하다가, 거리를 걷다가, 길에서 우연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볼 때, 딸이 보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것은 일종의 사고 같은 것이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것이 어쩌면 부성애이고, 그것이 어쩌면 혈육의 정일 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나이 탓이라고 했다. “당신도 이제 나이 드나 보다.”하고 웃었다. “좋은 현상이야.”하고 또 웃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아내도 보고 싶어지는 날들이 부쩍 늘었다. 미워할 때도 있고, 참 나하고 안 맞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이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곤 했다. 이것이 갱년기 증상인지, 나이를 먹어서 몸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약해져서 그런 것인지 그 이유는 다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내게도 보고 싶은 사람, 퇴근해서 집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겨주는 사람이 있기에 귀가의 발길이 급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