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생일의 기억들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46

by 최영훈

생일의 상서로움

음력 7월 15일은 7월 백중으로 불교에선 석가탄신일 다음으로 큰 날이지 않나 싶다. 백중은 이 시기 과일이 백 가지가 넘게 나온다고 해서 백중이라 불렀다고 한다. 머슴도 쉬는 날이고, 과일이 많이 나오니 제사도 드리기 좋았을 것이다. 이 날 절에서는 조상과 속세를 떠도는 여러 혼령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기도를 한다.

이 날이 내 생일이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절에 들어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교회 다닐 때는 목사가 되라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철이 들었을 무렵, 난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중이던 목사든 하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잠시 돌아보니

몇 년 전까진, 인생 참 심심하게 살았나,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름 격하게 살았다. 어떤 건 후회 없이, 남들은 상상도 못 해 볼만큼 해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고통과 슬픔이 많았던 삶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또 그렇지도 않다. 쾌락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다. 겪을 때, 그 꼬리가 길었고 그 그림자 또한 짙고 길어, 슬픔이나 고통이 많다 착각했을 뿐이다.


일전에 칼럼에도 썼듯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사람이었고, 죽기 전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으며 현재도 누군가에겐 그러한 존재다. 침대에서 못 나가게 막아서던 여자도 몇 있었고, 내가 먹여 살릴 테니 나랑 살자고 울며 매달렸던 여자도 있었다. 그 수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아직도 몇몇에겐 그리운 사람이니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이지 않나 싶다. 바람이 있다면 인연이 있던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공부는 광고와 홍보, 신문방송과 저널리즘 등을 공부했는데 요즘 읽는 건 그보다 좀 깊거나 곁길이다. 때문에 공부 또한 체계 없이 산만해서 칼럼을 쓸 때마다 애를 먹는다. 또 그 덕에 공부의 끝을 가늠할 수 없어, 그 핑계 삼아 책을 주섬주섬 사 모으니 이 또한 나쁘지 않은 인생인 듯하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 평생 운동을 했는데 선수도 아니었고, 동호회 같은 것도 그리 즐기지 않았다. 대학 때 기숙사 팀에서 뛴 것, 서른몇 살에 교회 축구팀에서 뛴 것이 다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해보고 싶은 운동은 또 다해본 듯하다. 축구, 농구, 야구, 마라톤, 수영, 사이클, 스포츠 클라이밍, 헬스.... 서른 즈음엔 철인 3종과 크로스핏을 해보리라 다짐했건만 그 꿈은 접었다. 지금은 핀 수영이나 해봤으면 싶다.

몸을 괴롭혀 내가 원하는 데로 조각하는 재주가 있다. 아버지가 물려준 것 중에 가장 좋은 건 아마 이 몸뚱이가 아닐까? 그 덕에 허벅지를 늘렸다, 가슴을 부풀렸다, 팔뚝을 두껍게 했다 하면서 청춘을 보냈다. 지금도 어느 한 부위를 정해 튜닝하고 있다. 그 재미를 아직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돈을 버는 재주는 없다. 카피라이터에 재주가 있다는 것도 서른 즈음에 알았고, 앞에서 떠드는 재주가 있다는 것도 그 후다. 결혼도 늦었고, 아이도 늦게 봤다.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작년부터니 모든 게 늦되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감독이 그 능력을 인정받아 그 팔자에 얹혀서 이 시국에도 편히 사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모든 꽃이 어찌 봄에 다 피겠나. 오늘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공원에 핀 흰 꽃을 봤는데 이름 모르고 넘어가기엔 그 모양새가 예뻐, 찍어 검색했다. 도깨비 가지다. 이름 없는 꽃은 없고 늦게 피고, 늦게 발견된 꽃만 있을 뿐이다.


나이를 먹으니 기억은 가물되나 겪은 건 많으니 글은 써진다. 다행히 요즘엔 검색도 되고, 그 검색으로 등 뒤에 꽂힌 책의 쪽수까지 알 수 있으니 언제, 어디서, 어떤 글귀를 읽었는지 서가를 뒤집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좋은 세상이긴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일 때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뭐 대단한 은혜를 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사사로운, 인생에 한 번쯤은 해야 할, 해봤으면 했던 경험을 하게 해 준 사람들이다. 그 고마움의 사연과 이름을 나열하면 각자의 삶이 약간 곤란할 수도 있어서 이렇게 퉁치고 넘어간다.


순리대로, 무탈하게

아이를 키우기 전엔 생일 즈음에 찾아오는 우울로 곤란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계획대로 글을 쓰고, 그 글이 불러낸 책들을 살피고, 다시 글로 돌아가고. 그렇게 보냈다. 그 사이 잠시 몸을 괴롭혀 다듬기도 하고.


이 나이 정도 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알지 못한다. 물론 이것이 정답이다 하고 척척 답을 내놓는 어른도 있겠다만 난 그런 쪽은 아니다. 그저 당면한 것들을 해나가고, 내 몫의 책임을 다하여 같이 먹고사는 식구들이 더 잘 풀리길 바랄 뿐이다. 또 내 개인의 글을 더 잘 써서, 이런저런 명망이 뒷산만큼이라도 생겨, 그 언덕에 기대어 우리 팀이 내미는 명함에 힘을 실어주길 바랄 뿐이다.


맥주를 좀 덜 마셔야지, 책을 좀 더 많이 읽어야지, 글을 더 많이 부지런히 써야지,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앞으로도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더 늦기 전에 지역에서 역사 다큐멘터리 하나 해 봐야지. 뭐 이런 다짐 같지 않은 다짐을 하며 어제, 생일, 음력 7월 백중을 보냈다.


페북의 생일을 8월 23일로 한 건, 내가 태어나던 해, 7월 백중이 이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번호하고 참 동떨어진 생일이라 나조차도 아내에게 묻는 음력 생일이다. 올해 생일이 하루 지난 오늘, 요 며칠 스쳤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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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생일에, 그러니까 2021년, 은채가 3학년이던 해의 내 생일에 생일 선물로 뭐가 받고 싶으냐고 딸이 물었다. 너무 싸도 그렇고 비싸도 부담스러울 테니 적당한 걸 골랐다. 말리 이어폰. 꽤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건데 겸사겸사 말했다. 요즘엔 지하철이나 이동 중에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거의 듣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쓸만한 이어폰은 하나 있었으면 했다. 딸은 자기 용돈으로 사줬다. 옆에 있는 MP3플레이어는 15여 년 전에 처남이 선물해 준 것이다. 아직도 멀쩡한 것이 흠이라면 흠. 아내에겐 검은색 토트백을 사달라고 했다.

받고 싶은 선물을 콕 집어 얘기하는 건 우리 집의 전통이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얘기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오래 들고 다니고 간직하고 다닐만한 건 사달라고 처음인 듯하다. 가방은 매주 울산에 갈 때마다 들고 다니고 그 안엔 이어폰과 MP3 플레이어가 있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그냥 들고 다닌다. 집에 있을 땐, 늘 책상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