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47
3학년이 되니 시험다운 시험을 봤다. 단원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성취해야 하는 학력 수준에 도달했는지 점검하는 것이 시험의 주목적이다. 물론 목적이 그렇다고 해서 채점이 없는 건 아니니 당연히 문제마다 동그라미와 엑스가 쳐지고, 그 수를 헤아려 점수도 부여된다. 다만 방학 때 받아오는 성적표엔 <도달-미도달>로 표시될 뿐이다.
학부모 입장에선 이걸 갑갑해하는 사람도 있고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같이, 모든 부분에서 평균 정도의 사람이어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 한 두 개에 특화 되어 있다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 입장에선 저 심플한 성적 표시에 불만이 없지만 아이의 석차나 반에서의 수준을 궁금해하는 학부모 입장에서 그야말로 깜깜이 성적표다. 실제로 이 깜깜이 성적표를 문제 삼은 교육감 후보가 최근에 당선 됐다.
딸은 아빠와는 다르게 성적에 민감하다. 나나 아내는 학창 시절에 성적에 죽고 못 사는 캐릭터도 아니었고, 그렇게 성적에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유년기도 아니어서 딸의 하고재비 성격을 불안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1, 2 학년 때 받아쓰기 시험에서 한두 개 틀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분해했던지. 행여나 성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지, 그래서 공부의 즐거움을 모르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을 하곤 했었다.
6월 초, 수학 시험을 본다고 했다. 그날 오후엔 방과후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이를 기다리는데 아내에게 톡이 왔다. 딸이 백 점짜리 시험지를 찍어 보낸 것이었다. 아내의 칭찬이 딸려 있었다.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딘가 어색했다. 빗금 위에 동그라미 하나만 반대 방향으로 쳐져 있었다. 게다가 92점이라는 글 위에 두 줄을 긋고 그 밑에 100점이라고 새로 썼다.
사람마다 버릇이 있다. 글쓰기나 그리기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난 ㅇ을 쓸 때 반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반면 딸은 시계 방향이다. ㅁ이나 ㅂ을 쓸 때도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 줄 때 알았는데 이것도 나름 정석이라는 게 있는데 그 정석을 사람의 버릇이 이기곤 해서 각자의 필체가 생기는 것이다. 간단한 도형을 그릴 때도 이런 습관이 있어서 가족이라면 아주 간단한 서류나 메모만 봐도 그것이 정말 내 가족이 쓴 것인지, 그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가 있다.
잠시 후, 아이가 나왔다. 시험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백 점이네. 근데 한 문제 동그라미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아, 원래는 하나 틀렸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잘 못 보셔서 고쳐주셨어.”
거짓말이 서툴다.
“너 시험지 사진은 누가 찍어 준거야?”
“하영이가.” 같이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 이름을 댔다.
“교실에 찍으면 되는데 왜 음악실에서 찍은 거야?”
“어, 그냥 그때 생각이 났어.”
결국 집에 와서 차분하게 물었다. 원래는 92점이었다. 답을 고치고 빗금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맘에 안 드는 점수에 두 줄을 긋고 자기가 원하는 점수를 적었다. 내가 고쳐 바로 잡았다. 딸은 한참 눈물을 흘렸다.
승패는 내 것이 아니다. 내 손에 달려 있을 때도 있지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원하는 점수,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살다 보면 천재를 만나고 비범한 이를 만난다.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를 쳤는데 하필 그 시기, 그 지역에 지원자가 많을 수도 있다. 분명 내 몸뚱이인데 그날 유독 배탈이 나서 시험을 망치기도 한다. 언제 올림픽에서더라, 경보 경기 중에 한 선수는 걸으면서 설사를 한 적도 있다. 그건 비극이었다. 바라지 않은 사건이었다. 훈련 중에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인생을 모른다. 아이들은 언제나 이기고 싶어 한다. 사내 녀석들은 더 그렇다고 들었다. 딸도 마찬가지다. 난 이 승패의 결과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보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아니라 운이나 기운, 상대의 능력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후일을 도모하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었다.
농구를 가르친 것도, 트럼프 카드로 여러 가지 카드 게임을 가르친 뒤 함께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농구를 통해서는 기초와 기본기, 훈련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팀과 함께 이기거나 버티는 방법, 그리고 잘 지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카드 게임에선 내 두뇌가 승패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아이가 클수록 최선의 노력이 늘 최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가르치고 싶었다.
괴롭다. 나도 안다. 실패와 실연, 패배와 후퇴는 괴롭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도 숱하게 겪었다. 제법 달리기가 빠른 편이었지만 대학 시절 축구 시합에서 마주친 사회체육학과 애들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마추어는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이때 알았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중3 때 우리 반은 전교에서 제일 농구를 잘했다. 고등학교도 같이 있던 학교였는데 체육 선생이 우리 반이 농구를 잘하는 줄 알고 종종 고등학교 1, 2학년 선배들과 시합을 붙였다. 이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체육 선생들과 내기를 했지 싶다.
그러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3 선배들과 붙은 적이 있다. 공이 어디 있는지도 못찾았다. 장거리 슛은 거리와 위치를 가리지 않고 터졌고 흙바닥에서의 드리블도 손에 착착 달라붙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 팀은 더블 스코어로 졌을 것이다.
우린 사회는, 또 대부분의 부모들은 패배와 실패, 포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잘 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기고 싶으면 분해하지 말고 훈련하고 애쓰라고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는 늘 나타난다고도 가르치지 않는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자식 최고다. 그렇게만 가르친다. 세상은 그렇지 않다.
딸이 크면서 제법 이목구비가 뛰어나고 신체 균형이 좋다는 걸 알았다. 또 제법 영리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 사회에서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얼마나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딸이 그 주어진 조건으로 성취하는 것에 마냥 도취되지 않기를, 그 성취의 반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노력과 훈련, 좌절과 극복 등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농구장에서 수십 번의 슈팅 끝에 드디어 한 골이 들어갔을 때의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이런 가르침이 좀 진행됐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번 시험지 사태는 그 가르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알게 해 줬다. 이 가르침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점수를 잘 맞으면 기분이 좋고, 한 두 개 틀리면 기분이 나빠지는 딸에게 그 점수가 자신의 기분을 좌우하지 않게 하는 법을 가르치려 애쓰는 중이다. 지금 겪는 자잘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그것을 차분히 이기는 법을 깨우쳐 다가올 모든 삶의 순간을 담담히 견디며 살아나가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