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49
3학년 여름 방학은 7월 중순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약간 이른 방학이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다 즐거운 건 아니다. 급식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아이도 있고 집 안 사정상 돌봐 줄 사람 없는 부모들은 긴 여름방학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물론 딸은 그런 걱정은 안 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린이집 들어갔을 때 처음 방학이란 걸 겪으면서 워낙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아내는 부산대학교 인근에 있는 백화점 안에 있던 코코몽 키즈랜드를 예약해줬다. 집에서 지하철로 거의 한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 갈 때는 외할아버지가 태워주셨지만 올 때는 지하철로 왔다. 그때, 은채는 처음 지하철을 탔다. 아직도 생생하다. 자리가 있는데도 문 앞에 서서 봉을 잡고 서 있던 꼬맹이.
이곳에 가기 전날, 딸은 이미 신세계 센텀시티점에서 대여섯 시간을 보내며 서점에서 동화책을 읽고 도넛도 먹었으며 옥상 놀이 시설에 있는 회전목마도 탔다. 물론 그동안 내 체력은 바닥을 쳤다. 애들은 절대 지치지 않는다.
그다음 날, 생애 최초로 부산대 앞까지 진출한 것이다. 정말 금정구, 동래구의 아이들은 다 온 듯했다. 재미있는 건 아빠랑 단둘이 온 애는 딸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엄마는 기본, 아빠는 필수, 할머니 할아버지는 옵션이었다. 그곳에서 딸은 장장 한 시간 오십 분을 놀았다. 왜 하필 한 시간 오십 분이냐고? 거기서 놀 수 있는 제한 시간이 두 시간이니까. 아빠들의 눈은 퀭해 보였다. 엄마들이라고 그 체력이 더 좋을까? 부부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두 시간을 버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을 쫓아다녔다. 점심시간은 한참 지나 있었다. 난 굶주림과 탈수에 지쳐가고 있는데 딸은 쌩쌩했다.
시간에 밀려 쫓겨난 후, 딸은 배고프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레스토랑엔 줄이 섰다. 결국 줄 서기를 포기하고 1층 빵 집에 갔다. 두시가 다 돼서야 1층 빵집에 앉았다. 딸은 클래식 한 단팥빵 하나와 삼각 브라우니 하나, 오렌지 주스 한잔을 가뿐하게 먹었다. 애들은 놀면 끼니도 잊는다. 놀고 나서 굶주림에 울부짖을 뿐.
점심을 해결한 딸은 생애 최초로 쇼핑을 했다. 1층의 액세서리 코너에서 떠날 줄 모르더니 삔 두 개를 심사숙고 고민하여 골랐다. 사진 속 왕관 핀이 그중 하나다. 그 이후로도 딸의 첫 번째 여름방학은 스펙터클 했다. 외갓집 근처 삼락동에 문을 연 물놀이 시설에도 가고 인생 최초로 100분이 되는 장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도 엄마랑 끝까지 봤다.
이 버라이어티하고 익사이팅하며 스펙터클한 첫 번째 여름방학의 경험은 여름방학 루틴으로 정착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방학의 첫 주는 집 근처 경성대학교 부근을 오가며 한가하게 놀러 다닌다는 것. 3학년 여름방학의 첫 날엔 일단 유치 두 개를 발치했다. 2학기 학습지를 미리 사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근처 교보문고에서 학습지를 면밀히 비교 검토한 뒤 노트를 구매했다. 학습지는 엄마가 인터넷으로 주문해줬다. 이후 길 건너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가서 아빠와 딸이 읽을 책을 샀고 그 옆에 붙어 있는 <아트박스>에선 방학 때 쓸 일기장을 샀다. 점심은 딸이 좋아하는 부경대학교 앞의 <하코네 라멘>에서 먹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쇼핑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아빠도 딸과 함께 크면서 변했다. 여름 방학 전, 5월 초에는 울산의 강동 오토캠핑장에서 이틀을 보냈다. 딱히 대단한 걸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새로 구입한 신기한 버너로 라면을 끓여먹고 해안 산책로를 걷고 사진을 찍고 카드 게임을 한 것이 다였다. 그래도 딸은 좋아했다. 6월 중순의 어느 주말에는 딸 숙제를 핑계 삼아 겸사겸사 동네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다 다니기도 했다. 부산시립박물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유엔 평화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던 라미 작가 전시회까지 보고 왔다. 특히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나도 처음이었는데 한국인이라면 꼭 가야 할 곳이다. 아픈 역사지만 잊지 않아야 할 역사의 기록이 가득했다. 건축미로도, 내부 스토리텔링 구성으로도 여러모로 배울 게 많은 곳이다. 부산시립박물관에선 학예사분들이 공들여 쓰신 책을 무료로 받아오기도 했다.
난 이렇다 할 방학의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친할머니 집은 서울 강북의 창동이었는데 당시에는 샘표 간장 공장이 근처에 있어서 주변이 이상한 야릇한 냄새로 가득했다. 할머니의 집은 단칸방이었다. 볼 만한 경치도 없었고 놀거리도 볼거리도 없었다. 있다고 한 들 갈 수도 누릴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중학교에서 가서야 교회 수련회를 따라다니면서 여행 비스름한 걸 했으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다. 방학의 대부분을 동네를 맴돌며 친구들과 놀았다. 가족 여행의 기억도 없고 쇼핑의 기억도 없다. 어떻게 일기를 썼는지 모르겠다.
딸을 키우면서 딸의 추억이 내 추억이 되고 딸의 경험이 내 경험이 된다. 딸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행복해진다. 오랫동안 미뤄놨던 소중한 경험을 이제야 하는 것 같다. 어제 딸은 내 옆에서 잤다. 내 허벅지에 다리를 얹을 때마다 그걸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추억이 쌓이는 동안 딸도 아빠도 건강해졌다. 딸은 건강한 어린이로, 아빠는 그럭저럭 멀쩡한 어른으로... 몸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