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기다리는 시간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52.

by 최영훈


약속 시간을 정하다.

2학기부터 규랑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등굣길에 우연히 만나서 가던 친구다. 여름 방학 동안 개학하면 늘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동안은 늘 아빠와 함께 갔다. 덕분에 아빠는 매일 3 천보 이상을 걸었다. 어차피 걷는 거 혼자 올 때는 제대로 파워 워킹을 해보자 다짐하고 열심히 걸었더니 1학년, 한 해 동안 3킬로그램이 빠졌다. 그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같이 걸으면서 딸도, 아빠도 체중 관리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미안했던 아침들

미안한 날도 있었다. 더울 날엔 미안했다. 다른 아이들은 자동차로 오는 데 딸만 한 여름 태양 아래 묵묵히 걸어갔다. 그나마 아침이어서 견딜 만했을 것이다. 추울 땐 대체로 방학 중이다. 부산이라 춥다고 엄살을 부려봤자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도 별로 없고.


정말 미안한 날은 비 오는 날이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아빠인 것이 이때처럼 미안한 날이 없다. 가벼운 봄비 정도면 괜찮은데 일 년에 한두 번, 제법 굵직한 빗속을 뚫고 데려다줄 땐 속상하다. 지는 태어날 때부터 운전 못하는 아빠와 살아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아빠의 입장에선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은 딸이, 학교란 모름지기 걸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난 비가 오면 젖고, 눈이 오면 받아먹으며 걸어가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다녔던 파주와 의정부는 추운 걸로는 강원도를 제외하면 손에 꼽히는 지역이다. 평택의 벌판을 가로질러 오는 겨울바람을 상쾌하게 여기며 이십 대를 보냈고 묘하게 텁텁하고 건조한 추위가 특징인 대전에서 대학을 다녔다. 덕분에 지금도 어지간한 추위는 그런가 보다 한다.


대학을 다녔던 대전의 여름은 묘하게 답답한 구석이 있다. 대전이 산에 둘러쌓인 분지이기도 하고, 내가 다녔던 학교가 대전 도심에 있어서 더 더운 탓도 있다. 이런 곳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사람 입장에선 부산의 날씨는 그야말로 휴양지의 날씨다. 물론 본 투 비 부산인 딸은 4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체감하며 살지만.



거기서 만나기로 해

규랑이랑 만나기로 한 곳은 집에서 오 분 거리인 박물관 측문이다. 박물관엔 출구가 크게 네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등굣길에 접하고 있는 측문이다. 이 측문과 마주하는 횡단보도 건너편이 규랑이네 집이다. 마침 규랑이네 집 앞이 큰 골프 용품 매장 주차장이어서 규랑이가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몇 시에 만나기로 했냐고 물어봤더니 8시 10분에서 15분 사이에 만나기로 했단다. 하루, 이틀은 제법 잘 나왔다. 우리가 십 분에서 십 이분 사이에 도착해서 보행자 신호를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기다리면 헐레벌떡 규랑이가 나왔다. 어떤 날은 규랑이가 먼저 나온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오 분이 넘었는데도 규랑이가 나오질 않았다. 딸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누굴 기다려본 적이 없는 딸은 자기가 정해 놓은 등교 시간과 친구라면 기다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우정이라는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냥 가자고 했다. 아빠가 그렇게 해줘야 될 것 같았다. 딸은 돌아섰다. 그렇게 규랑이도 알게 됐다. 늦게 나오면 은채는 가버린다는 것을.


그것은 어찌 보면 냉정한 교육이다. 아내에게 듣기로는 카풀을 해보면 늦는 사람은 매번 늦는 다고 한다. 늦은 걸로 눈치라도 줄라치면 뭐 그런 거 갖고 그러냐는 투로 적반하장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자기를 태워주고,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 내려 주는 걸 당연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영화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 또한 누굴 기다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아니 싫어한다. 웨이팅 해서 밥 먹는 것도 싫어한다. 광고 회사에서 십 수명의 AE들의 미팅 스케줄에 맞춰 카피를 써줘야 했기에 늘 마감 시간에 민감하고 내 시간, 남에 시간 할 것 없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물론 나도 소중한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다. 언제 오겠다는 사람의 시간에 맞춰 역이나 공항에서 기다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오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평택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천안에서 출발한 연인이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았다. 보통 때였으면 길어야 오십 분, 운전사 아저씨가 심기가 불편하시면 30분 컷도 가능한 거리다. 삼십 분을 더 기다렸다. 오지 않았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그야말로 하염없이 기다렸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그녀가 내렸다. 중간에 버스가 퍼져서 갈아타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왔으니 다행이었고 앞에 서 있어주니 반가웠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연인이 날 기다린 적은 있어도 내가 연인을 기다린 적은 없다. 감독은 나보고 늘 나쁜 남자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아니라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딸은 기다리다 먼저 가게 되면 간다고 톡을 남기고 쿨하게 돌아설 줄 알게 됐다. 규랑이는 규랑이대로 은채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아침 시간을 규칙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친구를 사귀고 그 우정의 깊이를 더 해간다는 건 그렇게 서로의 다른 삶을 긍정하고 안 맞는 건 맞춰가고, 그래도 안 맞는 건 그러려니 하면서 적응해가는 것이리라. 아이들이라 그런지 기다리다 만나도, 먼저 갔던 다음 날 만나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그저 둘이 만나면 신나게 재잘거리면 갈 뿐이다. 둘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한참 보다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