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53
거실의 큰 테이블에 앉아서 딸이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난 그런 딸을 구경(?) 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스마트 폰으로 뭔가 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때 딸이 물었다.
"아빠 히스테리가 뭐야?"
딸이 개념을 물으면 곤란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열 살짜리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말에 담긴 또 다른 단어를 설명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 날도 적당히 설명해줬다.
"뭐 대충... 마음속 문제가 표정이나 행동으로 터져 나오는 거?"
왜 이걸 묻나 했더니 프로이트의 위인전을 읽고 있었다. 다 읽고 나서 독서록을 써야 하는데 그 내용이 쉽지 않아서 난감한 표정이었다.
"아.. 진짜 이 시리즈 중에서 제일 어려운 사람이 두 사람인데 한 명은 니체고, 한 명은 이 사람이야."
"ㅋㅋㅋ.. 인정, 인정. 어른도 그래. 읽은 사람도 모르고, 안 읽은 사람도 몰라.
아빠도 야, 읽은 사람 중 하난데 잘 몰라."
아내도 나랑 맞장구치며 큭큭거렸다.
"아니 웃을 일이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써야 하냐고. 프로이트가 뭐한 사람이라고."
결국 초딩의 눈높이에 맞게 쉽고 간결하게 얘기해줬다. 과거엔 마음이 아파서 행동이나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은 다 가둬버렸는데 이 사람이 그 원인은 마음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걸 치료하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뭐 대충 초딩 수준에 맞게 설명해 줬다.
여하간, 초등학생용 위인전 세트에 왜 니체와 프로이트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뭐, 이 두 양반 말고도 어떻게 실렸을까 싶은 기가 막힌 사람은 많다. 예를 들어 케인즈, 칸트,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더 재미있는 건 저자인데 <스튜디오 울림>이다. <용감한 형제>나 <신사동 호랭이> 같은 건가? 그도 아니면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 그렇다면 사람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라는 건데. 책 만듦새의 책임은 그럼 누가 지는 걸까?
아마 내가 사는 책이었다면 절대로 안 샀을 거다. 난 개인적으로 방송국이나 단체 이름, 학회 이름으로 나온 책은 안 산다. 공동 저작이어도 저자의 이름들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는 책을 산다. 열 사람 중 최소한 한 사람 정도는 알아야 책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왜 초등학생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니체, 칸트, 프로이트를 알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읽었기에 다들 안다는 착각에 빠져서, 정작 어른이 되선 이들의 책을 안 읽는 건가? 벌써부터 신석기가 어떻고 청동기가 어떻고 하던데 애들 머리에 과부하 생기는 건 아닐지 살짝 걱정이다. 어린 시절에 좀 머리에 여유가 있어야 어른이 돼서 책도 읽고 공부도 더 하고 그러는 건 아닐까 몰라.
어찌 됐든 몰라도 되는 건 패스하라고 말하고 싶은 아빠지만, 엄마가 어렵게 병원 도서관에 빌려 온 세트인지라 딸은 묵묵히 한 권씩 독파해내고 있다. 진짜 다른 건 몰라도 저 인내심과 끈기 하나는 누굴 닮았는지 존경스럽다. 공부를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맞는다면 딸은 걱정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