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55
앞서 썼듯이 가을 학기부터 규랑이와 갔다. 사진에서 봤다시피 규랑이는 머리 하나 작은 아담한 친구다. 게다가 호리호리하고 약간 구부정한 자세여서 늘 메고 다니는 빨간 가방이 더 크게 보인다. 규랑이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다 보면 규랑이가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건너편에 있는 은채를 발견하면 총총총 뛰어 횡단보도 앞까지 온다. 신호를 기다렸다, 바뀌면 또 뛰어 건너온다.
"규랑아. 왜 뛰어. 다쳐. 아침부터 뛰면 피곤해."
걱정 많은 아저씨가 몇 번을 말해도 규랑이는 은채한테 뛰어 온다.
시월에도 딸이나 아빠나 둘 다 반소매, 반바지였다. 시월에 이런 날씨였던 적이 있었나. 규랑이와의 도킹 장소까지 함께 걸어가다가 날씨 얘기를 했다.
"가을에 둘 다 이게 뭐냐?"
"그러게."
"그래도 딸은 7부 바지라도 입었지."
"맞아. 아빠는 완전 반팔, 반바지."
"그렇지. 아빠는 가을에 대한 예의가 없다.
한 학교를 삼 년 가까이 다니다 보면 얼추 같은 학년의 여학생 대부분의 얼굴 정도는 알게 된다. 3학년 여학생이라고 해 봐야 다 합쳐야 60명이 좀 넘을까? 내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한 반 정도의 인원에 불과하다. 이 애들 중에서도, 딸의 표현을 빌리면 찐친이 있다. 그 명단엔 규랑이, 아영이, 여린이, 지유가 있다.
이중 지유는 세 살 때부터, 은채의 표현을 빌리면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한 친구라 저 명단에 들어가 있지만 그 명단을 초월하는, 열외적인 존재다. 규랑이, 아영이, 여린이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다. 요즘엔 규랑이를 가장 친한 친구로 꼽는다.
당연하다. 매일 아침 함께 등교하는 사이가 보통 사이는 아니다. 규랑이 등교 시간이 제법 들쭉날쭉했는데 은채 때문에 8시 10분 언저리로 정리됐다. 이 현상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규랑이 엄마.
규랑이는 같은 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 오빠가 있다. 1학기 땐, 아담한 녀석이 큰 가방 메고 아침마다 혼자 가다 우연히 은채를 만나면 같이 가곤 했다. 그때, 은채한테 물었었다.
"규랑이는 매일 혼자 가는 거야?"
"응. 1학년 때랑, 2학년 때는 오빠랑 같이 갔는데 오빠가 사춘기가 와서 혼자 간데."
"응? 벌써?"
"응."
"증세가 어떻대?"
"맨 날 얼굴 찌푸리고 있고,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오고.
에어팟으로 음악만 듣고, 규랑이 못 오게 하고. 그런데."
이 오빠는 빨간색 MTB를 타고 다닌다. 지난여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요즘 유행하는 헐렁한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귀에는 에어팟을 끼고 동생의 보폭에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규랑이는 종종 거리며 그 뒤를 쫓아갔다. 은채 말로는 사춘기와 중2병이 함께 와서 그렇다고.
가을 학기, 학부모 면담이 10월 초에 있었다. 물론 비대면, 전화로 했다. 코로나19 전에는 대면 학부모 면담을 했었다. 1학년 첫 면담 때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언제쯤 하는 게 좋을지, 뭘 물어봐야 할지 등등을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이런 명언을 했다.
"야! 진짜 상담이 필요한 엄마들은 신청을 안 하고 너 같이 상담 필요 없는 엄마들이 난리다. 닌 그런 거 안 해도 된다. 안 해주는 게 선생님 도와주는 거다. 1학년 담임이 얼마나 바쁜 줄 아나?"
그러나 그런 친구의 말을 귓등으로 안 들을만큼 아내는 학부모상담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날 저녁, 내가 맥주를 마시다가....
"뭐, 굳이 안 해도 되지 않나?" 했더니만....
"아니 내가 좀 궁금해서." 하기에...
"무슨 점집 가냐?"라고 한마디 했다.
어찌 됐든 전화로 상담을 했다. 역시나 선생님은 웃으시며 "상담 안 해도 되시잖아요." 하셨다고 한다.
라이벌은 동반자이기도 하다. 태용이가 그런 존재다. 태용이는 은채의 라이벌이자 남자 사람 친구다. 은채 말로는 못하는 게 없는 남자.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웃기기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야. 그럼 반칙이지. 사기 캐릭터인데"
"아, 근데 태용이가 얼굴은 좀 평범하고 키는 작아."
"아 그래? 야 좀 위로가 된다."
선생님이 상담 시간에 말씀하시길 태용이도 집에 가서 은채 얘기를 한다고 한다. 동경의 대상이자 라이벌로. 그렇게 서로를 의식하며 나름 열심히들 하나보다.
애들이 떠들 때, 반장인 딸이 이름을 적는다. 그러면 조용해진다고 한다. 이게 당연할까? 상담 시간에 선생님이 말하시길 그건 당연하지 않다고 한다. 이름이 적히면 왜 내 이름을 적느냐고 항의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반은 그렇지 않다. 반 아이들이 딸을 따르고 믿기 때문에 딸이 조용히 하자면 조용히 하고, 이름을 적으면 그런가 보다 한다고 한다. 이게 일종의 아우라와 카리스마인데. 흠...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