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56
밤 열 시쯤, 딸이 자러 갔다. 아내가 테이블 위에 있던 펜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못 보던 건데?"
"그런 거 있지 않았어?"
"아니. 이건 처음 보는데. 은채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금세 잠들었을 리는 없고, 못 들은 척하는 거였다.
"은채야 나와 봐."
결국 은채가 나왔다. 아내의 추궁이 시작됐다.
은채의 첫 번째 진술은..."친구들이랑 맞췄어"
다시 취조... "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재 진술은 "규랑이가 사줬어."로 바뀌었다.
다시 취조, "규랑이가 왜? 규랑이가 너랑 여린이 것까지 사줬다고?"
3차 진술이 길어졌다.
"응. 내가 이거 맘에 든다고 했더니 규랑이가 내가 사줄게 했어.",
"그럼 맞춘 건 아니네?"
"응... 그게 애들은 다른 것 사고."
취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너 그럼 뜨는 시간 동안 학교 밖에 나갔다 왔다는 거잖아?"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교실 시간 사이에 비는 시간에 학교 밖에 나가는 걸 금지하고 있다.
"아. 그렇지."
"우리 그건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추궁 끝에 밝혀진 진실은 이렇다. 아침마다 함께 등교하는 규랑이가 제법 큰돈을 아침마다 받아오는 모양이다. 규랑이는 함께 친한 여린이와 은채랑 학교 밖 문방구에 가면 "내가 쏠게."이러면서 쏘기 시작했던 듯. 가을학기 초부터 말이다.
"너 아까 몰래 버린 포장지는 뭐야"
내 질문이 이어졌다. 아까 우연히 본 포장지가 맘에 걸렸다.
"규랑이가 뽑기 시켜 준거야."
파우치에서 세 개가 나왔다.
"세 번이나 해준 거야?"
"응. 세 번 갔어."
"딸, 너 아빠가 뭐라 그랬어. 넌 용돈 그냥 받지만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 했어?"
"엄마랑 할아버지가 일해서 번 돈."
"그렇지. 할아버지가 택시 하시고 엄마가 회사에서 번 돈이야. 그럼 규랑이 용돈은 누가 번 거야?"
"규랑이 엄마가."
"그렇지.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돈 없어. 그러니까 항상 돈 쓸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쓰라고 한 거야. 친구 돈도 그러니까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야. 알았어?"
은채 말로는 규랑이 아버님이 외지 나가서 일을 하신다고 한다. 혼자 남매를 돌보는 엄마가 이런저런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을 못쓰다 보니 아무래도 용돈을 좀 과하게 주시는 모양이다. 규랑이는 매일 은채랑 학교를 가면서 돈독해졌고 돈 무서운지 모르는 규랑이가 그 돈을 돈독해진 친구한테 펑펑 쓴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 마음을 얻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또 그 얻은 마음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돈으로 술로 몸으로 명품으로 그 마음 줄을 엮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살 수 있어도 마음이 살 수 있던가.
친구는 그저 친구이니 애쓰지 않아도 친구라는 사실을 알 나이는 아직 안 된 걸까? 행여 죽고 못사는 친구라 하더라도 인연이 다 되면 안 볼 수 도, 못 볼 수도 있고, 그렇게 연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 인연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기에는 아직 한참 어리겠지? 그저 곁에 있는 동안, 그 소중함을 간직한 채, 그 사람의 존재와 온기를 만끽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 또한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 이리라.
아빠와 엄마의 거듭되는 추궁에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자서 다음날 아침 눈이 부었다. 마침 이 날, 울산 작업실에 갈 일이 있어서 둘이 가는 모습을 못 본 터라 규랑이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인증샷을 보내라고 했다. 그것도 까먹고 있어서 카톡을 보낸 뒤에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