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로 국한했을 때 요즘 TV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비연예인은 오은영 씨 아닐까? 오은영 씨는 처음엔 아동 심리를 상담해줬다. 그러다 연예인 상담으로 이어졌고, 요즘엔 부부 상담으로 영역을 넓혔다. 제목이 그럴듯하다. <부부 클리닉 결혼 지옥>. 이런저런 상담에도 시청률이 안 나왔는지 6월 말부터 섹스리스 특집을 하기 시작했고 최근엔 코미디언 부부인 강재준, 이은형이 나왔다. 이들은 올해 한 번도 안 했다고 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이들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한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일단 두 사람이 남매 같고 친구 같다. 게다가 강재준이 집에서 24시간 벗고 있다. 이은형의 표현을 빌리면 커다란 차우차우처럼 보인다고. 게다가 늘 텐션이 높아서 운동모임만 수십 개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한다. 그 텐션이 좋아 결혼했는데 요즘엔 가끔 그게 꼴 보기 싫을 때가 있을 정도라고.
오은영 박사가 이들과의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몇 마디가 있다. 평소에 긴장이 많은 사람은 섹스도 긴장의 스테이지로 여겨 그걸 회피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기호나 성향을 얘기하지 않아 서로의 성적 취향을 이해 못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친밀감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정서적, 다른 하나는 육체적이라는 것.
T-1000 같은 사람, 또는 사랑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이 힘들다.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이 힘들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던지는 행위이지만 그전에 그 던질만한 자신이 있어야 한다. 던져졌다 부서진 후 다시 자신이 되는, <터미네이터 2>에 나오는 T-1000처럼 물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형태를 복원할 줄 아는 이들이 사랑에 능하다. 이 사랑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사랑 아니면 죽을 것처럼 이 사랑에 목을 매면서도, 사랑이 끝나면 훌훌 털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이 연애를 잘한다. 역설적이지만 사랑은 그렇게 바위처럼 무거우면서도 모래처럼 가벼운 것이다. 모래도 한 때 바위였고, 바위도 언젠간 모래가 되듯이 사랑 또한 그 도래와 퇴장을 한 몸에 품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어려운 건 사랑이 사라지지 않을 무엇이라, 영원한 무엇이라 생각하거나 느닷없이 일상에 침투한 사건적 이벤트라고 여겨서 인지도 모른다. 또, 사랑은 환상이고 일상과 다른 사건이라고 여겨서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쾌락은 일상과 상식의 선에서 있어야만 하거나 일상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겨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한 여름의 페스티벌이면서 동시에 매번 반복되는 열대야 같은 것이다. 이 두 사건 모두, 여름 안에 있듯, 사랑 안에도 이 두 개의 성질이 있고, 연인에게도 당연히 이 두 개의 양면성이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유혹의 환상
오래전 강사 시절,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단어의 의미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단어는 한 개인의 삶의 지평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그 내연과 외연이 확장된다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때 사례로 든 단어가 유혹이었다.
내가 강사로 나가던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의 학생들에게 유혹은 상당히 추상적인 단어다. 유혹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마음을 끌리게 하는 것.
2.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
3. 성적인 목적을 갖고 이성을 꾐.
이런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 강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수긍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럼 어떤 상황, 어떤 장면이 유혹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말해 봅시다.”하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침묵이 흘렀다.
이들에게 유혹은 아주 추상적이고 사전적인 단어였다. 유혹하면 생각나는 영화도 없었고 그들 인생에 딱히 유혹이라 부를만한 상황이나 순간도 없었다. 그들은 갓 스물을 넘겼고 스물일곱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중 절반 이상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90퍼센트 이상이 주일마다 교회를 가는 성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유혹은 목적성을 가진 말과 행동이다. 특히 이성을 유혹할 때 그렇다. 유혹을 하거나 받기 위해선 유혹받을만하거나 유혹이 만연한 상황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부연해서 설명하면 유혹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외모이거나 이성이 확 무너질 정도의 시공간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강의실의 학생들 중엔 전자의 조건을 갖춘 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후자의 조건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유혹이라는 단어가 아주 먼 단어가 된 것이다.
그때 학생들에게 보라고 한 영화가 <나인 하프 위크>였다.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유혹적인 영화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아무도 안 봤을 것이다. 영화는 그 유명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1986년도 영화다. 그가 그 유명한 <플래시 댄스>를 만든 건 1983년도였고 다이안 레인의 재림을 알린 <언페이스풀>을 만든 건 2002년이었다. 당시 평론가나 팬들은 야한 영화밖에 만들 줄 모른다고 폄하했지만 그의 영상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사디스트적인 남자와 그를 통해 성에 눈 떠가지만 오히려 그에게 사랑을 가르친다는 아주 상투적인 이야기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세련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90년대 한국에서 감각적이라고 회자됐던 광고들은 거의 이 영화의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광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유명한 광고와 이 영화를 동시에 보면 "이건 표절인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광고도 많다. 나 또한 이 영화의 영상을 보면서 광고를 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유혹, 그다음에 오는 것들
유혹은 최소한 이런 세련됨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여야만 한다. 이 영화 속 연애가 실패하는 지점, 그러니까 여주인공 엘리자베스가 10주 가까이 정신분열적인 혼란을 겪다가, 결국엔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은 유혹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일상적 사랑의 부재함 때문이었다. 남주인공 존 그레이(그렇다. 놀랍게도.)는 자극과 쾌락을 주는 법을 알았고 놀라움을 선사할 줄도 알았다. 저녁에 보고 아침에 봐도 멋지고 잘 생겼다. 거기까지다.
그는 직장을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해서도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집은 너무나 깨끗하고 옷장의 옷들은 칼각으로 정리되어 있고 외모도 항상 말끔하다. 아침에 일어나도 눈곱도 안 끼어 있고 아마 방귀도 안 뀌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그리고 이 영화 속 연애는 너무나 영화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은 광고에나 나올법한 것들이었다. CG 없이 어떻게 광고를 만들 것인가라는 강연회가 있다면 제일 먼저 교재 삼아 봐야 할 영화다.
영화 같은, 그러나 영화일 수는 없는
그러나 사랑도, 연애도 영화 같을 수 있고, 영화 같은 순간들이 있어야 하지만 영화 그 자체여서는 안 된다. 이 영화 제목, 아홉 주하고 반은, 결국 두 달 반 정도다. 날짜로 하면 칠, 팔십일 정도 될까? 예전 이 영화 홍보 문구는 보통 이 기간을 한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는 기간이라고 했었다. 이 기간은 환상의 유통기한이다. 환상만으로 사랑이 유지되지 않는다. 구름 위를 떠다니던 시간이 끝나면 우린 일상에 안착해야 한다. 일상에 안착하기 싫어서 사랑을 환상으로 남겨두면 환상의 생산자는 지친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맨 날 분장하고, 냉장고 앞에서 먹을 거로 장난치다 꿀을 바르며 섹스하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어느 구석진 계단에서 섹스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저 코미디언 부부처럼 우린 일상을 살아간다. 사랑이라는 환상을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살며 그 환상의 침범을 경계한다. 환상엔 장치가 필요하다. 저 경계를 허물고 일상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선 의도적인 뭔가가 필요하다. 섹스를 다시 하기 위해선, 다시 일상에 뜨거운 뭔가를 불어넣기 위해선 우린 잠시 뻔뻔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좀 전까지 맥주에 치킨을 먹으며 주말 드라마를 같이 보던 사이어도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엘리자베스가 되고 존 그레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외모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저 노력하고 그렇게 믿어줘야 하는 것이다. 연극처럼 말이다.
우치다 타츠루가 <수업론>에서 얘기했듯이 성당이나 콘서트홀, 예술문화회관이나 박물관이 그러한 형태를 하고 있는 건 그곳이 일상과는 다른 뭔가를 담고 있는 액자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나 오페라를 보고 난 뒤 멀쩡하게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이 건물들이 “이제부터 당신은 다른 세계로 갑니다. 이 액자를 통과하면 그때부턴 환상이 펼쳐집니다.”하고 보내는 사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액자를 벗어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로 말이다.
환상의 큐 싸인
사랑과 섹스도 그러해야 한다. 어떤 싸인, 감독의 액션, PD의 큐 싸인이 떨어지면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일사불란하게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듯 연인과 부부 또한 어떤 싸인이 떨어지면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치명적인 연인이 되어줘야 한다. 그야말로 극적인 장면 전환, 하나의 촉매로 넘나드는 다중인격자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그때, 그 장면에서 모든 유혹은 허락되어야 한다. 유혹이 일상 속에 있지 않는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른다. 그 관계에선 모든 싸인이 결국엔 섹스로 귀결된다. 뭘 해도 결국 그걸로 이어지니 당연히 뭘 해도 짜릿한 것이다. 그 불륜의 축소판을 일상으로 가져와야 한다. 술을 마시다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하기 위해 뭔가를 마시고, 뭔가를 보다가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하기 위해서 뭔가를 보는 것이며, 애가 잠들어서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하기 위해서 애를 재워야 하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전성기는 짧다. 다음에 하자고 넘어가기엔 너무 짧다. 그렇게 꽃 같은 나이가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중년이 되면 봄꽃 밑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긴긴 후회를 남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