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ul 29. 2022

아빠의 팔자, 겨울의 공포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66

예상치 못한 아빠의 팔자

겨울, 보온텐트에서 자는 딸을 재우러 들어가서 옆에 누우면, 곧잘 잠이 든다. 그전까지 누워서 장난도 치고, 춥다고 엄살도 부린다. 이불을 당겨 덮으며 장난 치고 엄살을 부리면 그때마다 깔깔댄다. 그러다 딸이 먼저 어깨를 움츠리고 왼쪽으로 돌아누워 잠든다. 그런 딸의 등을 보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나도 잠들곤 한다.      


어느 날, 텐트 안에서 수다를 떨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고, 아빠 팔자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아빠 팔자가 어떤데.”

“아니, 아빠가 젊었을 땐, 이렇게 매일 밤, 아빠 괴롭히기 좋아하는 딸하고 장난치다가 잠 들 줄 몰랐거든.”

키가 140cm가 넘은 딸은 이런 말을 들으면 또,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실룩거린다. 아빠의 한숨 어린 반응을 기대하면서. 정말 신기한 팔자다. 팔자는 당연히 예측할 수 없다. 이런 딸의 아빠라니.


초췌한 아빠는 안 돼

"아이고 따셔라"

자려고 자기 보온 텐트에 누운 딸 옆에 또 누웠다. 아내가 주문한 석화가 신선했고 처음 본 맥주와 그 맛이 어울렸던 저녁이 지난 뒤였다.

"아빠. 맥주 좀 줄여."

 "응"     

늘 하는 잔소리라 건성으로 답했다.

"아빠가 며칠 달아서 맥주 마시면 아침에 얼굴 보면 초췌해 보여. 매달 5일에  마시는 규칙도 안 지키고."


초췌라는 단어를 어디서 들었고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썼는지는 몰라도 효과는 제대로다. 이번엔 마음을 담아 알았다고 했다. 멀쩡한 컨디션에도 뱅상 카셀과 기타노 다케시의 몰골, 그 사이, 그 어디쯤인데 맥주 좀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은 오죽하겠나.


얼굴에 신경 안 쓰는 늙은 아비라도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 그래서 그럭저럭 남은 생기라도 얼굴에 붙잡고 있어야 딸이 어디 가서 아빠라고 얼굴을 들이밀지 않을까? 프로필 사진도 늙어 보인다고 바꾸라는데. 나이를 들수록, 얼굴에 책임져야 될 이유는 많아진다.


겨울의 공포

사실 얼굴과 체력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선방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까지 옷을 안 산다. 살 생각도 없다. 살이 급격히 찌지도 빠지지도 않는다. 서른 넘어, 사이즈는 같다. 사이즈가 변하지도 않으니 옷도 그대로다. 게다가 요즘엔 아무리 싸구려 옷이라도 최소한 십 년은 버텨주니 더 안 산다.     


그런데, 요 근래, 겨울만 되면 옷을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홈쇼핑을 보면 그런 충동이 든다. 이렇게 따뜻한 부산에 살면서, 게다가 온도별로 걸맞은 옷이 한 개씩 있으면서 무슨 옷이냐며 스스로를 설득해도 채널이 돌아가질 않는다. 결국 올 겨울에도 점퍼 하나랑, 겨울 바지를 샀다. 아내도 이제 슬슬 남편이 불쌍한지 홈쇼핑 채널이 안 돌아가고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주문을 해준다. 사이즈를 묻지도 않고 주문을 끝낸다.  


딸과 함께하는 겨울마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 추워?"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고 거기에 맞게 옷을 입혀 나가지만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오후에 하교할 때면 뽀글이 점퍼도, 경량 다운도 손에 들고 나오는데, 그러면 또 "안 추워?"하고 묻는다. 지도 더워서 얇게 입고 와 놓고선 더 열이 많은 애한테 또 묻는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저녁에 환기시킨다고 문을 열어놔서도, 따수미 텐트에 재우러 들어가서도 "안 추워?"묻는다.


서울 강북에서 태어나, 파주, 의정부, 평택, 대전 등지에서 살며 배웠다. 나름 추운 동네다. 게다가 의정부까지는 살림살이도 형편없어서 겨울마다 걱정이었다. 그래서일까? 겨울의 초조함이 있다. 더 이상 김장을 할 필요도 없고 줄어드는 연탄을 보면서 들던 초조함도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이상하게 옷은 사야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물론 옷은 무조건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린다는 규칙을 세워 놨기 때문에 좀처럼 사지 않아서 이 충동을 그럭저럭 이겨내지만 가끔 못 이겨낼 때도 있다.


딸에겐 겨울의 공포가 없다. 추운 계절을 어떻게 나야 할까 하는 공포가 전혀 없다. 뭘 먹을지, 어떻게 따듯하게 잘 지와 같은 그런 공포들. 물론 봄, 여름, 가을의 공포 따위도 없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한 게 아이에겐 정상이다.      


내가 가진 공포가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 다행히 딸은 묘하게 낙천적인 면이 있다. 어제도 주산 숙제를 안 했다면서 맥주를 마시는 아빠와 모동숲을 하는 엄마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산 숙제를 했다. 그전에 수학 학습지를 풀면서 질문까지 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은 있지만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없다.


이 해 겨울, 김진영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최소한의 윤리에 대해, 특히 직업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 거제도에서 넘어오면서 감독과 했던 대화도 그런 내용이었다. 감독으로서의 직업윤리, 카피라이터 작가로서의 직업윤리... 최소한의 윤리.


그런 거 보면 읽고 쓰고 공부하는 건 이 직업을 가진 이의 최소한의 윤리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딸도 학생으로서 그렇게 담담히 공부를 하는 거고..


그러나 난 딸에게 초딩의 최소한의 덕목은 삼잘이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그런 게 우선이라고... 다행히 이 초딩의 윤리는 잘 지킨다. 똥을 잘 싸면 자랑한다. 몇 초만에 싸고 나와 두 손을 벌려 그 크기를 어림잡으며 얼마나 큰 게 나왔는지 자랑한다. 아직 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누아르, 말의 행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