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Aug 03. 2022

사랑을 만드는 공장과 스노우볼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68

12월 중순의 어느 아침, 느닷없이 비가 왔다. 데리러 갈 때쯤, 비가 그쳤다. 혹시나 해서 들고나간 우산 두 개가 민망하다. 걱정 많은 아빠는 어쩔 수 없다. 세시 넘어 나오는 딸의 실내화 주머니에 우산을 넣었다. 대신 가방은 내가 들었다.      

"오늘 안 추웠어?"라고 또 물었고..

"응"이라는 짧은 대답을 또 들었다.


어디서든 나오는 사랑

십 분쯤 걷다가 눈이 마주쳤다.

"아빠." 부르기에 봤다.

손가락 하트를 가슴팍에서 꺼낸다. 요즘 자주 꺼낸다. 아무데서나 막 나온다.

바지 주머니에서도, 후드 티 안에서도. 밥그릇이나 식탁 밑에서도...     

"야. 그거 너무 자주 꺼내는 거 아냐?"

"아. 괜찮아. 사랑을 여기서 만들거든."

딸이 가슴팍 위에 손을 갖다 대고 말한다.

"아, 그래? 많이?"

"응, 한 십만 개쯤?"

"오~ 많네. 매일?"

"아니, 일주일에 삼일만."

"그래도 재고가 제법 되겠는데?"

"그렇지. 근데 기분 좋은 날엔 더 많이 만들고, 짜증 나고 기분 안 좋을 때 백 개 정도밖에 못 만들어."

"삼일만 돌아가는 공장이 기복이 있네. 그래도 재고는 많이 쌓였겠네."

"아니. 이렇게 하트로도 보여주고 말로도 하고. 그래서 열심히 계속 만들어야 돼."

이렇게 이상한 사랑 공장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집이다.


사랑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지 처음 알았다.

사랑이 그냥 마음에서 샘솟는다는 걸 딸 때문에 처음 알았다. 

딸에게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펑펑 솟는 것임을.

아침에 본 아빠도 오후가 되면 보고 싶어지는 것임을.

엄마가 좀 늦게 오면 그새 그리워지는 것임을.


아빠의 잔소리

엊그제는 수업 종료와 방과 후 교실 사이 시간에 친구들이 많이 사는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가서 놀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놀고 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방학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좀 조심하자고 했다. 코로나도 그렇고, 독감도 그렇고. 방학 때 잘 놀려면 건강관리 잘해야 한다고 당부 아닌 당부,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알았어~"하고 답했다.

"야~ 이거 너 나중에 스무 살쯤 됐을 때 아빠가 잔소리하면 딱 나올법한 톤인데." 했더니 

"아, 그래?"

"응. 아빠가 나중에, 은채야 좀 따시게 입고 다녀라 하면, 하이고. 알았어~ 노인네. 할 때 나올 톤이야."

그러고 딸하고 한참 웃었다.     

나이 들수록 난 걱정이 늘 테고 딸은 밖에 있는 시간이 늘 텐데 잔소리를 줄여야겠다. 딸이 커도 집에 있는 시간을 늘리려면.


반에 라마라는 별명을 가진 눈썹 긴 애가 있다고 해서 너도 눈썹 길이 한번 재보자는 핑계를 대고..

저런 사진을 찍어 봤다.

    


그 이틀 후 하굣길, 더플코트의 앞섶을 활짝 열고 뛰어나온다. 지퍼를 올려주고 걸었다. 수학 시험 잘 봤냐고 물었더니 잘 봤다고 했다. 잠시 걸어 미역국 집 앞에서 미술 학원차를 기다렸다.


바람이 분다. 딸의 큰 눈망울이 겨울바람에 시려진다. 눈시울이 붉어져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아빠를 본다. 학원차를 기다리다 저 멀리 비둘기가 나타나 훌쩍 아빠 뒤로 온다. 도대체 비둘기가 왜 무서운 거냐. 지 외삼촌 영향이다. 바람이 차서 옆 건물 안쪽에 잠시 들어가자고 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니...

"아우. 아빠, 빨리 나와."

"왜?"하고 나갔더니...

"아우~ 춥다고 남에 건물에 들어가면 어떡해."하고 잔소리를 한다.

잠시 후 지는 바람을 피해 내 뒤에 숨는다.

아직은 아빠 등 뒤로 몸을 숨길만큼 작다.

잠시 후 딸의 작은 몸이 학원 차에 실려 간다.

난 바이올린 가방, 책가방, 신발주머니를 들고 집으로.


집에 와서 핫쵸코 한잔을 하면서 칼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그 작은 몸이 생각났다.

저 작은놈도 언젠간 커서 노인네가 된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겠지.

좀 더 크면 노인네 추울까 봐 겨울만 되면 전화를 하려나.


그런 생각 끝에 김훈 선생님의 한 칼럼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아직 있다. <바다의 기별>을 펴서 읽었다. 머리말을 보니 2008년에 나왔다. 여기에 <무사한 나날들>이라는 칼럼이 있다. 본문이다.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휴대폰을 사 주었고 용돈이라며 15만 원을 주었다....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나는 휴대폰을 내미는 딸을 바라보며, '아 살아 있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기뻐했다."

처음 읽을 때도 이 부분을 좋아했다. 48년생이시니 이 글을 쓸 때는 지금의 나보다 대여섯 살 많으셨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딸의 아빠가 되어 이 글을 읽으니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다. 


지는 이런저런 꿈을 얘기하고 유명한 대학들을 이웃의 어린이집처럼 입에 올리지만, 정작 아비는 그런데 욕심이 없다.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아내가 알면 뭐라 하겠지만 말이다.     


살아내면 된다. 살아가면 된다. 자기 재주를 분명히 알아 그 재주에 기대어 삶을 꾸려 가면 된다. 내 바람은 그뿐이다. 분수를 알고 주제를 알아 그릇만큼 살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은 그저 인생이 저 스노우볼 같을 것이다.

부모의 보호 아래 지가 꿈꾸고 싶은 환상을 매일 펼쳐볼 것이다.

몸도 마음도 크면 저 스노우볼 같은 부모의 보호와 품도 작게 느껴질 테고, 언젠가 저 밖을 기웃될 것이다.  


아직은 아빠의 시간이 남았다.

학원을 마치고 오면 핫초코를 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화장을 하고 싶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