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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Aug 05. 2022

달달 폭신 꽈배기 팔자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69

꼭 필요한 사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이다.

"아빠~, 아빠가 올라와야 돼."

어제, 아침 등굣길. 딸은 빌라 1층까지 내려가서야 시계를 안 차고 왔다는 것과 감전동 외갓집에 가서 먹을 한약을 안 챙겼다는 걸 알았다. 얼른 가져오라고 했다. 잠시 후, 저런 외침이 들렸다. 2층인 집에 올라가서 보니, 새로 온 한약 박스가 뜯어지지 않아서 낑낑대고 있었고, 시계도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 큰 소리로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초딩 주제에 왜 그렇게 스마트 워치를 차고 가야 되는지 모르지만 딸은 학교 갈 때 꼭 시계를 차고 가려한다. 만보계도 되고 알람도 되고 아빠와의 조우 시간 체크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여하간 그렇게 한약 박스를 뜯어주고, 시계를 찾아주고 규랑이 만나는 데까지 데려다줬다.     


솔직히 남편으로는 쓸모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고, 지갑엔 현찰이 없다. 카드도 집도 다 아내 이름으로 관리하고, 집에 필요한 걸 주문하는 것도 아내 몫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딸에겐 아빠의 쓸모가 절대적이다. 안아주고 시계를 찾아주고 한약 박스를 뜯어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수학 문제를 같이 풀어주고 함께 편의점에 가주고 학교를 함께 오간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 다는 게 이런 거구나. 요즘 실감한다.


집에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

"아빠, 오늘이 내가 친구들이랑 제일 많이 노는 날이거든, 방과 후 교실 안 가도 좀 놀고 오면 안 돼?"

안 된다고 했다. 요즘 학교 직원 중에 확진자가 나와 여러모로 학교가 비상이다. 그나마 은채네 학교는 최후까지 버틴 셈이다. 이 와중에도 방과 후 교실은 정상 운영되는데, 딸에겐 그냥 이번 주 전체를 통으로 쉬라고 했다. 지도 그렇고 엄마, 아빠도 그렇고 조심해야 될 때니까. 마침 오늘이 수업과 방과 후 교실 사이에 가장 시간이 떠서 친구들과 놀 시간이 가장 많은 요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저런 부탁을 한 것이고.     

 

"방학 때 친구들하고 놀아. 집으로 놀러 오가도 되고."

별생각 없이, 미봉책인 발언으로 아침을 수습했다.

"진짜? 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다는 애들이 줄을 섰어."

"그래? 뭐 규랑이는 아빠도 얼굴을 자주 봤으니까..."

그렇게 얼버무리고 집을 나섰다.    

 

보여줄 수 없는 집

친구가 집에 온 적이 거의 없다. 스무 살 무렵, 평택에 혼자 살 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잠시 혼자 살던 자취방이 교회 청년들의 아지트가 된 적은 있지만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집에 친구가 놀러 온 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번 정도다.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무슨 실과 실습 따위를 하겠다고 왔었고, 4학년 때인가는 가게에 딸린 방에 다락방이 있었는데 그 다락방에 친구가 왔었다. 그때, 어머니가 이런 방도 네 방이라고 친구를 불러와 자랑하고 노냐고 혀를 찼던 기억이 있다.

   

가난은 사람을 메마르게 한다. 가난은 자랑이 될 수 없고 보여줄 게 없는 삶의 현상임을 뼈저리게 느낀 이후부터, 친구를 집에 초대해 본 적이 없다. 대학에 가서 여자를 사귀고 나서야 내 지인이 집에 왔다. 가까운 곳에 살던 여자 친구 A는 우리 집을 제 집보다 더 편하게 생각하고 뒹굴었고 다른 도시에 살던 여자 친구 J가 놀러 오면 어머니가 재워주셨다. 내 방에서... 아, 물론 두 명을 동시에 사귄 게 아니라 한 명은 1학년 때... 쓸데없는 연애사다. 여기까지 하자.     


어찌 됐든, 집에 놀러 오겠다는 딸의 친구들은 예전부터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망설여졌다. 아내는 그냥 내 성격이 조용한 걸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사람들이 집에 오는 걸 싫어하나 보다 하고 지레짐작하고 딸을 타일렀다. 이 날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의 공포랄까, 노출되기 싫었던 가난의 기억이랄까, 그런 것들이 딸의 친구 초대를 막았던 것 같다.      


매일 아침 "감귤 씨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는 규랑이가 집에 오고 싶다면 환영해야겠지. 은채의 몇몇 단짝도. 뭐 세수도 해야 하고 머리도 감아야 하고 옷도 적당히 챙겨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행복의 두 종류

예측되고 기대되는 행복이 있는 반면 예측되지도, 예측할 수도 없어서 기대되지도 않는 행복이 있다. 전자의 경우엔 생일이 다가온다던가,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엔 언제나 모텔을 가곤 하는 혈기왕성한 커플이 잘 차려 입고 집을 나설 때라던가, 신혼여행을 간다던가, 내일 저녁에 친구를 만나서 예상되는 술자리라던가 뭐 그런 것들이다. 반면 예측되지 않는 행복은 마치 사고와 같아서 정신 차리고 보니 그 행복 속에 있는 경우다.    

 

이십 대, 삼심 대까지는 내가 딸의 아빠로 살게 되리라고는, 그런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예측도, 기대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자식을 갖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서이었기도 하고, 그런 행복은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얼마쯤 확신하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하루 종일 딸이 백번쯤 아빠를 부르고, 그 부름에 백번쯤 딸과 눈맞춤을 하다 보면 불현듯 이런 행복은 도대체 뭔가, 이 행복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건가 하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게 된다.


따수미 텐트에 자러 들어간 딸 옆에 누워서 함께 이불을 덮고 얘기할 때, 그러다 딸의 장난과 괴롭힘에 죽겠다는 소리를 낼 때, 뒤이어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아이고 아빠 팔자가 이렇게 될지 진짜 몰랐네."하고. 그럼 딸이 묻는다. "아빠 팔자가 어때서." 내 팔자에 이런 날이 있으리라곤 예측 못했다. 팔자가 꼬였는데 꽈배기처럼 달달하고 폭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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