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모 유명 사립대학에 대학원 시험을 치르러 간 적이 있었다.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다. 그 학교는 개화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많았고 어떤 건물은 근대 유산과 사적으로 지정돼서 학교조차 마음대로 허물지 못했다. 그런 건물 안에 있는 작은 극장식 강의실에 앉아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학교 이름 이상의 권위와 명성의 무게를 체감했다. 물론 그 자리에 그 당시 공중파 방송의 아주 유명한 여자 앵커가 시험을 치르러 왔기에 그 느낌이 더 강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과거의 대학 건물, 특히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엔 선교사를 보낸 미국의 도움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두 개 정도는 있었다. 필자가 다녔던 대학의 신학과도 그런 건물에서 공부를 했고, 심지어 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할 때는 그 건물을 허문 뒤, 벽돌 하나하나를 그대로 가져갔다. 벽돌들은 훗날 재정이 확보되면 그대로 복원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이전한 새 캠퍼스의 빈터에 묻어 놨고, 실제로 학교를 옮긴 지 십몇 년이 지난 후 신학과 동문들의 후원금을 모아 그 벽돌을 사용하면서 건물을 복원했다.
대학의 신성함이 무너짐을 목격하며
대학은 신성한 곳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캠퍼스 진입 결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찰들은 사복을 입은 채 잠입해야 했고 선배들은 이들을 프락치라고 부르며 주의를 주곤 했다. 21세기 들어서도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캠퍼스로 진입한 예는 거의 없다. 2015년, 서강대학교에 경찰 80명이 투입된 사건은 모든 일간지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그전에도, 이화여대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에서 유사한 진입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언론은 술렁거렸다. 대학은 그렇게 상아탑이었고 학문의 전당이었다.
그러나 경찰보다 더 무섭게 진입했지만 언론이 무관심했던 21세기의 침입자는 시장 논리였다. 재단이 대기업으로 넘어가면 대학의 구조조정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진행됐다. 필자가 잠시 적을 뒀던 모 대학에서는 재단이 대기업으로 전환된 후 인문대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이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방송인이자 작가인 사람이 바로 자리를 잃었고, 수많은 학과들이 통합되거나 폐지됐다. 특히 전국에 두 개밖에 없던 민속학과의 통폐합은 전국적인 이슈였다. 그때 실감했다. 대학의 담을 넘어오는 경찰이나 잡상인, 수상쩍은 변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장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물결임을.
그 물결은 강의실에서 상호 간 평가라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학생은 교수의 상대평가에 예민해졌고, 교수는 학기말마다 우아한 포물선 그래프로 나타나는 정규분포 비율로"만" 학점을 줘야 해서 골머리를 알아야 했다. 그 분포를 어기면 학점 처리가 마감되지 않도록 시스템은 완고하게 설계됐다. 학생도 교수도 그 시스템 앞에선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온 것들
필자가 대학에서 강사 노릇을 하던 2004년부터, 학생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mp3 플레이어로 강의를 녹음하기 시작했고, 그 후 몇 년부터는 노트북이 강의실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열 명 안팎이 듣는 대학원 수업에도 노트북은 자연스러웠다.
2천 년대 초반만 해도 스마트 폰, mp3 플레이어, 노트북의 등장을 거부하던 교수들이 있었다. 강의실에서의 권력은 교수에게 있었고, 강의실의 룰은 교수의 재량이었다. 그러나 교수 또한 학생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되면서 이 힘의 균형이 묘하게 맞춰지기 시작했고, SNS가 일상화되면서 교수의 평판은 학생들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또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점 받기 쉬운,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강의-와인 예절 같은 강의가 생긴 것도 이 시기다-에 학생들이 몰리면서 교수들은 강의의 내용뿐만 아니라 강의실의 규칙 또한 친학생적으로 변화를 줘야만 했다. 이런 내용들은 오찬호의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 결과, 결국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선 사유를 위한 공간과 시간의 여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학이 70년대의 급격한 상업화의 물결에 맞서 프랑스의 이론을 수입해 상아탑을 더 높이 세우고,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속물주의를 공격하며 나름의 영역을 지켜냈던 시도가 한국에서는, 결론적으로 실패했고 좌절됐다. 학생은 줄어드는데 대학은 여전히 많고 취업률은 여전히 낮은 이천 년대를 겪으면서 대학들은 사유와 사고를 위한 여백, 여유, 공간을 상실해 왔고 학생들은 토론과 사고의 충돌이 일어나는 강의 시간을 강탈당했다.
서점은 어디 있나?
필자는 학생으로, 강사로 여러 대학을 경험했다. 또 손님이나 관광객으로 드나든 대학도 많았다. 학부, 석사 대학원을 다 다른 학교를 다녔는데 그 대학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좀처럼 근처에서 서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석사 시절은 서울의 H대를 다녔는데 학교 밖에 서점이 딱 한 곳 있었다. 잠시 적을 뒀던 C대도 근처에 서점이 딱 한 곳 있었다. 학부 시절의 M 대는 한 곳도 없었다.
단적으로 우리가 알만한 대학들의 학교 앞에서 서점을 찾는 건 쉽지 않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엔 경성대학교, 부경대학교, 동명대학교, 부산예술대학 등이 모여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의 <경성대 부경대> 지하철 역 주변엔 서점이 딱 세 개 있다. 그나마도 한 곳은 중고서점이고, 한 곳은 최근에 생긴 교보문고 센터다. 참고로 센터는 교보문고 서점 단위 중 가장 작은 곳이다. 당연히 책을 위한 공간보다 잡화를 파는 공간이 훨씬 크다.
매년 한국 서점 협회에서는 서점 편람이라는 것을 내는데 의외로 광역시도별 서점의 숫자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백 평 이상의 서점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도시의 문화적 깊이나 다양성을 가늠해 보려면 독립서점의 숫자를 비교해보면 되는데, 그러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이 숫자를 보면 그 지역의 경제력과 문화적 다양성, 문화 인프라가 꼭 같이 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몇 년 전 통계를 보면, 광역시도 중에 독립서점이 열개 미만이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지역은 대전, 울산, 전라남도 등이다. 세종시는 열외로 하고 말이다. 이 중, 내가 통계를 봤던 당시엔, 울산은 두 곳 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제일 잘 살고 돈 많이 벌기로 인정받은 동네에 말이다. 울산 시내엔 게다가 종합 대학이 한 곳 -울주군에 있는 춘해대학은 시내의 경제활동과 상관이 적고 울산과학대학은 전문대로 봐야 하며 과기원은 연구소 성격이 강하다. -밖에 없으니 문화적 다양성은 더 떨어진다.
부산엔 독립서점이 2018년 기준으로 스물여섯 개나 있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대학이 많은 대연동 인근엔 없다. 대학이 문화적 깊이나 다양성을 답보해주는 기관이지 않기에 대학생과 그 구성원을 대상으로 문화 상품, 특히 책이 판매되길 기대하는 것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산 지역 독립서점의 위치를 보면 부산대학교 근처의 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영구의 망미동, 해운대의 구도심이나 소위 문화적인 핫 플레이스에 자리하고 있다. 솔직히 부산대도 주변의 거주 인구가 상당하니 엄밀히 부산대학생만을 염두에 두고 서점을 열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실제로 <부경대/경성대역>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의 주말 풍경은 어르신과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책을 읽는 것, 책을 들고 다니는 것, 그 내용을 아는 것
책을 읽지 않는 대학생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새삼 화제가 될 것도 없고. 그러나 대형 서점들은 점점 잡화점이나 카페처럼 변해가고 있고, 대학이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길 포기한 시점에 책의 구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과 마주한다는 건 모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대화의 희열을 위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런데 연인이나 친구와 마주 앉아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청춘들에게 대화는 부재하고, 이를 위한 불쏘시개 또한 당연히 필요 없다.
대신 친절하게 책을 요약해주는 프로그램만 성황이다. 그 덕에, 책은 팔린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제 어떤 책은 액세서리, 유행 상품에 불과하다. 그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책의 "내용"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시대다. 결국 책의 내용을 가공해서 2차 콘텐츠로 만들어 서비스해주는 회사들이 생기고 있다. 아날로그인 책과 그 내용은 이제 디지털로 전환되어 이들 회사의 고객 스마트 폰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고객들은 소위 인싸가 되기 위해 그 가공된 책의 내용을 열심히 본다.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안다. 그러니 유행을 타고 있는 책을 들고 다니는 건 읽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전에 이 책의 내용을 알아 간다는 신호이자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된다.
서점의 책은 서점의 것이 아니다.
서점은 이제 책을 위한 장소에서 책‘도’ 파는 공간으로 변했다. 그것이 진화인지 변화인지, 퇴보인지 변절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서점, 특히 대형 서점에서의 책은 다른 것과 함께 팔리는 부수적 상품이 됐다. 마치 면도기를 살 때 끼워주는 면도 크림 때문에 면도기를 사는 것처럼 주종관계가 바뀐 모양새다.
알다시피 서점의 책은 서점 것이 아니다. 작가-출판사-총판-서점-독자로 이어지는 경로 중 책이 머물다 가는 하나의 장소에 불과하다. 그래서 책의 재고는 서점의 것이 아니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출판사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서점에 있는 책의 훼손은 반품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책을 읽는 소비자가 책을 접든, 구기든, 심지어 침을 묻혀가며 읽든 서점 관계자는 참견하지 않는다.
책이 대접을 받던 과거엔 그런 행위는 금지된 행동이었고, 실제로 제재를 받았다. 서점에서 책만 팔던 시대에는 책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그 상품성은 새것 일 때, 손때가 부재할 때만 획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서점-솔직히 이런 공간을 서점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에서의 책은 다른 상품과 함께 파는 상품 "중" 하나다. 마치 치킨과 함께 생맥주를 파는 가게에서 무엇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하지 않게 된 것처럼.
결국 서점은 일종의 편집 샵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괜찮은 브랜드들이나 디자이너들의 의상 및 패션 소품들을 두루두루 선택하고 모아서 함께 판매하는 매장 말이다. 그런 매장은 어떤 것도 메인 상품이 될 수 없다. 매장 주인의 감각이 메인이 될 뿐이다. 지금의 서점도 그렇다. 거기서 어떤 제품을 책과 함께 팔든 어떤 제품도 메인이 될 수 없다. 주력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조차도. 단지 그곳은 소위 지적인 척, 감각적인 척, 세련된 척하는 이미지를 판다. 인테리어는 책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상품을 포괄하는 이미지를 위해 선택된다.
과거, 서점의 인테리어는 오직 책을 위해 존재했다. 책꽂이는 슬라이딩 도어로 겹겹이 만들어져,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선 그 도어를 좌우로 밀었다 당겼다 하며 찾아야 했다. 그때의 서점엔, 책이 꽂힐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책이 꽂혀 있었다. 앉아서 책을 읽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사치였다. 서점의 가치는 오직 얼마나 많은 종류의 책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고, 직원의 유능함도 특정한 책-희귀하고 많이 찾지 않는 책-을 얼마나 빨리 찾아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심지어 온라인 서점이 등장한 이후에도 한동안 이런 기준엔 변함없었다.
이제 이런 서점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부산의 영광도서는 이런 서점이었다. 그곳은 책으로 만든 미로이자 책을 위한 건물이었다. 그곳에 있는 여유 공간은 작가와의 대화를 위한 작은 공간뿐 건물의 모든 곳에, 가능한 모든 곳에 책이 꽂혀 있었다. 4층까지 올라가는 건물 중앙의 계단을 제외하곤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책이 꽂혀 있었다.
바로 이런, 손님에겐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의지, 공간을 최대한 오직 책을 위해 쓰겠다는 의지가 서점을, 영광도서를 책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고 그 명성을 유지시켰다. 그곳에 가는 소비자는 공간의 소비자가 아니라 책의 독자, 책의 소비자였다. 그런 영광도서도 새로운 건물을 올린 후, 변했다.
21세기 들어와서 공부와 학문을 위해 존재했던, 책을 위해 존재했던 두 개의 장소, 대학과 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는 앞의 세 개의 이야기와 합쳐져 대학 사회의 변모를 함축하고 이다. 대학은 그 장소의 철학을 상실한 채 취준생을 내보내는 통로이자 기능적 공간이 됐다. 그동안 서점은 다른 물건과 함께 책도 파는, 백화점의 수익을 위한 서점을 가장한 잡화점이 됐다. 이것을 업그레이드로 보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의 변신처럼 말이다. 그러나 고속도로 휴게소가 사람과 차가 쉬어가던 장소의 본질은 유지한 채 더 좋은 상태로 진화한 것이라면 대학과 서점은 그 반대로 본질조차 사라진, 그 명맥을 겨우 붙들고 있는 잔해로만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것은 진화가 아니다. 21세기 내내 이뤄진, 긴 퇴행 끝에 마주한 퇴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