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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09. 2022

프롤로그

아직 정하지 못한 것이 남았지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는 알겠는데 언제, 어떤 장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지, 그걸 모르겠다.      

언제부터가 좋을까? 95년? 99년? 2002년? 2003년?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인 89년? 장소는 의정부? 평택? 대전? 부산, 아니면 훨씬 이전의 장소이자 세기말의 장소였던 서울? 아니면 더 오래전 장소인 파주에서부터?      

일단 매회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 하고 있는 일, 또는 최근에 한 일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그 후, 2003년부터 한 해 안의 일 중 현재의 일과 엮어질 만한 일을 골라 과거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일이 공통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더 먼 과거의 일이나 장소,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고.      


문제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다. 

그저 과거를 돌아보는 건 신파로 흐른다. 그래도 이만큼 했으면 소위 경험과 노하우라는 것이 쌓였을 것이다. 아니 쌓였다. 디지털 시대, 카피와 홍보 영상 시나리오의 문법조차 파괴된 이 시대의 젊은 카피라이터와 홍보 영상, 관련 업계의 후배에게 도움이 될 만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LP와 카세트, CD를 거쳐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던 사람. 팩스로 광고 심의서를 보내고 릴 테이프로 라디오 광고 소재를 보내던 시기에 일을 시작해 온라인으로 심의를 끝내고 파일로 소재를 보내는 시대를 살고 있는 카피라이터. 여러 개의 베타 테이프 플레이어를 쌓아놓고 하나하나의 프레임을 찾아 연결하고 잘라내며 편집하던, 마치 대형 선박의 조타실 같은 편집기에서 TV CF와 홍보 영상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일을 시작해 컴퓨터 하나로 간단하게 편집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카피라이터. 그런 카피라이터라면, 그런 홍보 영상 기획자이자 작가라면 후배에게 도움이 될 만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대학 시절, 케이블 TV와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라디오 광고와 책과 잡지 광고가 사라질 거라고 장담하던 강사와 동료 학생들에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책은 그 자체의 부피와 존재감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있을 거라고 치기 어리게 예언했던 사람.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만들어진 톰 클랜시의 오디오 북을 보고, 스티븐 킹이 온라인이 소설을 업 로드하는 바람에 출판계가 발칵 뒤집혔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종로의 헌 책방을 서성이며 책을 샀던 사람. 야후와 라이코스, 엠파스의 시대를 살면서 99년도에 처음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던 사람. 


이면지에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포스트잇을 사용하고, 컴퓨터 메모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컴퓨터 부팅되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행여나 아이디어를 잃어버릴까 싶어 처남이 건네준 펜이 들어간 노트 9를 사용해야만 하는, 어느덧 그런 나이가 된 사람. 그런 시대를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낸 사람이라면 후배에게 도움이 될 만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아직 제목도 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번 주를 기점으로 바쁜 일은 얼추 정리되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구 의회 홍보영상과 시립예술단 홍보 영상 제작이 남아 있고, 대형 선박 촬영과 민속지학적인 촬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 주 월요일 저녁, 모처럼 촬영 모델과 조감독이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의 감독 표정은 여유가 있었다. 회식 중에도 몇 건의 전화가 왔고, 그 중 한 통화는 좀 길기에, “누구? 뭔데요?” 물었더니, “하~ 울릉도. 용왕제 촬영을 해달라카는데...우짜지?”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스케줄을 들여다봤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한 회에 얼마 큼의 분량으로 할지, 몇 회나 연재할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20년이니, 최소한 20회 이상은 연재되지 않을까? 수 십, 수 백 개의 일을 한 해엔 좀 많은 글이, 적게 한 해엔 적겠지... 여하간 써 가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리라 기대하면서, 무책임하게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미리 써 놓았던 글이 아니라 잘해야 일주일에 한두 편 정도이겠지만 다들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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