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단숨에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01

by 최영훈

마지막으로 중소기업 홍보영상을 만든 지 꽤 됐다.

한 2년쯤 됐나? 그 사이 우리 팀은 관공서 일에 매달려 있었다.


늦은 겨울, 이른 봄 어디쯤

파일을 찾아보니 두 해전 2월이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고 겨울은 물러가지 않아서 애매한 추위가 어슬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감독은 겨울이면 늘 입고 다니는 다운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나도 늘 입고 다니는 하이넥 점퍼를 입고 있었다. 양산과 울주군의 경계에 있는 한 공단에 위치한 기업을 찾아갔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길 초입에서 춘해대학을 지나쳤지 아마.


현대자동차 공장에 납품하는 부품 제조업체였다.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사무동, 서너 개의 공장 건물로 구성된다. 사무동에서 간단한 미팅을 하고 현장을 둘러봤다. 감독은 대충 둘러보지 않는다. 영상에 담긴 기업의 인프라와 생산 과정이 기업 이미지를 결정한다. 그러니 최대한 뭘 어떻게 담아야 좋을지 고민하며 둘러보고,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감독을 뒤따른다.


제조업 홍보 영상의 어려움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대부분의 제조업 현장은 영상에 담기 애매하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조업, 특히 플라스틱과 금속을 주재료로 하는 제조현장은 깔끔하지 않다. 그나마 R&D 센터나 사무동 정도가 봐줄만하다. 감독과 나의 걱정 가득한 표정을 읽었는지 우리를 안내하던 담당자는 다른 지역에 있는 최신 설비를 갖춘 제2공장은 깔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산업이든 그 현장 고유의 이미지가 있다. 그 현장을 매일 보며 일하는 이들은 이걸 찍어 뭐하겠나 싶겠지만 카피라이터와 감독의 시선으로 보면 달리 보인다. 우린 필연적으로 이방인의 시선을 갖고 있다.


그 현장엔 놀랍게도 로봇 팔이 많은 공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자동차 회사의 홍보 영상에서 보는 그런 로봇 팔 말이다. 척척 움직이면서 용접을 하고 접착을 하고 재단을 하는 그런 로봇. 규모로 보면 그리 크지 않은 하청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설비는 최첨단이었다. 힘든 일은 기피하는 시대, 힘은 적게 들이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발주처의 제품 수준에 맞추기 위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거나 갖춰야만 한다. 그것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가 이들 기업의 경쟁력이다. 여기에 자체 디자인과 설계 능력, 품질 관리 능력, 기업 내부적으로는 직원의 숙련도 등도 큰 경쟁력이라 볼 수 있다.


처음, 기업 홍보 영상을 할 땐, 당연히 저런 내용을 몰랐다. 내가 처음 쓴 홍보 영상 시나리오는 <명문식품>이었다. 파일을 열어보니 케이터링 회사다. 학교 급식이나 기업의 사내 식당 운영이나 납품을 주로 하는 업체로, 2003년 당시 이미 업력이 15년이었다. 이걸 썼을 때가 기억난다. 그전까지 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광고단가의 미스터리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언론사들이 등장했다. 처음 등장한 유형은 중앙 일간지의 온라인 판이다. 알만한 신문사들, 조간 석간 주간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우습게도 이 사이트의 지방 사이트도 따로 만들었다. 지역 뉴스 코너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방 사이트를 따로 열었다는 것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온라인 뉴스 사이트의 지방판. 코미디였지만 그때는 웃긴지도 몰랐다.


이쯤 해서 미디어의 수익 구조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의 수익 구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구독료, 하나는 광고료. 구독료는 다시 정기 구독자와 가판 구독자로 나뉜다. 잡지의 경우엔 서점에서 파는 경우가 후자에 해당된다. 광고료는 당연히 지면의 일부를 기업에 파는 것이다. 여기서 다 일일이 말하긴 어렵지만 신문이나 잡지는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전면에서 1단까지, 지면의 위치와 광고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아주 세부적으로 책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럼 광고료의 근거는 뭐지? 당연하지만 앞선 구독료와 그 구독료를 발생시킨 구독자 수다. 그러니까 정기 구독자의 숫자와 가판과 서점에서 팔린 부수를 합친다. 이 사람의 수를 광고의 전문 용어로는 노출 정도라고 한다. TV로 표현하면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나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의 광고 단가가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한 번 광고했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가정이 광고의 단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형 언론사들은 판매 부수를 셈하지 않고 발행 부수를 셈한다. 결국 팔린 것보다 찍어내는 것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고, 많이 찍어낼 수 있는 신문사나 잡지사의 광고 단가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발행부수공사, 줄여서 ABC에서도 결국 이걸 세니까. 결론적으로 많이 보는 신문에 광고를 실으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어쩌면 아주 단순 무식한 접근법으로 인해 광고 단가가 정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요즘엔 인터넷 광고의 효과를 측정하는 기법들이 많이 생겼고, 인터넷 유저가 하나의 광고를 클릭한 후 구매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할 수도 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전문 기업들만 갖고 있는 기술이다. 나도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후배에 들었을 뿐, 그 구체적 기술은 잘 모른다.


기레기가 될 뻔했다.

어찌 됐든, 인터넷 광고 초창기, 그러니까 인터넷 언론이 막 생겼을 땐 이 광고 효과를 입증하기 어려우니 광고 유치가 어려웠다. 게다가 따로 기사를 쓰는 기자를 고용하는 것도 어려웠고. 결국 영업과 서울 중앙지에 실린 기사를 긁어와 업로드를 동시에 하는 특수한 형태의 “기자”를 채용해야 했다. 이들은 서울뿐만 아니라 주요 대도시에 지사를 차렸다. 개별 사무실을 얻기도 했지만 정기구독 영업점 한 구석에 콜센터 같이 차려놓고 운영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기레기의 씨앗이 이 시기 이런 장소에 뿌려졌고, 퇴색된 맛집의 전설의 시작도, 영상 업계의 수준 저하의 단초의 기원 중 한 곳도 이런 곳에서 싹을 틔웠다. 내가 카피라이터 일을 하기 직전에 다니던 곳이 이런 곳이었다.


업무는 간단했다. 아침에 오면 중앙지 사이트에 실린 기사를 본다. 관심 있는 기사는 부산 쪽 사이트에 옮겨 올린다. 이후 자기 자리에 가서 출근길에 챙겨 온 생활정보지를 펼쳐 놓는다. 광고를 유치할만한 기업이나 대형 식당을 찾아본다. 그렇게 찾은 기업과 식당에겐 세 가지 종류의 결합 상품을 판다. 하나는 인터넷 광고와 홍보 영상이 결합된 상품, 잡지 기사와 홍보 영상이 결합된 상품, 맛 집 같은 언론사 인증 간판과 인터넷 기사와 홍보 영상. 이런 상품들이었다.


잡지 기사를 어떻게 팔 수 있나 궁금할 것이다. 내가 다니던 인터넷 언론사의 모기업에 여러 종류의 잡지가 있었다. 주간/월간지에 분양도 교양, 시사, 경제 등이 다양했다. 이들 잡지엔 기자들이 취재해 올리는 순수 기사를 위한 지면이 있고 나 같은 이들이 영업해온 기업이나 식당, 유명 인사의 지면이 있다. 시중의 잡지 중엔 90퍼센트의 기사가 후자의 형태로 메워진 잡지도 있다.


기사의 가격은 기사의 주인공이 잡지를 사주는 것으로 결정된다. 그러니까 만 원짜리 월간지를 500부 사주면 몇 개의 지면, 250부 사주면 몇 개의 지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도 부산의 대형 교회 한 곳과 이런 거래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교회 쪽에서 사주는 부수로 만 부를 제시했었다. 간단히 1억이다. 이 돈에서 영업 사원의 수수료가 떨어진다.


당연히 영업이 잘 될 리 없다. 잘해야 맛 집을 유치하는 건데, 그나마도 경험 많은 영업 사원, 보험이나 외판의 경험이 좀 있는, 인맥이 풍부한 이들의 몫이었다. 나 같이 이제 갓 사회에 나온, 그것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에겐 쉽지 않았다.


우연한 시작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생활 정보지를 넘기다 카피라이터 구인 광고를 보게 됐고, 외근이 당연시되던 곳이라 자연스럽게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다행히 사장이 크리에이티브하고는 거리가 먼 지역의 중견 기업의 재무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 데다가 학력과 학벌을 중요시하는 속물이어서 대단한 질문이나 테스트 없이 합격했다. 아마 그다음 주부터 출근하지 않았을까? 2003년 3월이었다.


한 일주일은 출근해서 멍 때리며 놀았던 것 같다. 가르쳐줄 사수가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업계 잡지를 들춰보고 전문 서적을 들춰봤던 기억이 있다. 영업부서, 기획부서, 제작부서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우리 팀, 그러니까 기획부서 사람들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 AE 고참이던 미진 씨가 기획실로 넘어와 같이 외근을 가자고 했고, 그렇게 회사 승합차에 감독과 함께 실려 간 곳이 부산 사하구 장림에 위치한 공단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낙동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공장을 찾기 위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공단의 형태도, 공장의 모양도 다 거기서 거기니까.


하루 만에, 단숨에

여하간, 그다음 날, 하루 만에, 그러니까 출근해서 퇴근 직전까지 이 시나리오를 다 썼다. 내민 시나리오를 읽어 본 박 감독이 “영훈 씨, 글발 좋네요.”하며 칭찬인지 감탄인지, 아니면 인사치레인지 모를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저 말 하나에 의지해서 그 뒤 몇 개월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명문 식품> 파일을 다시 열어 봤다. 대략 5천 자 정도 된다. 요즘은 천 자 정도, 즉 3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유지하니까 이 홍보 영상은 15분 정도 된다는 얘기다. 뭐,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긴 홍보 영상 시나리오인데 단락 구분도 명확하지 않고 단락별 부제도 없다. 부제도 없으니 당연히 단락과 단락 사이의 지루함을 없앨 브릿지 영상도 없다. 영상 설명도 구체적이지 않다. 그저 기업의 정보만 텍스트로 잔뜩 있다. 이 영상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그래도 통과됐고, 제작을 했던 모양이다. 파일은 딱 하나, 3월 24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