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후회를 남긴다. 최상, 최적의 선택은 있어도 완벽한 선택은 없다.
모든 선택은 그렇게 잔여물을 남긴다. 후회, 미련, 아쉬움, 분노, 자기 연민, 시기, 질투....
선택의 연속, 선택의 총합
광고는 선택으로 이뤄진다. 잡지/신문 광고든, TV CF나 라디오 광고든, 3분짜리 홍보 영상이든 다 선택의 조합이다. 누가 이렇게 유치하게 만들었을까 싶은 신문 전면 분양 광고에도 최소 서너 명, 많게는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이 들어가 있다. 디자이너의 고충부터 생각해보자. 수많은 건축물 이미지 중에서 하나의 오브제를 선택하는 거 자체부터 고역이다. 그걸 어디에 위치시키고 헤드와 서브, 박스의 숫자와 위치를 결정하는 레이아웃 과정은 더 어렵다. 그래서 내 경우엔 디자이너가 짜 놓은 레이아웃에 맞게 헤드나 서브의 글자 수를 조절해 준다. 안 그러면 글자의 크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시안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나갈 수 있나? 의견을 낼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지금 좀 시간이 있다면 조간신문에 실린 분양광고나 삽지로 딸려 온 분양 전단을 살펴보시라. 하단에 시공사, 시행사, 분양사, 투자사의 목록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분양 광고는 분양사가 발주를 하지만 분양사는 그야말로 분양만 대행하는 업체이니 그 윗선인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시행사에게 의견을 물을 때가 있다. 그 정도 선이면 다행인데 직접 건축을 하는 시공사가 대기업인 경우엔 그들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투자사 제1금융권의 내로라하는 금융사일 경우, 특히 그 금융사가 단독으로 투자를 하고 수익을 꾀할 경우 광고 시안의 결제자는 더 많아진다.
TV CF까지만 얘기하자. 말이 길어지니까 콘티 선택 과정을 생략하고 촬영 현장으로 넘어가자. 야외 촬영은 실내 촬영보다 선택의 순간이 더 많다. 우선 날씨가 관건이다. 햇볕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온도를 간과할 수도 없다. 춥거나 더운 날의 야외 촬영은 힘드니까. 햇볕이 있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해는 떴다가 진다. 그 변화 때문에 야외에서도 조명 감독의 예민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니 실내보다 더하겠지. 로케이션 헌팅을 미리 했어도 촬영 장소의 상황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지나가는 행인, 자동차의 소음, 그날의 모델의 컨디션...
달라진 모델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몇 년 전, 태화강국가정원 홍보 영상을 제작할 때였다. 카피를 쓰고 콘티를 만들어 담당 주무관과 상관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촬영은 11월 초였다. 감독은 서울의 에이전시로부터 여러 모델의 프로필을 받았고 그중 한 명을, 심사숙고해서 선택했다. 촬영 당일, 여자 모델 한 명과 아역 모델 한 명이 왔다. 아역 모델은 실물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여자 모델은 사진보다 훨씬... 흠...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살이 쪘다. 솔직히 일반인이었다면 약간 부어 보이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는 모델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말라 있다. 점점 더 성능이 좋아지는 카메라 앞에 자신 있게 서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무명의 모델도 꾸준히 관리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몇 장면을 촬영했다. 문제는 자전거 타는 장면. 여름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몸에 꼭 끼는 흰색 티와 역시 딱 맞는 청바지를 입어야 했다. 자전거를 탄 모델의 배가 튀어나왔다. 거기서 촬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감독은 꾹 참고 촬영을 끝냈지만 편집 과정에서 오케이 컷을 건질 수가 없었다. 결국 주무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모델을 섭외해서 재촬영을 했다. 감독과 알고 지낸 지 15년이 넘었지만 살찐 모델 때문에 촬영을 다시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때, 그랬다면...
최선의 선택을 해도 후회는 남는다. 지난 20여 년간도 마찬가지다. 만약 대행사에서 제작사로 이직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역의 유명 대행사에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경험을 쌓은 뒤, 연차가 쌓인 뒤에 대학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업계 선후배와도 돈독한 인연을 맺어서 연차가 쌓일수록 인생도, 일도 즐겁지 않았을까?
제작사로 이직을 한 후에 대행사에서 함께 일했던 감독의 권유를 받고 한번 더 이직을 했었다. 그 회사에서 지금의 감독을 만나, 셋이 따로 나와 회사를 차렸었다. 물론 나는 월급쟁이 작가이자 카피라이터였지만... 그때, 그러니까 제작사에 있을 때 자기가 옮기는 회사로 같이 가자는 박 감독의 제의를 거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당한 월급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강의를 하면서, 간간히 틈날 때마다 가외로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커리어를 쌓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새로 차리는 회사에 합류해 달라는 박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박 감독과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 이야기도 기니 나중에 기회 봐서 하자-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됐을 리 없고, 쉰이 넘어서까지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시기, 난 겁도 없이 서울로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결혼한 그다음 해였다. 무책임했지만 아내가 응원했고 지원해줬다. 운이 좋게 두 군데 다 합격했다. 그때, A대와 B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아내는 광고 쪽으로 더 명성이 있는 B대학을 권했다. 나 또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나 A 대는 과는 달랐지만 석사 시절을 보냈던 학교였기에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물론 B대를 선택했다. 그때 만약, 프리랜서로 독립해 나옴과 동시에 박사 과정 공부 시작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두 감독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함께 고생하면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었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난 박사 수료에서 그 과정을 끝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몇 년 동안 지쳤고 논문을 밀고 나갈 수 없었다. 논문 작성 자격이 주어지는 시험도 어렵게 통과하면서 사기가 많이 꺾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지에 두 번의 논문 게재를 해내긴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가을 학회를 갔다 오기만 하면 한 달 내내 아팠다. 감기에 걸려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살기 위해 선택한다.
세계마다 규칙이 있다. 그 규칙에 적응을 하고, 심지어 그 규칙을 자기의 규칙으로 만들면 그 세계의 사람이 되어 그 세계에서 살 수 있다. 그 세계의 규칙이 싫거나 적응하지 못하겠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세계를 무너뜨리거나 그 세계에 살면서 자신의 변화와 무너짐을 견디거나. 그러나 난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그 세계에서 나왔다. 도전을 선택하는 것도, 포기를 선택하는 것도, 결국은 다 살기 위해서다. 난 포기를 선택했다. 어찌 됐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살아야 다른 세계로 가는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으니까. 결국, 잠자리에 들 때마다 죽음을 생각했던 우울증이 끝났다. 그렇게 그 세계 밖에서.
만약, 잘 버텨서 학위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교수가 되어서 그 학계라는 세계에서 잘 살고 있을까? 그런 삶은 살면서도 내 이름으로 내 삶이 담긴 내 글을 이렇게 진솔하고 담담하게 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세계의 규칙에 충실한 논문을 많이 써서 인정받는 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사람/사랑의 선택
다 지난 얘기니까... 조금 위험한 이야기 하나를 해보자. 지금의 아내 -아내는 중학교 시절 한 동네 살았던 소녀였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이 이야긴 나중에 하자- 와 막 사귀기 시작할 때, 난 석사 과정이 마치기 직전이었다. 그때,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는 어머니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그러셨다. “네가 00이랑 살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성공을 못 할 거야. 그러나 00이랑 살면 마음은 좀 불편해도 성공은 하겠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 결과는 아직....
다 지난 얘기니까... 위험한 이야기 하나만 더하자.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했으니 가벼우면서도 위험한 이야기로.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 모처럼 동기들이 다 모였던 날이었다. 5월, 날씨도 좋았다. 엄한 규칙이 있던 기숙사도 4학년한테는 관대했고, 특히 졸업 사진을 찍는 날에는 통금 시간을 해제받았다. 덕분에 촬영이 끝나고 1차는 교수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한 후, 모처럼 꽃단장을 한 동기들과 몇 차에 걸쳐 술을 마셨다. 그래 봤자 학교 주변을 맴돌았지만.
어찌 됐든 새벽 두 시쯤, 다들 헤어지면서 여자 동기 한 명과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됐다. 이름이 민경이었나? 그러다 그 친구가 집에서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했던 것 같다. 들어갔다. 커피를 마셨나? 뭐 그러다 분위기가 잡혀서 키스를 하고 그 분위기가 막 잡혀갔다. 여차하면 자고 가도 될 것 같았는데... 불쑥 잠은 기숙사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그 분위기를 뒤로 하고 나왔다(독자들의 탄식 소리가 들린다. 이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해줄 때마다 같은 탄식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 친구가 잡았던가? 기억이 안 난다. 어찌 됐든 그날 새벽, 굳이 기숙사에 와서 잤다. 뭐, 그 덕분에 난 평생 외박이란 걸 해 본 적 없는 어른이 됐지만...
이때 만약, 그 친구랑 잤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뿐인가? 나랑 도망가자는 그 여자와 도망갔으면? 헤어지지 말자는 그녀의 말을 들었으면? 내가 내민 손을 그녀가 뿌리치지 않았으면? 대학-실제로 다른 대학 영문과에 합격했었다-이나 대학원에서 다른 전공을 했으면? 그때 한 공동체에 관한 책의 집필 회의를 하던 단톡방에서 튀어나가지 않았다면? 박사 과정을 좀 공부가 느슨한 대학에 갔다면? 그때 이 일 말고 저 일을 했다면? 결혼을 더 일찍 했다면? 아이를 더 일찍 낳았다면?
목록은 끝도 없다.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실존주의적이고 냉정하고 담담하게 들리겠지만 무서운 삶의 규칙이다. 그리고 광고의 규칙이다. 그 어떤 훌륭한 상을 받은 광고라 하더라도 그것은 만든 누군가에겐 후회를 남기는 작품일 수 있다. 완벽에 가까울 뿐, 완벽한 건 없으니까.
주체는 미래에서 도래한다.
지금,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후배가 내게 조언을 듣고자 하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라캉의 말을 빌리면, 주체는 미래에서 도래한다. 즉 우리가 어떤 최선의 선택을 해도 미래의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그 도래하는 미래로 인해 지금 내가 꿈꾸는 나와 미래의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담담히 선택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을 다시 가기 위해선 갔다가 돌아오는 길 밖에 없다. 돌아가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먼저 이 길을 택했으니 그 후유증도 온전히 내 몫이다. 그 무거운 선택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모든 이들에게 지방의 한 카피라이터, 쉰을 넘긴 이십 연차 카피라이터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