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의 흔적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13

by 최영훈

다시 말하지만, 카피라이터에게 익숙한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정기적이고 주기적인 광고를 집행하는 광고주를 모시고 있는 대행사의 AE는 계절이나 분기마다 반복되는 광고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이 그런 광고주다. 처음 이직한 제작사도 울산의 모 백화점을 광고주로 모시고 있는 대행사의 외주제작을 했었다. 제작이래야 별 거 없고 똑같은 영상에 정기 세일, 계절 세일을 알리는 자막을 넣는 것이었다.


낯선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선택받는 직업이어서 뉴스에도 잘 안 나오는 분야의 기업과 일을 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오일 가스 에너지 선박 엔지니어링 회사의 홍보 영상을 제작했었다. 뭐 대충 이름만 들어도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시추선이나 정유 운반선을 개조해주거나 선주사의 용도에 맞게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또는 선주사가 시추하고자 하는 위치에서 선박이 일을 할 수 있게끔 완전무결하게 준비시켜 주는 회사였다.


당연히 감독은 이런 분야에 공부할 시간이 없다. 어차피 시나리오는 내가 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관련 전문 지식을 꼼꼼히 공부한 뒤, 감독이 특정 용어나 선박의 이름과 모양의 매칭 여부를 물으면 답해주는 것도, 내가 이해한 지식이나 정보가 맞는지 고객 기업의 전문가들에게 묻고 확인받고 수정받는 것도 내 몫이다.

덕분에 석유 에너지 관련 선박의 종류는 우리가 아는 사각형의 시추선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선박들은 배를 만드는 대형 조선소와 그 시추선에 들어가는 여러 부분의 고급 기술을 가진 수십 개의 기업, 그리고 그전에 그 모든 걸 설계하는 기업, 그 후엔 이것이 움직이고 일할 수 있도록 대양의 시추 위치에 고정시키는 기업, 일하는 과정에 대한 매뉴얼을 만드는 기업 등이 이 분야에 거미줄처럼 얽혀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그 덕분에 외국 선주사를 소개받아 거대한 시추선이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서 바다로 나와 시운전하는 걸 촬영하는 일도 할 수 있었고.


고스트 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하다.

아무리 낯선 분야의 기업을 가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게 된 건 2007년 겨울에 맡게 된 일, 그 이후부터다. 세 사람은 각자의 사정으로 흩어졌고 난 허울만 좋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공부와 강의를 병행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있는 재주라도 더 꼼지락거려서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남자들처럼 운전을 할 줄 알아서 대리를 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알바를 하기엔 공부의 양이 너무 많았다.


결국 유령작가가 되기로 했다. 고스트 라이터. 그러나 <고스트 라이터 되는 법> 같은 책이 있을 리 없다. 우선 대필 작가, 자서전 대필 같은 키워드로 검색했다. 관련 출판사들의 명단이 쭈욱 떴다. 메일 주소가 나와 있는 출판사에 이력서를 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지만 미친 짓도 한 번이 어렵지 일단 한번 하고 나면 그다음은 쉽다. 딸의 1학년 생활을 기록한 원고의 출판을 위해 교육이나 가정, 육아 관련 출판사에 수십 통의 메일을 보냈었고,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한번 더 했었다. 이 이야기는 기회가 있으면 나중에 자세히 하자.


낯선 전화가 오다.

그때가 2007년 10월이었다. 집에 있는데 서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력서를 봤다고 했다. 백서의 초안을 하나 써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전까지 내가 가장 길게 쓴 원고는 16p짜리 지방선거 후보자의 책자였다. 당연히 분량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대충 130장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데드라인을 물었다. 다음 해 2월까지였다. 가장 중요한, 페이를 물었다. 500만 원이었다. 응, 진짜로.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의 이력서만 보고 그런 일을 맡긴 거였다.


오케이 했다. 그 일은 대형 국제행사의 국내 유치 활동 백서였다. 무슨 행사인지 말할 수 없다. 고스트 라이터만의 직업윤리라고나 할까? 카피라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윤리가 고객의 성공과 데드라인이라면, 고스트 라이터의 윤리는 침묵이다. 어차피 내가 했다고 해도 입증할만한 증거도 없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당시 내 위치는 정이었다. 그러니까 갑-을-병-정의 그 정 말이다. 어쩌면 그다음 일지도.


일의 최상부에는 당연히 국가 기관이 있다. 그 행사의 주무부처. 그다음은 대형 대행사나 기획사가 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행사들은 이런 국제 행사의 전반적인 기획과 유치 활동 전반을 관리한다. 그 밑에 이 일의 진행에 필요한 다양한 것을 제작, 생산, 관리하는 기업들이 따라붙는다. 그 목록은 끝도 없다. 케이터링 서비스, 운송, 경호, 실내외 조경, 이벤트, 음향, 조명, 영상 등. 그중 한 분야가 출판이다. 일을 했으면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 정부 부처의 생리니까. 나한테 일을 준 출판사가 그 분야를 맡은 거였다. 이 회사를 편의상 S 출판사라고 하자.

다섯 개의 박스, 두 달의 작업

택배와 메일로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후 사과 박스 다섯 개가 왔다. 그 안에 서류가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일이 끝나고 다시 보내야 하는 서류였다. 서류를 하나하나 뜯어봤다. 그때 공무원들을 다시 봤다. 뭐 하나 대충 하는 것이 없었다. 귀빈이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도, 식사의 순서도, 차량의 배치와 이동시간과 그 속도도, 직급과 직책에 따른 영접 순서와 그 수준도 뭐든 문서화돼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다섯 박스 안에는 중복되는 문서는 있어도 쓸데없는 문서는 없었다.


백 페이지 이상을 쓰는 법

파일을 보니 일은 2008년 2월 중순에 끝났다. 그 뒤로 일 년에 한 두건 정도 S출판사의 일을 했다. 생소한 분야에 대해 긴 분량의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엔 더 그렇다. 혹시라도 궁금한 독자가 있을까 싶어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다.


솔직히 양자 물리학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같은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면 몇 달 정도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면 책 한 권 쓰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그런 책들은 대체로 깊이가 없고 검색만 하면 누구나 아는 정보만 들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 됐든 자료가 이렇게 넘쳐나도 이걸 읽을거리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도 아니고 문체나 깊이의 문제도 아니다.


고스트 라이터의 노하우

가장 어려운 문제이자 이런 종류의 책 만들기의 첫 단추는 목차 구성이다. 사실 이것만 끝내면 일의 삼분의 일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목차는 설계도와 같다. 제 아무리 복잡한 물건이라도 설계도가 있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도 도면이 있어야 기초공사가 시작된다. 밑그림이 액션을 만드는 것이다.


목차를 만들고 나면 자료를 구분하여 덩어리로 만든다. 폴더로 구분하는 것이 제일 좋다. 중복되는 문서는 종이 문서든, 전자 문서든 따로 분리한다. 애매한 이름으로 되어 있는 파일은 알아보기 쉬운 이름으로 바꾼다. 연대가 중요하면 파일별로 연도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작업은 의외로 성가시고 귀찮지만 나중에 편하게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


문서를 들추면서 표시를 하고 전자 문서의 경우엔 필요한 단락을 오려내어 한 주제 아래 내용을 모아 놓는다. 한 주제의 모음집이라고 보면 된다. 이어서 그 모음집의 문단들을 다시 소제목 아래 분리해 놓는다. 내용상 필요하지만 없는 정보는 학술 자료나 정부 보고서, 전문 기관 보고서 등을 찾아 넣는다. 요즘엔 다들 PDF 파일을 만들어 놓으니 찾기 쉽다. 다 알겠지만 구글엔 파일 형태로 문서를 검색할 수 있다. 고스트 라이터에겐 아주 요긴한 기능이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7년에서 2014년까지 다양한 고스트 라이터 작업을 했다. 국제 행사 백서는 물론이고 자서전, 기업의 역사를 담은 사사(社史)도 있었다. 또 우리나라 대기업, 그러니까 프로야구팀이나 축구팀을 갖고 있는 기업의 사원 교육용 책자도 몇 개 했었다.


유령을 떠나보냈다.

한몇 년 전부터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몇 해 전, 지역의 유명 대행사의 중역으로 있는 제자의 부탁으로 -물론 공짜는 아니다. 액수는 말할 수 없지만- 비슷한 일을 맡은 것이 마지막이다.


유령을 보내버린 이유가 뭘까? 딸이 나를 아빠라 부른 뒤부터, 또는 내 이름을 알고 쓰게 된 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감독의 전성기가 시작된 2017년이나 2018년 이후부터 아예 그런 짬을 낼 수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일이 많아진 덕분에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가는 건 물론이고 점점 더 화려해지면서 그 커리어 끝에 무엇을 남길지 고민하게 되면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내 이름으로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인지도.


그러나 여전히 이런 정신은 갖고 있다. 어떤 분야의 어떤 고객이든,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고객만 아니라면, 아무리 생소한 분야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주겠다는 마음가짐만은 여전히 갖고 있다. 고스트 라이터의 정신과 프로페셔널의 정신이 혼합된 정신이랄까?

이전 14화거의 손에 잡혔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