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Dec 28. 2022

문제는 답을 찾고, 실수는 수습하면 된다.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24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한 해의 마지막 촬영을 앞둔 일요일 저녁, 감독에게 카톡이 왔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조명 감독이 다른 카메라를 빌려 와서 그걸 해결하느라고 고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월요일 오전 열 시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무대였다. 촬영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큰 덩치를 웅크리고 앉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감독에게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주며 인사했다.


“왔는교. 하... 뭐 하나 쉽지 않다. 쉽지 않아.”

“고생했어요.”     


조명감독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담배를 태우고 돌아온 조명감독과 악수를 했다. 몸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얼굴이 좀 부어 있었다. “아이고, 먼 길 오셨습니다.” 조명 감독은 서울에서 일요일 밤에 내려왔다.      


잘 못 빌려 온 카메라는 특급 탁송으로 올려 보내고 역시 특급 탁송으로 빌리려 한 카메라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 두 사람이 일요일 밤에 그야말로 쌩쇼를 했을 것이다. 새벽에 받은 카메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두 사람 다 고생했을 테고.


서울에서 내려온 카메라는 RED Digital Cinema 8k 카메라다. 최신 기종이다. 현재 가장 최신, 최고 사양의 TV가 8K다. 쉽게 말해 HD-FHD-2K-UHD-4K-8K로 이어지는, 화질의 최고봉에 있는 카메라인 것이다. 그러니 이 영상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당연히 8K TV나 모니터가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우리 작업실에 그런 모니터가 있었다.      


솔직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러니까 더 좋은 장비로 더 좋은 영상을 제작하고 싶은 욕심을 감독이 부릴 때마다 이 프로젝트가 그럴만한 일인가, 이렇게까지 애쓰고 힘쓸 일인가 싶지만, 이 또한 감독의 영역이다. 내 카피와 콘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화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건 감독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난, 그야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실수와 문제 앞에서

숱하게 실수를 했다. 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와 마주 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고 실수는 수습할 수 있다. 사람이 수습할 수 없는 실수와 문제는 자연재해 밖에 없다. 사람이 저지른 일은 사람이 수습할 수 있고 세상이 던진 문제는 세상과 사람 속에 답이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돌아보면, 삶은 실수의 연속이자 난제의 릴레이다. 하나를 수습하면 어디선가 또 하나가 터지고, 하나의 문제를 풀면 더 어려운 문제가 나온다. 마치 딸의 수학 학습지 같다. 나이가 들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점차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나온다. 훌쩍 몇 계단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간다.

     

물론 그 계단 중, 어느 계단에선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래 계단을 오르던 방식으로는 오를 수 없는 윗 계단이 있다. 얼핏 같은 높이의 계단 같은데 막상 마주하면 높이가 다를 수도 있다. 이미 올라가 있는 사람은 다 똑같은 계단이니 올라오면 된다고 하는데, 그거야 이미 오른 사람 이야기고, 오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또 아니다.      


이 업을 하면서 했던 실수를 떠올리자면 한 두 개가 아니다. 광고 심의를 잘 못 넣어서 "갑"인 대행사에 죄송하다는 말을 수백 번 한 적도 있고, 때문에 백화점의 가을 정기 세일 광고가 TV를 못 탄 적도 있다. 초년병 시절엔 150자가 넘는 라디오 광고 카피를 광고주에게 오케이 싸인을 받은 후 좋다고 희희낙락했다가 뒤늦게 오버된 글자 수를 깨닫고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

최근의 실수로는, 앞글에 썼던가? 프로필 사진만 보고 캐스팅한 모델이 엄청 살이 쪄서 온 적이 있었다. 감독은 꾹 참고 촬영했지만 결국엔 오케이 컷을 건질 수 없었다. 결국 담당 주무관한테 솔직하게 얘기를 한 후, 새 모델을 섭외해 재촬영을 했다.


얼마 전엔 지역 구의회 홍보영상 시사회 가기 두 시간 전에 영상에 에러가 난 걸 발견한 적도 있다. 다행히 감독이 백업을 받아 놔서 그 부분을 재편집할 수 있었다. 둘 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모든 문제에 능숙해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해도 언제나 변수가 생긴다. 제작 현장과 같은 모든 생계를 위한 생업의 현장엔, 아니 인생엔, 영화 대사처럼 깜빡이 안 키고 들어오는 사건, 사고, 사람이 너무 많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 이런 돌발 변수와 상황에 무덤덤해지고 능숙하게 대처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덤덤해지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그걸 돌발적이라 부를 수 있겠나? 그저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는 초조해하면서, 떨리는 마음과 손을 부여잡으면서 노련한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할 뿐이다. 평정심을 찾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좀 짧아졌고 대안과 해법을 생각해 내어 실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좀 없어졌을 뿐이다.      


해가 바뀌어서, 더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이고 더 노련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일을 대할 때마다 잘 해낼 궁리를 하고 실수 없이, 최대한 완벽하게 해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완벽에 가까울 뿐, 완벽일 순 없지 않을까? 우리 인생이 다 그렇듯.

매거진의 이전글 쉰이 넘어서도 더 나아질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