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더 나아질 여지는 있다.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34

by 최영훈

어제는 모처럼 나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살면서 나 때문에 기분이 좋은 날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날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나 자신의 기쁨의 원천인 경우는 별로 없다. 사실 우리의 기쁨과 쾌감의 원인은 대체로 타자와 밖에 있지 않던가? 온전히 나에게 보내는 찬사를 언제 우리가 자주 보내던가. 어쩌면 내 마지막 응원단장은 나 자신 아닐까? 그 찬사에 인색하지 말일이다.


월간 에세이가 의뢰한 원고를, 마감일 하루 전, 그러니까 2월 8일 밤에 보냈다. 파일을 첨부하고 간단하게 몇 자 적었다.


올해도 부산엔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눈을 기다리며 든 생각들을 옮겨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편집장이 답신을 보냈다.

보내주신 원고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내용, 분량 다 좋고, 특이사항 없습니다!


고객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내용도 다양하다. 카피가 좋다. 영상이 좋다. 아이디어가 좋다. 등등. 편집장의 칭찬은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나 자신에게 보내는 칭찬 같았다. 특이사항 없다는 말이 특히 좋았다.


광고나 홍보 영상은 내가 아무리 카피나 시나리오를 잘 써도 백 퍼센트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 미팅부터 내게 아이디어와 방향을 제시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막힐 때 들여다보는 각종 이미지 사이트의 각종 이미지들, 포스터들, 책 표지들에게도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찬을 들어도 온전히 내 몫이라 여길 수는 없었다.


브런치를 통해 에세이를 의뢰받은 것이 1월 18일이었다.

그 뒤 의뢰 내용에 기재된 메일로 감사의 메일을 보내고 회신 메일을 받았다. 예전에 재능 교육의 웹진에 게재할 에세이를 의뢰받았을 때는 창의성이라는 주제가 있었다. 이번엔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일상을 소재로 가볍게 쓰면 된다고 했다. 분량도 가벼웠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골랐다. 메모를 했다. 처음엔 5학년이 되는 딸과 쉰 줄로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아빠를 엮어 뭔가를 쓰려했다. 그러다 불쑥 한 문장이 생각났다.

“입춘이 지난 뒤에도 눈을 기다렸다.”


첫눈, 늦눈, 끝눈에 대해 써볼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저 한 문장을 써놓고 며칠을 또 보냈다. 그러다 저 문장이 이끄는 대로 생각을 적어 나갔다. 부산에서 살면서 그리워했던 설경에 대해, 그 설경을 못 보고 자란 딸에 대해, 예쁜 딸이 나중에 이런 사람과 사랑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그렇게 적다 보니 분량이 됐고 자를 건 자르고 고칠 건 고쳐 보냈다.


익숙한 방법과의 결별

어제 오전, 편집장의 메일을 받고 기분이 좋았다. 그 뒤에 간 수영장, 수영은 힘들었지만 몸은 가벼웠다. 이날 강사는 자유형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메인 세트는 거리를 점점 줄여나가는 에스컬레이트 세트였다. 자유형 100-75-50-25, 이것이 한 세트다. 이 세트를 다섯 개 하라고 했다. 그것도 왼쪽 호흡으로. 수영을 강습받는 사람들은 오른손, 왼손잡이 할 것 없이 다 오른쪽 호흡으로 배운다. 왼쪽으로 호흡하는 사람은 폴 메카트니나 지미 핸드릭스 같은 왼손 기타리스트보다 더 희귀한 존재다. 수영장의 거의 모든 사람, 99.9퍼센트의 사람은 자유형을 할 때 오른쪽으로 호흡을 한다. 스트로크를 끝낸 오른손이 복부와 오른 허벅지를 스쳐 갈 때 호흡을 하는 것이다.


힘들었다. 한두 세트하고 오른쪽 호흡과 번갈아 했다. 두 번째 세트의 마지막 바퀴를 돌 때, ‘한 세트 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세트를 막 시작하려 할 때 언제 강사가 왔는지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포기하지 마세요.” 오른쪽 호흡으로 하는 한이 있어도 모든 세트를 쉼 없이 소화하라는 말이었다. 물론 난 말을 잘 드는 회원이니까, 꾸역꾸역 했다.


새로운 일이 기다린다.

아침의 기분 좋은 메일과 오전의 기분 좋은 운동 뒤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카피와 칼럼의 수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과제는 어제의 영광을 잊으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카피를 고치고 칼럼을 수정하고 그렇게 오후를 보냈다.


앞선 글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일을 고를 수 없다. 고를 수 없으니 모든 일이 새 일이고 낯설다. 낯선 일이 기대감을 주는지, 두려움을 주는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낯선 일이라도 해야만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해야만 한다. 낯선 일이라도 해야만 내 삶이 꾸려지고 경력이 쌓인다면 해야만 한다. 변화와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생존의 문제이자 주체의 진화의 문제다.


더 나아질 여지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자유형부터 배운다. 그때의 자유형은 몸 전면이 수면과 평행이다. 즉 얼굴이 수영장 바닥을 보고 떠간다는 느낌이다. 이때, 호흡을 하기 위해선 고개를 돌려 들어야 한다. 조금 익숙해지면 강사는 롤링, 또는 로테이션을 가르쳐 준다. 머리와 시선은 여전히 수영장 바닥을 보지만 조금 앞을 본다. 그 상태에서, 그러니까 머리를 고정한 채 팔의 스트로크를 따라 자연스럽게 몸통을 회전시킨다. 이렇게 되면 호흡할 때 고개를 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통을 따라가며 호흡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몸통을 회전하면서 팔을 더 멀리 찔러준다. 그렇게 되면 처음엔 중심을 잃는 느낌이 든다. 뭔가 휘청댈 것 같다. 그러나 이때 신체는 물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유선형이 된다. 물을 가르고 타는, 소위 글라이드를 하게 된다. 손바닥이 수면을 보게 하며 움직이는 것과 손날이 수면을 보게 하며 움직여 보면 알 것이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써 보낸 에세이는 4월호나 5월호에 나온다고 했었다. 그 사이, 아마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잊고 있다가 집에 온 우편물로 불쑥 생각나지 않을까? 다음 주부턴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시작될 것 같다. 이미 시작된 것도 있다. 해 보지 않은 것들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도 먹고살려면 해야 한다. 명함의 무게를 유지하려면 해야 한다. 올 연말에, 조금 나아진 나를 만나고 싶다면 두려움 없이 해야 한다.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수영을 제법 오래 했는데도 실력이 더 나아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더 나아질 여지가 있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변화에 내던지기만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