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도 클래스도 최고이길 바라며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35

by 최영훈

한가한 겨울도 끝났다.

2월 셋째 주에 미팅이 잡혔다. 이제 매주 미팅이 이어지지 않을까? 물론 한가한 겨울이라고 해서 나나 감독, 그리고 여러 협업하는 사람들이 푹 쉬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나름 분주히 움직였다. 난 부지런히 글을 써서 올렸다. 한 중견 해양조선 엔지니어링 기업의 PR 기획서를 썼으며 그 사이 예술단 캠페인의 카피를 수정했다.


감독은 예술회관 공연 스팟을 편집했고 구의회의 최종 편집, 예술단 연습 장면 촬영을 진행했다. 물론 그 사이, 술도 많이 마셨다. 내일 당장 만나야 될 고객이 없거나 촬영이 잡혀 있지 않거나 써내야 될 카피가 없으면, 감독이나 나나 마음 놓고 술을 마신다. 그것도 이제 끝이다.


겨울을 잘 보내야 더 나은 올해를 보낼 수 있다. 야구로 말하면 스토브 리그다. 어제도 감독과 난 한 시간 정도 회의를 했고 샘플 영상과 성우의 목소리를 체크했다. 둘 다 아프지 않으려고 제법 신경을 많이 쓴다. 무리했다 싶으면 쉬어주고 불편한 데가 있으면 마누라한테 잔소리 듣기 전에 병원에 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몸이 안 좋으면 그 일의 폼도 떨어진다. 폼이란 말은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축구계 명언으로 유명해졌다. 그런가? 요즘 이 명언에 대해 갸우뚱하고 있다.


그 자세는 내 자세와 다르다.

이번 주 월요일, 강사는 평영 킥의 노하우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발바닥으로 차는 법을 말이다. 그거라면 나도 아는데 하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평영은 영법 중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영법이다. 다른 영법이 이전 스트로크나 몸동작의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다음 스트로크로 이어갈 수 있는데 반해, 평영은 한 스트로크의 에너지가 그 스트로크의 마무리와 함께 거의 소멸된다. 아니 거의 없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모든 영법 중에서 자세와 타이밍의 미묘한 차이가 속도와 스트로크의 거리를 좌우한다.


화요일, 강사는 이십 분 정도 우리를 돌린 후 보조 풀장으로 불러냈다. 강습 시간에 모든 회원과 보조 풀장에 온 건 기초반 이후 처음이었다. 강사는 우리를 앉힌 후 발을 손처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흠... 설명하기 어려운데, 단적으로 말하면 발로 박수를 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찌 됐든 그 연습을 하는 동안 여러 회원들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정강이의 정면, 외측면, 종아리 근육을 골고루 쓰며 힘을 줬기 때문이다.


달라졌을까? 달라졌다. 내가 아는 발바닥으로 차는 건 물속에서 물을 발로 뒤로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액션 영화에서 경찰이 범인의 은신처의 문을 발로 뻥 밀어차는 것처럼 말이다. 강사가 가르쳐준 발차기는 달랐다.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있는 물을 모아서 차내는 느낌이었다. 후자의 방법이 당연히 발의 표면을 더 많이 사용했고 더 많은 추진력을 가져다줬다.


폼은 그 폼이 아니다.

우리는 폼(form)을 겉멋정도로 치부한다. 앞서 말했듯, 축구에선 한 선수의 퍼포먼스의 상태를 의미한다. 한 선수가 유지하고 있는 실력은 한 두 게임 못했다고 해서 어디 가는 게 아니라는 맥락에서도, 반대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한 두 게임으로 그 선수의 수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는 맥락에서도 쓰인다.


사전적으로 폼엔 자세와 몸의 형태라는 의미가 있다. 또, 알다시피 방식과 형식이라는 뜻도 있다. 운동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중요한 동작의 제대로 된 폼을 얻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테니스로 말하면 포핸드와 백핸드, 농구로 말하면 패스와 슛과 드리블, 축구로 말하면 드리블과 인사이드킥/아웃사이드킥과 패스와 슈팅 같은 것들이다.


각 종목의 강사들도 이 제대로 된 폼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애를 쓴다. 왜 그럴까? 제대로 된 폼은 그 운동에 효율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운동의 특정 동작을 정확하게 하는 건 그 동작으로 얻고자 하는 효과를 백 퍼센트 내는 전제 조건이라는 말이다.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울 때 강사는 늘 삼각점을 유지하라는 말을 지겹게 반복했다. 홀드를 잡고 있는 양손과 홀드를 디딘 발이 삼각형을 이뤄야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상하좌우로의 이동도 편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할 때는 보폭과 발바닥이 지면을 치고 나가는 방법, 팔의 스윙, 고개의 각도 등에 대한 영상을 보고 관련 책을 읽었었다. 부상 없이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영 강사들은 유선형의 자세와 호흡, 그리고 로테이션과 롤링을 거의 매일 얘기했다. 이 역시 신체의 균형과 운동의 효율성 때문이다.


폼에서 클래스로

한 사람의 클래스는 그 사람이 체득한 폼이 토대가 된다. 그 폼은 그 뒤의 상황에서 만나게 될 여러 상황에서 다양하게 발휘되는 응용 동작과 변칙 동작, 순간적인 번뜩임과 같은 퍼포먼스의 토대가 된다. 클래스는 이 퍼포먼스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수행으로 얻어진다. 클래스는 체득된 폼의 지속과 유지, 그 자체다.


결국, 저 축구의 명언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폼의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평소에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이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멋지게 차려입었다. 이때 사람들은 폼 난다고 말한다. 결혼식 다음날엔 당연히 평소의 옷차림으로 돌아간다. 멋쟁이라는 건 결국 이 패션의 폼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옷을 제대로 입을 줄 알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잘 입는 사람이며 그런 옷차림을 꾸준히 하고 다니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특정 위상의 클래스는 한 분야에 필요한 기본 기술과 자세를 익힌 뒤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하여 남과 다른 수준으로 발휘해 온 세월과 경험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러니 프로 레벨의 선수에게 요즘 폼이 좋다는 말은 어찌 보면 모욕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어느 수준의 폼을 꾸준히 유지해 왔기에 프로가 된 것이고, 근래의 몇 게임에 좋아 보였던 것은 그의 체력이나 컨디션이 좋았거나 감독의 전술이 그에게 맞춰졌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그 폼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 훈련했을 것이고 그 가진 폼을 경기에 쏟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폼의 훈련과 클래스

강사에게 새로 배운 발차기를 평영을 하는 동안 하기 위해선 생각을 해야 한다. 발을 꺾어 수면과 평행을 만든 뒤 발을 발레리나처럼 쭉 뻗은 뒤 다시 그 뻗은 발을 안쪽으로 꺾어 박수를 치듯이 모아 다리를 펴줘야 하는 이 일련의 동작을 하기 위해선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제 멋대로 평영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열심히 차지만 앞으론 나가지 않아서 결국엔 상체의 힘과 팔의 스트로크로만 앞으로 가는, 그래서 금방 지쳐버리고 마는 나를 말이다. 그러나 계속 의식하며 반복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동작이 나올 것이다. 평영을 할 때마다 그 어려운 킥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의식을 하며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하루아침에 전문가가 될 순 없다. 한 업계에서 그럭저럭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될 수도 없다. 학교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배운 것들을 늘 의식하고 반복하면서 자신을 훈련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 그 지식은 경험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폼이 될 것이다. 그 폼을 얻은 뒤에도 그 폼을 유지하기 위해 게으름 없이 꾸준히 훈련하고 생업의 현장에서 언제나 최선의 폼을 쏟아내면 그 사람은 동료와 업계에서 인정받을 것이다.

폼과 클래스의 인정

그렇다. 폼과 클래스는 내 것이지만 그것의 알아챔과 평가와 대접은 외부에 있다. 우리가 한 분야에서 어떤 폼을 갖고 있고 어느 수준의 클래스인지 말할 수 있는 건 그 분야와 그 분야의 종사자, 그리고 그 분야의 소비자들일 것이다. 축구 선수의 폼과 클래스를 평론가와 해설자와 같은 축구 전문가와 팬들이 평가하듯이 말이다.


좋아하는 일과 운동에서 좋은 폼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영장의 마스터반 클래스에 걸맞은 회원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년의 폼과 클래스에 걸맞은 카피라이터인지 성찰하고 있다. 맘에 안 드는 부분은 평영 발차기를 교정하듯 그렇게 교정하고 있다. 칼럼니스트로서는 말할 것도 없다.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훨씬 기니까. 언젠간 꽤 괜찮은 폼을 체득하고 수준 높은 클래스를 유지할 수 있겠지. 그런 기대를 갖고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