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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Feb 17. 2023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사사키 아타루

동해선에서 읽은 책 8

동해선, 가벼운 책, 여섯 번째다.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건대... 그러니까 우치다 선생의 책과 동시에 읽은... 뭐 그런 게 아니다. 우치다 선생의 책을 다 읽어가는 와중에... 화요일, 울산 작업실에 나가봐야 하는데... 우치다 선생 책의 분량은 암만 봐도 가는 길에  다 읽을 것 같았다. 집에 오는 길엔 결국 멍 때릴 것 같고.. 그래서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들고 갔던 것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까 무슨 강박증 환자 같기도 하고...


며칠 전 밤, 아내는 머리에 헬멧 같은 헤어용품을 쓰고 검색을 하고 있었고, 난 그 옆에서 우치다 선생의 책을 읽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책 좋아하는 건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뭔 소리야... 여보, 늙어서 이런 취미도 없으면 낚시나 다니고 노인네들이랑 막거리나 마시고 화투나 치는 거야... 난 이게 그냥 취미인 거야.. 평생 취미.."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은 통치자에게는 다름 아닌 공포입니다.",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 사사키 아타루, P27.


초조함

시청 별관 1층, 아이갓에브리씽에서 감독과 커피를 마셨다. 미팅과 미팅 사이, 한 시간이 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초조함이 주제로 떠올랐다. 시답지 않은 것에 대한 초조함부터 아주 진지한 초조함까지...


우치다 선생의 글을 읽을 때는 초조함이 없다. 마치 잘 가르치는 선생한테 명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다. "역시 대단하셔."라는 추임새도 넣는다. 그러나 사사키 아타루는 다르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그렇다. 그런 인간이 이런 무지막지한 사상과 이론을 갖고 있다. 아니 그뿐이면 차라리 그러려니 한다. 도서관을 통째로 외우고 다니는 인간이 앞에 있어도 초조함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초조함은 그 모든 지식을 자유자재로 다뤄서 자기의 메시지로 만드는 인간 앞에 섰을 때 발생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아즈마 히로키나 지바 마사야를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언어와 글의 휘두름이 난폭하다. 양보 없고 타협도 없다. 우치다 선생이 "자 이건 말이죠."하고 글을 시작한다면, 사사키는 "진짜 이걸 들을 준비가 된 거야? 좋아 그럼 시작하겠어.", 뭐 이런 투다.


재난 뒤에 남겨진 책임들

공교롭게도 최근 2010년대를 배경으로 한 글들을 많이 읽었다. 히친스의 글들은 심지어 9.11 이후의 글들이었다. 이 책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지성인의 책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내가 가진 그의 얇은 책들도 대체로 같은 고민을 한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선 춤과 사진, 언어, 프랜시스 베이컨 그림 등을 소재로 인간의 조건, 인간다움, 일본 사회에서 한 개인이 투쟁해야 될 대상과 그 방법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다.


초월한 천재는 언제나 무섭다.

그는 천재다. <야전과 영원>을 읽었을 때 어떤 압도감을 느꼈다. 이런 철학서를 쓰는 인간이 소설도 네 권이나 썼고, 힙합과 만화, 예술 전반에 대한 조예도 깊다. 우치다 선생의 젊은 버전, 아니 더 무서운 버전일 수도 있겠다.


초조함+책임감

요즘 감독과 공유하고 있는 초조함이 있다. 감독의 후배 하나가 일 때문에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 꽤 큰 프로젝트인가 보다 했다. 그래도 서울일이니... 그런데 알고 보니 몇 백만 원짜리 일이다. 삼십 대 초반 애들이 여기서 저기서 그야말로 열정 페이로 착취당한다.


물론 영상을 찍을 줄 알고 편집만 할 줄 알면 이런저런 사이트에 "촬영 00만 원", "편집도 해드려요."하고 올리는 애들 때문에 단가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세상에 도의라는 게 있지 않나... 서울도, 부산도 우리 업계의 젊은 친구들은 그야말로 청춘을 불쏘시개 삼아 일을 처내며 산다. 뭔가 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이 업계에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그런.. 막연한 초조함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울산 사내와 더불어, 울산에서 움직이며 먹고사는데 울산 청춘들이나 감독의 후배들에게 뭘 좀 가르치고 전해주고 가야 하는데 하는 초조함과 책임감이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은 만큼... 그 값과 무게가 글에 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든다. 거의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는데... 감독과 함께 인사이더로 살면서 그 안쪽에서 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한 줄이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도 있다. 그런 초조함들이 아무 글이라도 쓰게 하고 아무 책이라도 붙잡게 하는지도.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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