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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Feb 18. 2023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우치다 다쓰루

동해선에서 읽은 책 9

원제는 "거리의 문체론"이다. 이게 더 맘에 든다.


복습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칠십이 넘었다. 불문과 학생으로 학문을 시작해 그야말로, 상투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방위적인 지식인의 전형으로 살았고, 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밝히길 70여 권의 책을 썼다고 했는데 한국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면 40종 정도가 나온다. 공저와 해제를 붙인 것까지 포함하면 더 될 것이다. 심지어는 그는 <원피스 스트롱 워즈>의 해설 비슷한 걸 쓰기도 했다. 


난 그의 책을 서너 권 갖고 있는데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어떤 주제로 쓰든 생각의 A에서 B로 이동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A를 설명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B를 말할 때 그는 서슴없이 C를 가져와 설명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의 설명이 더 명료하고 확연히 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고베여학원대학에서 했던, 은퇴를 앞두고 한 마지막 학기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그러다 보니 저자 스스로도 후기에 밝혔듯이 자신의 논의와 이론, 견해를 총정리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에 대한 설명, 바르트, 소쉬르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명쾌하고 적절하다.


낚이지 마라.

그렇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어찌 보면 글을 쓰는 마음 상태, 책을 대하는 마음 상태, 더 나아가 글로 소통하는 일에 담긴 심원한 의미를 밝히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자 그래서 글은 어떻게 쓰라는 겁니까?"하고 물으며 열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를 하기 위해선 연애와 사랑, 타자에 대한 태도와 인식의 형성이 필요하고, 만약 연애와 사랑에 계속 실패했다면 그 태도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듯 이 책은 우리가 글을 대하고 학문을 대하고 소통과 타자를 대하는 태도가 있는지 묻고 반성하게 한다. 


간절함...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24.


이 문장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실제로 칼럼을 의뢰받았을 때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 누가 내 글을 읽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였다. 그건 광고에서 말하는 타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내가 보낸 메시지에 호응하고 동의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문제였다. <영화의 위로>는 나보다 조금 어린 사람으로 잡았다. 내가 이런 영화를 이렇게 보고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위로를 받았는데 후배도 이럴 땐 이런 영화를 한번 보지 않겠나? 이런 심정으로 썼다. 그래서 민우를 비롯한 젊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많이 떠올리며 글을 썼다. 반면 <최카피의 딴생각>은 더 넓혔다. 내 또래는 "나랑 생각이 비슷한데." 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고, 위의 연배에겐 "요즘 중년들은 이 사안을 이렇게 생각하는군." 하는 이해의 장이 되길 바랐다. 그건 더 젊은 사람에게도 기대하는 바였다. 


어찌 됐든 이런 기준으로 거의 2년 가까이 썼지만... 저 문장을 보면서 난 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간절했었나, 반성했다. 


글과 생각이 날 끌고 간다.

"한마디로 우리가 글을 쓰고 있을 때, '지금부터 쓰고 있는 글자'가 '이제부터 쓸 글자'를 데려온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제부터 쓸 글자'가 '지금 쓰고 있는 글자'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멀리 있는 표적을 활로 쏘는 식으로 말은 줄을 잇는 것입니다."<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102.


<나는 전설이다>를 소재로 한 칼럼을 쓰는 중에 이 부분을 읽었다.  저번 강연에서도 말했지만 글이 날 끌고 갈 때가 있다.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지."라고 얘기해 봤자 글이 말을 안 듣는 것이다. 생각은 이미 더 먼 곳으로 달려가고 있고, 난 이미 넘어버린 페이지 수를 보면서도 고삐를 틀어쥐지 않는다. "모르겠다. 나도.", 뭐 이런 심정이 돼서 글과 생각이 가게 놔둔다. 그 결과...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심각한 이야기가 됐다. 흠... 고독에 관해 쓰려했는데 미래와 공포에 대한 글이 됐다. 흠.... 저번에 말했죠?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괴롭다고... 모든 편집인들에게 경의를.


마지막 인사

"마지막 강의 날 여러분의 따뜻한 박수를 받고 이 대학에서 여러분을 가르친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의 지적 미래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2012년 5월."<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후기 중에서.


저자 후기를 읽다가 울컥해보긴 처음이다. 20220406(아타루의 책과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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