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Feb 26. 2023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동해선에 읽은 책 14

"오렌지색. 그냥 오렌지색이 아니다. 타오르는 듯한 주황, 강한 생명력을 발하지만 동시에 퇴폐에 대한 예감을 품은 색. 그것은 과실을 완만한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퇴폐인지도 모른다. ", 1권, P292


"위스키를 잔에 따르니 무척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가까운 사람이 마음을 여는 듯한 소리다.",2권, P187



요트 파카

-하루키 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옷이다. <TV 피플>, <노르웨이의 숲>, <댄스댄스댄스>... 아마 찾아보면 거의 모든 소설집이나 소설에 이 옷이 등장할 것이다. 사실 요트 파카라고 해서 별반 특별한 옷은 아니다. 그냥 방수되는 옷감에 후드가 붙은 그야말로 파카다. 물론 그 변형은 다양하다.  


재미있는 건 옥션에서 요트 파카를 검색하면 하나도 안 나온다는 점. 구글에서 검색하면 거의 모두 일본 사이트다. 라쿠텐 같은... 즉 일본은 입고, 우린 안 입는 그런 옷....


일본은 전후에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 일종의 스타일을 받아들였다. 음악, 패션, 인테리어, 예술 문화, 음식 문화 전반에 말이다. 그래서 일본을 이해하는 ,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을 이해하는 법은 표상과 단어에 담긴 엄청난 의미를 찾아 해석하시도보단, 스타일과 이미지를 "쿨"하게 소비하는 것이, 그 자체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처럼.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음악과 환상과 세세한 의상 묘사, 자동차 묘사 들에 뭔가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찾으려 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누군가 멋지게 입었다면 우린 "오늘 무슨 날이야?"하고 묻지만... 하루키가 그렇게 입었다면 우린 그냥 "멋있군. 요트 파카와 보트 슈즈인가?"라고 물으면 된다. 요트는커녕 재규어를 타고 왔다 간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혼, 실업

이런 아픈 사건들에서 뭔가 엄청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도 사실 큰 의미 없다.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 아니 전부는 아픔을 겪지만 삶이 고단하진 않다.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소년조차 가출해서 아주 그럴듯한 곳에 아르바이트를 찾지 않던가?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도 아내가 딴 남자랑 바람피워서 이혼을 당하고, 일도 그만두고, 친구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궁색함은 없다. 여전히 아사히 맥주와 시바스 리갈을 마시고, 섹스 잘하는 유부녀 여자 친구가 일주일에 두어 번 찾아온다. 또 이상한 부자가 초상화를 의뢰해서 목돈도 만진다.


그러니까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무슨 성장기를 기대하는 건 부질없다. 그것조차 그냥 하나의 스타일이고 이미지다. 이야기의 장치랄까?


"은색 재규어를 몰고,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니는 은발의 이혼한 잘 생긴 교수"를 보며 우리가 안타까워하지는 않지 않는가?


환상

메타포니 이데아니 하는 말에 겁먹을 필요도 없다. 그것도 그냥 스타일이다. <태엽 감는 새>,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IQ84>, <어둠의 저편>에 숱하게 나오는 장치다.


이 세계와 저 세계, 관념과 사념, 현실과 상상, 이미지와 실체. 이런 것들이 교차하면서 무수히 많은 의미를 던지는 것 같지만 그걸 일일이 해석할 필요 없다. 그냥 그가 펼쳐놓은 세계를 즐기면 된다. 하루키는 21세기의 반지의 제왕, 황금나침반을 쓰는 사람이다. 물론 그 스케일이 아주 개인적이고 협소하지만 말이다.


문장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의 재미를 줄거리 전개에서 찾으려 하면 허탈하다.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고 끝나는 것 같다. 죄다 이상한 인간들의 이상한 이야기 뿐이다.  다들 불행한 듯 하지만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일주일에 2회 이상 섹스를 한다.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이야기도, 과거를 잊기 위한 이야기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여기, 오늘, 이 순간의 스타일, 경험, 환상, 섹스, 위스키, 재규어, 아사히 맥주, 스바루 포레스터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들이 다 무슨 의미와 역할을 갖고 있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하루키의 소설은 괴로워진다. 그냥 희한하게 뻗어가는 이야기를 즐기면 된다.


섹스

-어찌 보면 하루키의 소설에 빠지지 않는 것이 요트 파카와 함께 섹스일지도... 섹스는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 환상으로 걸핏하면 끌려들어 가는 존재를 현실에, 육체적으로 현존하게 하는 유일한 행위로 보인다. 요리와 먹는 행위와 함께.


그래서 섹스의 묘사는 담백하지만 빠지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는 실존적, 실천적 행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키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 어떤 고난에 처해도 희한하게 섹스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상대가 있다. 실업자인 주인공도, 수학 강사였던 <IQ84>의 덴고도 다들 부담 없는 유부녀들을 그 파트너로 두고 있다. 즉 하루키 입장에서는 섹스가 아무런 책임도 없는 순수한 유희일 때만이 인간적이고, 어쩌면 실존적인 행위 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조차 의무적이고, 출산과 가족의 형성을 위한 행위로 설정되면 하루키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현실에 기반한 타인과의 순수한 일대일 교류는 사실상 전무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작품성을 운운하는 건 사실 난센스다.

그냥 스타일이 맘에 들면 그걸 소비하면 그뿐. 유니클로나 H&M처럼 말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하루키가 버버리나 에르메스 일수도 있겠지만...20180325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