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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03. 2023

인권(비타악티바 01)-최현

동해선에 읽은 책  19

다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남에게 설명하기 모호한 개념이 있다. 그래서 종종 딸과 대화하다 딸이 좀 어려운 단어를 말하면 그 단어의 뜻을 물어보곤 한다. 이 책을 비롯한 비타악티바 시리즈는 개념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 즉 개념을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와 국내사를 두루 돌아볼 수 있다.


인권과 시민권.. 이 당연한 말...

그렇다. 참 당연하고 흔한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대접받으면서 이 지구에, 이 대륙에, 이 나라에 사는 건 당연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부터 사람은 구별되어 차별받았고, 근대의 민족국가(시민국가)의 성립 후에는 영토와 민족, 언어, 문화 등의 벽으로 외부와 외부인을 명확히 구분하려 했다. 여성이, 외국인이, 소수자가, 다문화가 한 나라의 경계 안에서 사람대접받으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존재로 존중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고, 그 역사는 아직 미완이다.


다문화의 정체성, 그 민감함...

마지막 부분, 저자는 이 부분의 논란들을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으로 펼쳐나간다. 내가 이 책을 썼다면 이 챕터는 부담스러워서 덜어냈을 텐데 저자는 묵묵히, 용기 있게 써나갔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던 개념인 타자와 관용, 똘레랑스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챕터다. 


적당한 분량과 난이도...

요즘 레비나스의 책을 집에서 읽다가 출근길에 이 책을 읽으니 술술 읽혔다. 120페이지 정도가 동해선 왕복 시 읽기에 딱 좋은 분량이다. 게다가 뭔 말인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붙잡아두는 레비나스의 문장을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마치 뉴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명료하고 심플하다는 얘기...


사족....

어제 네시 반쯤 감독과 삼산에서 헤어졌다. 감독은 조감독과 함께 촬영하러 공업탑으로 갔고 난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프로젝트의 영감을 받기 위해 삼산을 좀 헤매겠다고 했다. 그렇게 롯데백화점 건너편에 내려 뒤로 들어가 번화가를 헤매다가.. 번영로 사거리에 다다랐고... 여기까지 온 김에 중구 성남동에 가볼까..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쩐지 걸어가도 될 것 같아, 또 걸어가면서 보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사물과 풍경들이 있어서 쭈욱 걸었다.


그렇게 울산문화예술회관-울산 KBS-번영교를 거쳐 성남동 만남의 거리-차 없는 거리-새즈믄해거리를 거쳐 걸으며 울산 관아와 울산시립미술관까지 둘러보고, 다시 시계탑 거리를 중심으로 성남동 곳곳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 같은 골목들을 답사했다. 성남동 일대는 촬영이나 일 때문에 감독의 차를 타고 몇 번 스쳐 지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여기 한번 꼼꼼히 걸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다. 그 실행이 마침 어제였고.

그렇게 내린 결론이랄까?... 울산태화강역에서도,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이곳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재미있고, 아기자기한데 말이다. 내가 직접 걸었고 경험했던 거리들, 예를 들어 대전의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전주의 영화의 거리, 부산의 전포동 카페거리와 남포동 뒷골목 하고 견줄만한데 말이다. 심지어 삿포로나 후쿠오카의 아케이드 상가 느낌도 많이 나고, 뒷골목 느낌도 많이 나는데 말이다. 

아마도 서울의 강북과 강남, 부산의 수영강 이쪽과 저쪽, 황령산의 이쪽과 저쪽의 문제와 비슷하지 않을까? 부산의 경우엔 수영구와 센텀의 사람 간 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사람만 다니는 인도교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성남동이 울산의 도심 관광 스폿이 되기 위해선 만만치 않은 폭을 가진 태화강을 도보로만 넘을 수 있는 다리가 두어 개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니면 가장 빠른 버스 편을 콕 집어서 홍보하던가...


여하간... 어제 좀 걸은 덕분에 카피 아이디어도 얻고 콘티 아이디어도 찾고 그랬다. 뭐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답은 현장에 있고 속도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걸 실감...20220303


페이스북에서 작년 오늘 있었던 일을 알려줬다. 겸사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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