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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09. 2023

네 번째 원고 - 존 맥피

동해선에 읽은 책 24

논픽션을 쓰는 법

보통 실무적인 글은 유용하나 읽는 재미는 없고,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은 실무에 유용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예외다. 유머가 있고, 신랄하다. 책 곳곳에는 <뉴요커>에서 글을 만지는 모든 사람들이 나온다. 교정, 문법 전문가, 편집장, 살벌하게 잘라낼 부분을 표시하는 조판부까지. 여기에 그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들과 졸업해서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일과 면면을 아는 것만으로도 사실 이 책의 가치와 재미는 충분하다.


그러니 논픽션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읽어야겠지만 한 잡지사, 그것도 아주 수준 높은 글만 취급하는 잡지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그런 곳에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궁금한 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더 길게 앞부분은 못 쓰는 건 내일 작업실에 가야 해서다...


이하의 글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단상들의 모음이니 굳이 안 읽으셔도 된다.


"작업한 모든 프로젝트에서 구조에 집착했다.",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서문 중에서.

....

글의 구조와 뼈대

대학 신입생 때, 기숙사에 컴퓨터가 있는 동료의 방-409호 아니면 410호, 참고로 내가 아이디로 많이 쓰는 403은 대학 4년 내내 쓴 내 기숙사 방번호다-에서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가져간 메모를 참고하고  있었다. 그 메모지에는 리포트의 구조가 간단히 메모되어 있었다.


그걸 보던, 그 방의 방장이던 효석 선배-내 기억이 맞다면 거의 서른이 다 돼서 대학에 들어온, 그것도 수학교육과에 들어온 아저씨였다.-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애들은 이런 것도 몰라. 어떻게 영훈 씨는 이렇게 할 줄 아네."하고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사실 구조를 세우는 건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다. 내 경우엔 그 효과를 위해선 이 구조 세우기를 철저히 지켜야 하는 광고쟁이만의 구조 세우기 원칙이 내재되어 있다. 아마도 내 글을 쓰면서도 은연중에 이 철저한 구조 세우기 규칙이 적용됐는지도...


자료 수집-분석-쓰기-덩어리 나누기-불필요한 덩어리 분리수거 및 저장 - 재조립 - 퇴고 - 완성... 대충 이런 구조로 흘러간다. 그래서 "아니 이런 문단은 왜 쓴 거야."하고 삭제한 덩어리도 종종 다른 글에 재활용한다. "아하.. 너 여기에 맞는구나."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지난번에 쓴 글은 절대로 다음번 글을 대신 써주지 못한다.",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61.

....

암만... 암요.


"그래, 그러면 도입부란 무엇인가? 우선 도입부는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끔찍하게 형편없는 도입부를 쓰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네 번째 원고, 존 맥피, 104.

....

추위의 간접 체험

일기예보는 파주가 영하 15도라고 했다.

"아빠, 어릴 때 파주 살았었다고 했지? "

"응. 초등학교 1, 2 학년을 보냈지"

"그럼 영하 15도는 얼마나 추운 거야? 어때?"


잠시 생각했다. 무려 40년 전의 기억이다. 잠시 후 이렇게 답했다.

"너만 한 고드름이 집집마다 처마마다 달려 있었어. 집밖으로 나온 연통 끝에는 아빠 허벅지만 한 고드름이 연탄가스로 채색돼서 누렇게 달려있었고.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갔는데 그 길에 허리만큼 쌓인 눈을 군인들이 줄지어 서서 치우곤 했지. 그때, 도대체 무슨 옷을 입고 버텼는지..."

딸은 영하 15도의 추위를 겨우 상상할 수 있겠다는 표정이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은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헤매지만 그걸 발견할 기회가 항상 주어지지 않는다.",  <네 번째 원고>, 존 맥피, 145.


"집필은 오로지 스스로를 개발하는 일이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여러분은 집필을 통해 여러분 자신을 개발한다.", 149.

.....

글쓰기의 열망과 실천

애초에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중학생일 때부터일지도. 믿기 어렵겠지만 시도 썼고, 소설도 써 봤다. 그러다 뚝, 대학에 가서 거짓말처럼 글쓰기를 멈췄다. 대학과 대학원에선 소위 구조적인 글쓰기를 배웠다. 그러니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써야만 하는 글, 소위 학계에서 통용되는 글...


이 일을 하면서 별의별 글을 다 써봤다. 심지어 상업 영화 시나리오의 바로 직전 단계까지 써 봤다.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도 써 봤고, 20초짜리 라디오 광고는 몇 개나 썼는지 솔직히 아직 안 세어 봤다. 공연광고, 정치 광고, 인포머셜, 애드버토리얼, 브로슈어...


카피라이터로 써 볼 건 다 써보지 않았나 싶을 때, 늘 황당한, 당황스러운 일이 들어온다. 하.. 이걸 어쩐다 싶은 일들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카피라이터라는 일은 권태나 반복이 없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카피라이터들을 만나보면-물론 꽤 오래전 일이지만-평범하다. 그냥 아저씨 같고, 아줌마 같다. 요즘 부산 애들 말로 표현하면 그냥 센텀에서 흔히 마주치는...


최근에서야 내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 내가 읽었던 내 글 중에서 맘에 들었던 글은 이런 글이고, 이런 글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 시나리오나 스릴러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은 살포시 접었다. 존 맥피의 표현을 빌리면  충동이 자리를 잡았다고나 할까?


아... 카피라이터 20년 차 기념 글의 시작점을 찾았다. 옥동에 감독 두 명이 처음 사무실을 열었을 때, 그때 그들을 도와 천장과 벽을 칠하던 순간부터 시작하기로... 그때 왜 검은색으로 칠했는지...


"참조 틀(frame of reference)이란 글을 쓸 때 이해를 높이기 위해 넌지시 인유하는 사물이나 사람을 말한다.", <네 번째 원고>, 존 맥피, 201.

...

참조 틀에 대한 생각

이 부분을 읽고 오늘 올린 브런치 글에 사용했던 "참조 틀"을 다시 생각했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마주한 단 한 명의 팬이 그 음악에 열광한다. <라붐>의 메타포적 실천이다. 둘만 듣고, 둘만 느끼고, 그 음악에 몸을 맡긴 채, 그렇게 오래 몸을 부대끼며 춤추고."


여기사 "<라붐>의 메타포적 실천이다."라는 부분이 오전에도 거슬렸다. 일단 저 속 뜻은 영화 <라붐>에 나온 그 유명한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잘 생긴 소년이 아직 앳된 소피 마르소에게 헤드폰을 끼워주는 장면, 그 장면에 Richard Sanderson의 <Reality>가 흐르는 것처럼 서로 마주 보는 연인은 서로에게 단 하나의 음악이 되어, 오직 단 한 명의 팬을 위해 스스로 음악이 되어준다는 의미였다.


이걸 길게 쓰기 싫어서 그냥 <라붐>의 메타포적 실천이라고 표현했던 것. 어찌 보면 참 불친절한 참조틀이다. 일단 라붐은 1980년 영화다. 그러니까 아마 브런치를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내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 이 글을 읽었던 이의 절반 이상은 태어나지 않았을 때의 영화다. 설령 태어났더라도 영화를 싫어하거나, 프랑스 영화나 멜로 영화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안 봤을 영화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선택한 라붐이라는 참조점은, 최소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 라붐이라는 영화를 다 봤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좀 더 친절하게 풀어쓰기로 했다. 설령 라붐을 안 봤던 사람이 나중에 이 영화를 봤을 때...


"아하.. 그때 그 양반의 문장이 바로 이 장면을 빗대어 말한 거군." 할 수 있도록... 풀어 고쳐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라붐>에 나온 헤드폰 장면에서의 그 둘의 마주 보기와 그 둘을 위해 흘렀던 음악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근데 어쩐지 앞에 문장이 폼은 나보인다.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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