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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14. 2023

불과 글 ;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 - 아감벤

동해선에서 읽은 책 27

쓰면서 고민하는 사람, 그냥 많이 쓰는 사람...

종종 브런치에 왜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웃기지만... 왜 이렇게 글을 쓰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또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들의 글쓰기 주제는 다양하다. 신변잡기 에세이, 경제, 정치, 문학, 육아, 자기 계발, 여행, 여행과 그림... 심지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 앞두며 그 마지막 날의 느낌을 담담히 쓰는 작가도 있다. 그들은 왜 쓸까? 그리고 왜 그렇게 읽을까? 칼럼 초고는 이미 써놨지만 어쩐지 가을에 맞는 주제가 아닐까 싶어서 "우리는 왜 읽고 쓰는가?"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는 중이었다.


주어 든 책에 담긴 힌트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를 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과 글;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 조르조 아감벤., P19.


이번 주 화요일, 이 책을 가방에 넣었다. 봄에 사놨으려나.... 아감벤은 이 얇은 책에서 글쓰기와 창조하는 행위. 심지어 읽는 것의 의미까지 써 놨다. 그러니까 설마 하고 집어 들었는데 많은 힌트가 들어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일차적으로 그 자체로 유희다. 그것에 어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안 해도 된다.


아이에게 글을 가르친 후 아이가 읽고 쓰는 일에서 환희를 느끼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읽고 쓰는 것은 한 인간이 자기의 효능감을, 세상에 널린 하나의 텍스트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세상에 내가 만든 하나의 텍스트를 내놓을 때의 그 고유하고 구별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효능감을 얻고 누리는 일이다.


두 번째는, 아감벤의 저 문장에 있다. 글은 사태다. 그것은 벌어져야만 하는 일이고, 벌어졌던 일의 재현이다. 그 일은 실제 사건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건 그건 한 주체에 발생한 사건이다. 그 사건은 찰나처럼 지나가기에 우린 그 사건을 사유하고, "응시"한다. 그리고 언어로 옮긴다. 옮기고 나서 다시 응시한다. 그 응시는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일어난다. 그러나 같은 것을 같은 감정으로 보는지는 모른다. 응시는 욕망이 담긴 시선이기에, 각자의 욕망이 다르면 언어는 다르게 보인다. 쓰는 이는 쓸 뿐이고, 읽는 이는 읽을 뿐이다.


완벽함, 까닭에 대한 강박

"필연성을 각인시키는 요소는 작품의 우연성이다."P74.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이런 말을 들어 봤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의 합리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강박을 누구나 느껴 봤을 것이다. 아감벤은 창조행위에 대해 논하면서 무위에 대해 말한다. 무위에서 위는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이기고, 또는 다른 뭔가를 할 가능성을 버리고 그것을 한다. 심지어 그것을 할 때조차, 그러니까 쓰기를 할 때조차 내가 쓴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쓰지 않은 뭔가 때문에 내 스타일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 무엇 때문에 말이다.


저 문장은 묘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사람다움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는 책을 읽을 때 누군가는 낚시나 체스를 하는 것도, 개개인에겐 필연적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인생의 우연한 만남과 선택의 누적의 결과일 수 있다....


장황하게 썼지만.. 결국, 쓰기든 읽기든 거기엔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하고, 효율성과 효과적인 이유를 찾아 갖다 댈 이유가 없다. 이 땡볕에도 낚시를 하고 등산을 하는 사람이 있고-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도 이 더위에 올레길을 걸으셨다. 나이를 감안하면 무리지만, 그 무리엔 설명되어야 할 이유가 부재한다.-나같이 읽고 쓰기를 그냥 이유 없이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뭔가를 할 때 행복하다면 그걸 하면 된다.

"글쓰기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존재한다는 행복감이 글쓰기에 매달려 있을 뿐이죠. 그건 약간 다른 이야기입니다.", P213.


아감벤이 인용한 미셀 푸코, 말년의 인터뷰 내용이다. 살아있다는 체감을 위해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한 이십여 년 전에는 이 더위에도 십 킬로미터씩 매일 뛰었다. 어떤 사람은 쇠질을 하고, 어떤 사람은 수영을 하고, 어떤 사람은 글을 쓰고 읽는다. 이 모든 행위가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달리기는 탈수와 근육경련을 불러온다. 헬스는 근육통을, 수영은 탈진을 불러온다.


그 행위 자체의 즐거움과 행복 때문에 그걸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행복감이 거기에 매달려 있다면, 고통스러워도 우린 그걸 해야 한다. 행복이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듯, 행복이 달려 있는 행위 또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사족....

1. 매일 주요 정치/사회 기사를 정리해서 올리는 페친과 매일 주요 경제 기사를 정리해 올리는 브런치 작가도 있다. 엄청나게 길게 직장생활 잘하는 법을 매일 다양한 주제로 올리는 사람도 있다. 다들 행복하지 않을까?


2. 책 사진을 저렇게 찍을 때, 종종 난간에서 책이 떨어진다. 출근할 때 가져가는 200페이지 안팎의 얇은 책은 특히 잘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올리고 찍는다. 아마 그걸 보는 사람들은 "왠 미친 관광객이 울산에 들어오는구나"하고 걱정할지도... 2022.0804


<네 번째 원고>의 사족

"모든 글쓰기 책은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의 어려움을 다룬다.", 샘 앤더슨,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 서문 중에서.

사실 맥주를 네 캔이나 마셨고, 다섯 번째 캔을 마실 때는 미식축구 하이라이트를 볼 계획이었다. 그러다 오늘 산 이 책이 눈에 띄었고 "서문이나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펼쳤다. 일전에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에서 말했듯이 서문이 재미있으면 그 뒤는 보장된 거니까...


물론 내가 읽은 책 중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한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를 다 읽기 전에 존 맥피의 책을 읽을 생각은 없다. 그저 술기운에 "도대체 이 양반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호들갑인 거야." 하는 욱하는 객기가 생겨서 몇 페이지 넘겼을 뿐...


아 그리고.. 종종 책을 고르는 기준이 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책이 날 호명한다는 느낌이다. "응.. 이거 니 책이야." 뭐 이런 느낌이랄까? 여기까지 하고... 난 다시 맥주로 돌아가서.. 다시 미식축구를 볼 거다. 2022.0108


서점에서의 조우

알라딘 울산점에서 우치다 타츠루의 글쓰기 책을 꺼내들 때, 한 여성-아가씨라고 하기엔 여리고 소녀라고 하기엔 성숙한-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옛 판본을 막 꺼내 들어 구석으로 가 읽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말 두 마디가 맴돌았다.


"그 책의 최근 판본이 있는데 빌려줄까요?"


"당신은 지식인이지만 아직 변명할 어른으론 보이진 않아요. 그러니 그 옆에 꽂힌 박찬국의 <초인수업> 어때요?"-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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