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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23. 2023

좀비 사회학 - 후지타 나오야

동해선에 읽은 책 32

좀비에 대한 생각

-좀비에 대한 글과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시대별로 등장한 좀비에 대해 숙고하다 보면 그 시대의 세대 간 갈등, 이전 세대와 신세대가 서로를 보는 관점, 또는 한 시대를 보는 관점 등이 보인다. 이 책은 그런 개인적 관심으로 인해 눈에 띄었고 읽은 책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불쑥 사서 읽었다는 거.


테제와 안티테제

-저자가 언급했듯이 드라큘라도, 좀비도 도래하는 문물이나 세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 새로운 세대가 구세대를 투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좀비라는 존재 안에 기존의 테제와 안티테제의 가능성과 투영성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경계의 허물어짐, 유동하는 근대

-최근, 좀비가 맡은 역할은 경계적 존재다. 아니, 이 경계와 저 경계를 넘나드는, 또는 저 세계에서 온전치 않고 이 세계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랄까? 저자는 이 유동하는 근대, 신속하게 변하는 시대를 사는 이들 중 어떤 이는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 "이매지너리 에너미", 즉 가상의 적, 또는 특정 대상을 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이 시대의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위해 "이매지너리 프렌드", 즉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 후자의 경우엔 캐릭터 산업, 아이돌, 라이트노벨, 모에화 한, 그러니까 귀여움만 있는 사람이나 동물, 캐릭터가 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근래의 좀비는 이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갖고 있다. 즉 적과 동지, 혐오의 대상이거나 친근한 존재, 그 간극을 오가고 있다. 저자의 지적이다.


열화 되지 않는, 죽지 않는 저편, 이편의 죽음

-인간은, 멸한다. 늙고 죽는다. 모니터 저편의 애니 주인공, 게임 속에서 죽여도 살아나는 좀비는 죽지도 않고 그대로다. 내 스트레스를 위해 애니를 보고 게임을 하고 폭력적인 도구를 휘둘러 게임 속 좀비를 죽이는 동안 사람은 좀비가 된다. 더 피곤해지고 황폐해진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좀비인지 구분이 안 간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걷는 인간이 좀비인지, 그 안에 등장하는 좀비가 인간인지... 거기서 거기다. 이 모호한 경계성의 긍정적 전환, 긍정적 사고에 대해, 그 가능성에 대해 저자는 조심스럽게 고찰한다. 타자와의 경계성을 허무는 가능성으로의 전환, 국경과 이방인, 변화와 전통,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 그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존재로써의 좀비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한다.


그런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이성적이어야 획득 가능한 가능성이다. 그러니까 좀비로써가 아니라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열려 있는, 주체와 타자의 다름에 대해 수긍하는 열린 존재여야 가능한 것이다. 저자의 고찰과 모색의 현실화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 즉 무지하고 무비판적인 좀비 같은 인간이 아니라 앞서 말한 주체의 조건을 갖춰야 가능한 것이다. 그걸 알기에 저자는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말했을지도.


참고로, 저자는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리다. 그래서인지 아즈마 히로키를 인용한다. 특히, 안 그래도 읽어보려고, 얼마 전에 사뒀던 책을 많이 인용한다. 또, 서브 컬처에 대한 방대한 인용, 다양한 용어 소개, 좀비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은 신선하다.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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