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 전쯤, 우연히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을 읽고 한동안 세계대전에 빠져서 관련 책들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다. 단순한 전황을 나열한 것에서부터 지도가 첨부된 것, 동부전선에 초점을 맞춰 그 전황과 동기를 분석한 책, 또 그 유명한 테일러의 <2차 세계대전의 기원> 같은 책도 있었다.
이런 독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궁금하고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히틀러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최후의 14일>을 읽어 봤고, 이 원작을 토대로 한 <몰락>이라는 영화도 봤다. 그럼에도 여전히 찝찝한 것들이 남아 있었다..
몇 가지 의문들
-그렇다. 몇 가지 의문들이 있었다. 우선 전쟁과 유대인/집시/폴란드 지식인 등에 대한 대량 학살은 왜 동시에 진행됐을까? 1939년 겨울, 러시아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은 뒤 이미 동부전선의 패색이 짙어졌는데 왜 정치적 협상, 즉 종전을 위한 협상은 진행되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다음 해이던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는 왜 한 건가? 아니 그전에 프랑스를 점령해 놓고도 영국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아니 그전에 도대체 이 전쟁을 왜 시작한 건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는 왜 항복을, 그러니까 독일 국민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시점에서 종전을 위한 협상을, 그것도 기왕이면 자신들의 국민이 대량 학살되어서 보복의 의도를 충만히 갖고 있는 소련의 대대적 점령을 피하기 위해 미군이 중심이 된 연합군과의 협상을, 왜 하지 않은 걸까?
동기-목적
-난 그가 전쟁을 시작한 첫 번째 이유와 그 이유를 뒷받침하는 그의 철학이라면 철학은 알고 있었다. 역사는 종족/민족 간의 투쟁의 연속이고, 더 나은 민족이 생존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열등한 민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그 공간에서 몰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는 것이 히틀러의 역사관이자 강령이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범도이치민족의 생존공간을 전 유럽으로 봤고, 명확하지 않은 정의인 게르만/아리아인보다 열등한 슬라브인들을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몰아내거나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미친놈이긴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미친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왜 유대인은? 저자도 밝혔듯이.. 이게 앞의 강령과 부조화스러운데... 유대인은 투쟁의 장, 그러니까 유럽의 투쟁의 장을 훼손하는 존재로 봤다. 단순한 게 말하면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 무대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존재, 역사의 현장, 투쟁의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 그 공간이 허락되서는 안 되는 존재로 봤다.
1939년 이후의 판단의 동기
-1940년 이후, 유대인 학살은 그야말로 대량화가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아우슈비츠 시스템이 정착된 것도, 영화에서 본, 기차로 유대인을 이동시키는 것도 이때 이후다. 그러나 이때 이미 전황은 기울어 있었다. 자..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지고 있을 때 모든 물자는 전선에 투입되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러나 히틀러는 전쟁 물자와 무기의 보급보다는 유대인 이동에 기차와 철도를 사용했다. 당연히 친위대 같은 고도로 훈련된 군대도 수용소 경비와 이동에 배치됐다.
왜 그랬을까? 앞서도 말했듯이 유대인의 제거가 이 전쟁의 두 번째 목표였기 때문이다. 섬뜩하지 않나? 히틀러의 속내는 이런 것이었다. 자, 어차피 전쟁은 진다. 도이치 민족/게르만의 생존 공간의 확보는 좌절됐다. 그렇다면 두 번째 목표라도 완벽하게 완수하자. 이거였다는 거다.
더 무서운 건 전쟁이 이후로도 4년 가까이 지속됐다는 점이다. 아니 패배를 예감했으면 한 명의 국민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항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한 국가의 수장이자, 국민을 사랑하는 리더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 몰락에도 나오지만 독일 국민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했다. 그 빈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이 이후 전쟁을 끌고 간 다른 이유였다. 그야말로 독일 전체를 원시 상태로 만들려고 했었다. 왜냐고? 영화 다운폴에도, 또 이 책에도 나오는 히틀러의 생각은 이랬다.
"전쟁의 패배를 통해, 우리가 열등한 존재임이 확인됐다. 위대하고 우수한 게르만 민족은 전쟁에서 죽었고 남아 있는 이들은 열등한 존재들뿐이다. 이런 열등한 민족은 더 우수한 슬라브 민족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사라지는 것이 맞다."
그는 자신의 철학에 입각하여 열등한 것이 밝혀진 민족을 지구상에서 없애려 한 것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그에겐 조국애나 민족애, 국가에 대한 헌신 같은 건 없었다.
국민의 선택
-히틀러에 관해 읽다 보면 언제나 놀라운 건 그가 선거에 의해 정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뒤론 엄청난 공포 정치와 테러로 독재를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그가 정권을 잡은 초기, 그러니까 1933년부터 39년까지는 나름 정치가로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외교적으로도 성공했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실업을 잡았고 잃었던 땅을 회복했으며 심지어 베르사유조약도 거의 유명무실하게 만들면서 군비를 확충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각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고 정당 정치를 사라지게 했으며, 새로운 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은 해체됐다.)을 위한 헌법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정권의 계승이나 교체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는 역사를, 자신의 목표를,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과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독일 국민이 선택했고, 그 선택은 몇 년 간 이룬 그의 성과로 인해 옳았다는 확신을 줬으며, 그 확신은 히틀러의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역사의 우연, 선택, 심판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다른 책인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에선 독일 제국의 81년을 따져본다. 이 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독일은 인접국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하프너는 도대체 왜... 유럽의 완충지역이었으며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낸 독일 민족이... 왜 갑자기 전쟁 민족이자 국가가 된 것인지 추적하고 있다.
이런 질문은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클레어 코너의 <그것은 정말 애국이었을까?>와 같은 책은 미국의 극우 정치사를 한 극우파 가정사를 통해 파헤치고 있다. 아타루나 히로키, 마사야 같은 중년의 학자들은 일본의 극우에 대해서 많은 글을 남기고 있고... 물론 히로키의 역사의식에 대해선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말이다.
우리 또한 언젠간 하프너나 클레어 코너의 책처럼 이 시기, 그러니까 전광훈 목사의 교회에서 극우파가 좋아할 만한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대해 성찰하는 책을,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성찰하는 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국민의 누가? 무엇이? 왜? 그들을 선택하고 지지하게 했는지를 말이다.
사족...
이 책은 저번 주에 산 책이다. 보자마자 바로 샀다. 읽으면서도, 일고 나서도 후회 없다. 사건의 마지막 단서를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20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