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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29. 2023

성관계는 없다 - 슬라보예_지젝

동해선에 읽은 책 36

페북이 오늘 있었던 일을 알려줬다. 여러 사람의 논문이 실린 책이라 저자를 아래에 나열했다.

#슬라보예_지젝 #브루스_핑크 #조운_콥첵 #알렌카_주판치치 #레나타_살레츨


그러니까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종의 남녀의 차이를 말한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특히 주디스 버틀러 사단은 라캉의 저 멘트를 빌미로 무지하게 공격했다. 남성 중심적이며, 역사주의적이며, 헤게모니적이며.. 등등등... 이 책은 저 비판에 대한 비판, 옹호, 논리 정연한 반박이다.


주디스 버틀러..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석사 시절, 그러니까 한 20여 년 전에 그녀의 책을 원서로, 부분만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 젠더라는 말은 상당히 세련된 말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선 그 세련된 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남성을 중심으로 차별과 차이를 논하며 여성의 이름을 규정하는 것은 그 거대한 구조의 음모를 벗어날 수 없는, 스스로 파는 함정임에 불과함을 콥첵은 칸트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지젝의 추가

-콥첵의 설명이 좀 어렵다 싶었을 때 지젝이 거든다. 내가 읽은 지젝의 글 중 가장 명료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친절하다. 남자든 여자든 그 빈 스크린 뒤에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젝은 말한다.


살레츨

-살레츨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다. 어려운 걸 쉽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또 관심사의 스펙트럼도 넓고...


슬로베니아 학파

-이 젊은 나라가 학파를 이뤘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들의 논문을 그러모아 책을 낸 한국의 출판사도 놀랍다. 참 돈 안 되는 짓을 용감히 잘도 했구나 싶다. 덕분에 나 같은 이들이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만.


주체의 존재 의미가 없을 때..

-라캉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그럼 이젠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때 결국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실존주의를 부르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랬다. 그래서 사르트르와 하이데거, 그리고 박찬국 교수님의 책을 라캉과 동반하여 읽게 됐다.  


책꾼의 핑계

-집에서 가까운 중고 서점에 새로 들어온 책의 목록을 매일 살핀다. 무슨 주식 시황 확인하듯이. 서면에 박찬국 교수님의 책이 들어왔다. 그것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 아... 이거 나가야 되나. 내일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소용없었다. 그러니까 바로 들이댈 수 없는 학자나 책이 있다. 하버마스도 그렇고 레비나스, 들뢰즈, 데리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것도 없다. 하이데거도 그중 하나라고 악명이 자자했다. 그런데 다른 소문에 박찬국 교수님이 이 하이데거를 잘 정리해 놓았다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사놓고도 펼칠 엄두가 안 났던 사람으로선 나갈 수밖에.

바슐라르라는 사고...

-아.. 바슐라르는 사고였다. 그러니까 박찬국 교수님의 책이 있던 바로 윗 칸에 이 책이 있었다. 익히 그 이름을 알고 있었으나 계획에 없었으니 철수하려고 했으나 그전에 검색을 해봤다. 이 판본이 번역이 좋다는 세간의 평가가 이어졌다. 아 그래? 그럼 사야지... 그렇게 사들였다.


태양을 잡을 수 없듯...

-오늘 오후, 딸과의 하굣길, 박물관 정원. 딸은 나무 사이를 쪼개고 들어오는 햇살이 멋있다고, 이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 햇빛을 가린다고 해서 햇살을 막을 수도 없고, 손으로 가려진다고 해서 태양을 잡을 수 없다. 라캉의 이론을 읽다 보면 우리가 손에 넣으려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이 태양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불교의 철학, 실존주의로 다다르는지도 모르겠다.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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