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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의 원인과 불면증의 치료법, 혹은 나이 듦에 대해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26

by 최영훈

한 보름 전부터 몸이 좋아 보였다.

며칠 전에는 근육의 생김새가 달라졌다. 가슴과 광배, 그리고 아랫배의 모양이 달라 보였다. 아마도 영법을 바꿔 더 많은 근육을 쓰기 때문일 테고, 강사가 바뀌면서 운동량도 많아지고 종류도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몸이 다른 형태로 자리 잡으려 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 몸이 다른 레벨, 다른 형태의 몸으로 갈 때는 내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는 의미이니 살살 달래주면서 이 변화의 시기를 관리해야 한다. 마라톤을 할 때도,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때도, 십여 년 전 수영을 처음 배울 때도, 잠시 헬스를 열심히 했을 때도 같은 일을 겪었었다.


관리라는 것이 별 거 없다.

그저 평소보다 맥주의 양을 줄이고 적게 먹고 비타민을 챙겨 주고 잘 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다른 건 다 잘하지만 맥주의 양을 줄이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영법에 몸을 적응시키면서, 몸이 수영 선수와 같은 형태로 자리 잡는 걸 보면서도 맥주를 줄이지 않았다. 목이 약간 칼칼하다는 느낌이 있으면서도, 다리와 가슴에 근육통이 느껴지면서도 마셔댔다. 결국 탈이 났다.


월요일, 화요일엔 수영을 했다. 화요일 저녁, 아내는 회식을 하고 온다고 했다. 난 축구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 작업실에 나가봐야 했는데도 말이다. 수요일, 하루 종일 욱신거렸고 목요일엔 수영을 못 갔으며 이 글을 쓰는 금요일에도 수영을 안 갔다. 아마 한 5년 전만 됐어도 갔을 컨디션이었지만 쉬기로 했다. 이젠 쉰이 넘었으니까. 몸살에 걸리거나 약한 감기에 걸리면 물과 주스를 엄청 마신다. 그렇게 몸 내부를 한 번 순환시켜 주면 그럭저럭 컨디션이 돌아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놀라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감기나 몸살은 결국 몸이 평소와 다른 자극에 놀라서 자기 스스로를 수습하는 과정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지만. 평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은 전혀 안 하는데, 가족 여행을 가서 모처럼 온천에 좀 오래 몸을 담근 후에는 어김없이 몸살이 난다. 온천수를 물놀이 시설의 물로 사용하는 곳에 가서 아이랑 놀아도 몸이 힘들다. 간만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을 해도 몸이 놀란다.


요즘엔 섹스를 해도 몸이 놀라는 것 같다.

삼십 대와 사십 대를 국가와 의료계가 인정한 섹스리스 부부로 보내고 최근에서야 -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 비교적 그 횟수가 늘어나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필 남자의 전성기가 다 지난 뒤에 이럴게 뭐람...


여하간, 일단 하고 나면 기절하듯이 잠든다. 불면증이 없는 사람이어도, 그래도 잠들기 전까지 눕는 자세도 몇 번 바꿔보고 베개도 고쳐 베고, 뭐 그러지 않나? 그런데 섹스를 하고 난 밤에는 아내에게 잘 자라는 인사도 못하고 곯아떨어진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흠... 섹스를 권장한다. 아, 물론... 우선은 애인이 있고... 섹스리스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아니 그렇다면 불면증에 걸릴 이유가 없지 않냐고 화를 내려나? 미안하다.


두 번째 증상은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좋아져 있다. 알다시피 잠자리에서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은 대체로 남자이기 마련이니까 근육량이 제법 되는 사람은 섹스만 해도 운동이 된다. 팔, 가슴, 하체 등등... 아침에 일어나서 “응, 어제 수영을 과하게 했나?”하고 혼자 생각하다가 전날 밤의 섹스를 떠올린다. 섹스가 남녀의 건강에 좋다는 건 임상병리학적으로...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의 내 모습을 봐도 근거가 있다. 그러니 운동이 하기 싫으면 섹스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응? 애인도 없는 사람이 무슨 섹스냐고? 화를 돋우었다면... 미안하다.


여하간, 새 버전의 몸은 자리를 잡고 있다. 몸살도 수습이 되고 있고. 오늘은 금요일이고... 마침 원고료도 들어왔고... 오늘은 한잔할 수 있을까? 애를 일찍 재우고... 아니다. 아직 이르다. 이러다 주말 내내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월요일에 무슨 심사에 심사위원도 해야 하는데... 오늘 저녁도 가볍게 먹고 일찍 자야지. 다들 불금과 핫한 주말 보내시길. 건투를 빈다. 2023.0331

(아래의 글은 몸살과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예전 생각이다.)


자동문, 면역력, 몸살, 흰머리

자동문처럼....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젖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남자로서, 여자로서 쓸모 하나가 있는 것이다. 한 명의 이성(異性)이 내 등장만으로 육체가 젖어들고 이성(理性)이 TV전원 꺼지듯 “팟” 하고 꺼져 버린다면 아직은 남성으로, 여성으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면역력이란 결국 부대낌으로 인해 강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는 남녀가 건강하고 예뻐지는 것도 피부에게 그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했기 때문인지도.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촉각이라는 감각을 비로소 작동시켰기 때문인지도... 타인의 손길, 땀, 타액, 그리고 눈길까지 기꺼이 받아내는 감각의 최전선에 피부가 활약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몸에 모든 호르몬이 깨어나 우리는 더 건강한 인간, 더 남자답게, 더 여자답게 되는 것인지도.


결국 늙는다는 것은 오감을 잃어가는 것이지만.... 시각, 청각, 미각을 잃는 것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정작 온몸의 촉각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 한채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인의 타액으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의 피부가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경험을 언제부턴가 하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늙어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쩌다 그런 경험, 그러니까 오랫동안 방치되고 잊혔다가 불쑥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온몸의 근육과 피부, 장기들이 놀랐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이 들어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를 갖게 되면 사우나에서 금방 나온듯한 나른함에 이어서 욱신거리는 몸살이 찾아오는지도...


인간의 모든 근육은 쓰지 않으면 퇴화하기에... 그래서 섹스를 안 하다가 하면, 그러니까 일 년에 대여섯 번 하는 중년의 부부들이 어쩌다 격하게 하면 마치 생전 처음으로 헬스클럽에 가서 트레이너의 조련 하에 한 시간 운동하고 온 밤처럼 몸살을 앓는지도... 그렇게 드문 섹스와 어김없는 몸살이 교차되면 섹스는 질병의 원인처럼 인식되어 점점 더 멀리하게 되는지도...


그래서 우린 또 하나의 몸에 좋은 운동을 포기하면서 쓸데없이 건강정보프로그램을 보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비타민보다, 글루코사민보다, 홍삼보다, 흑염소나 종류가 점점 많아지는 00 베리 종류보다 정작 우리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건 너무 가끔 해서 할 때마다 몸살을 앓지 않을 만큼 자주 사랑을 나누는 것일지도...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많은 것이 어울리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특히 젊은 여자와 한 자리에 있는 것. 늙음은 상대적이어서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20대 여자 옆에 우연히라도 서 있게 되면 내 나이 듦이 그렇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교수가 대학원 여제자에게 집착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집착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데 유명 대학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학생도 가르치고 연구도 하면서 어떻게 20대 여제자에게 집착할 에너지가 남았는지.... 같이 있는 모습을 다른 이가 보았을 때 흉해 보이지 않을 거라 자신하고 그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당당하게 연락을 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동네에 왔다 갔다 하는 여대생들을 보면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들이다. 우연이라도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는 존재들 같다. 아니 행여나 그녀들이 같이 있자고 해도 같이 있으면 내 흰머리와 나이 든 얼굴이 더 추하게 보일까 봐 거절할 수밖에 없을 존재들이다.


더군다나 그 젊은 육체 위에서 버둥거릴 흰머리 노인네를 상상하는 건 더 추한 상상. 그래서 제자들을 성추행하고 연애하려고 꾸준히 시도하다 들킨 몇몇 남자 교수들의 빈약한 상상력과 터무니없는 현실 감각에 경외감까지 들 정도다. 잘 나이 든 다는 건 어쩌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여, 할 수 있는 것에 그나마 남은 에너지를 몰아가며 사는 법을 알아 간다는 것일지도. 2017.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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