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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Apr 04. 2023

언제나 시작은 사람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40

평가나 심사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들

-어제, 울산의 한 공공기관 공모사업에 참여한 제안서 평가에 참석했다. 지역의 특색과 소재를 살린 콘텐츠로 사업을 하려는 젊은 기업의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우선 개인적으로, 이런 자리에 오라고 할 때마다 느끼는 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 일을 제법 오래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이런 심사를 맡길만한 적당한 사람 찾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이다.      


우선 심사위원의 구성을 보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별로 없다. 보통 평가위원장은 대학 교수나 하려는 사람이 없는 경우엔 가장 연장자가 맡곤 하는데 요즘엔 솔직히 내가 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나이를 먹는 동안 운 좋게도 다른 일 안 하고 이 일만 하다 보니 이래저래 이런 사람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이런 역할을 맡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평가나 심사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우선 울산에서 활동하는 위원이 별로 없다. 부산 출신 위원도 몇 명 안 된다. 그래서 부산과 대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서울과 대전의 전문가나 교수를 위촉하기도 한다.


물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심사를 해야 할 경우엔 특별히 울산의 교수나 전문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오는 사람, 올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알다시피 울산의 4년제 종합대학은 하나뿐이고, 당연히 관련 학과는 몇 개 안 되니 부를 사람이 몇 명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이나 전략, 기획의 플로우에 관한 부분을 볼 사람은 더 적다. 아마 그런 이유로 날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부르는 것 같다. 물론 그 이유야 정확히 모르지만.     


수준차이

매번 들어가서 제안서를 보고 발표를 들을 때마다 위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은 수준차이다. 이 수준 차이에 대한 말은 어제 참석한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 온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재차 나온 말이다. 수준 차이는 여러 맥락, 여러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심사는 제안서의 포맷을 정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목차를 아예 정해주는 것이다. 물론 곧이곧대로 할 필요는 없지만 들어갈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공지하게 되면 참석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 순서를 착실히 따를 수밖에 없다.


이때, 그러니까 같은 목차를 갖고 제안서를 쓸 때 드러나는 수준 차이가 있다. 일단은 가시적으로는 발표 자료의 디자인이다. 색이나 요소의 심미적 아름다움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취향의 문제다. 내가 보는 건 생각의 표현과 가시성, 가독성이다. 아마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할 것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형태의 경쟁에 많이 참가하고 그 경쟁에서 이겨서 동류의 사업을 많이 한 기업의 경우엔 하고자 하는 말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텍스트와 아이콘을 적절히 사용해서 이슈와 이슈의 관계, 목적과 과제의 관계, 과제의 수행과 결과 및 효과와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자신들의 강점을 시각적으로 어필할 줄 알고 부수적인 요소들은 과감히 생략할 줄도 안다. 그렇다고 그 요소들은 준비 안 한 것도 아니다. 꼼꼼한 심사위원이 그 부분에 관해 물으면 준비된 답을 한다.      


반면 경험이 없는 업체, 특히 부산, 울산, 경남의 업체의 경우엔 텍스트가 너무 많다. 여기에 사진과 그래픽 요소도 과하다. 페이지마다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선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이 쉽지 않으니 각 챕터와 장들의 논리적 연계성이나 구조를 머리에 담아두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결국 발표가 끝나면 뭘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어서 평가/심사위원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빠졌다고 생각하고 그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인식의 출발점

두 번째 수준 차이는 문제의 인식 출발점 문제다. 내가 참여한 평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예비 창작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일 년간 위탁 운영할 기업을 선정하기 위한 제안서 평가, 다른 하나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기 위한 적절한 콘텐츠나 창의적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평가다.      


전자의 경우엔 대체로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각 지역이 거의 같은 형태의 기관이나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위탁받아 운영하는 기업도 대체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기관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콘텐츠 코리아 랩 같은 경우 각 지역별, 연차별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등장하는 강사나 특별 연사들의 면면도 다를 게 없다.


결국, 평가 위원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운영에 접근하고 그 운영을 통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태의 기관들이 크리에이티브한 인재를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간 다른 평가 위원들처럼 나 또한 확실한 문제의식을 갖고 작은 차별점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기업을 선정하려 애쓰고 있다.      


후자의 경우엔 이 문제의식의 부재가 더 심하게 느껴진다. 열 개가 넘는 제안서를 보다 보면 마치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캡스톤 대회나 마케팅 경진 대회의 자료를 보는 기분이 든다. 첨단 기술을 응용한 것에서부터 간단한 디자인을 활용한 것, 지역의 문화재나 역사를 활용한 것에서 자연환경이나 상징 동물을 활용한 것까지 그 성격과 방향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상품이나 서비스가 지금, 왜, 누구에게 필요하고 그 누군가가 지금, 이것을 사용하고 누리게 되면 소비자와 지역민의 삶과 지역이 어떻게, 얼마나 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울산의 지역 특성을 생각하며 만들어온 제안서들 중에는 울산이 대전과 함께 양대 노잼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로 울산에서 울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은 넘어가자.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가져온 상품이나 서비스가 울산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거나 울산 외 지역의 사람들에게 울산을 재미있는 도시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그런 인식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효과를 말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 설명과 상품 설명을 하는데 치중하다가 어느 순간 노잼 도시 울산과 그 도시를 사는 시민의 삶, 또 그 노잼 도시를 재미있게 인식하여 울산을 찾아와야 하는 관광객의 마음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결국 나 같이 인내심 없는 평가 위원은 “그런데 그게 울산을 재미있게 만들어 줍니까?”, “그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다른 지역 젊은이들이 ‘와~ 울산은 정말 재미있는 도시구나.’ 하고 울산을 더 많이 찾아온다는 겁니까?”하고 묻게 된다. 물론 당연히 그러리란 보장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다른 도시 사례라도 가져와야 한다.


더 나아가 한번 하나의 상품이나 서비스, 예를 들어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본 기업이라면 그 동영상 스트리밍 전과 후의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다들 좋아요 숫자와 구독자 수, 조회수만 나열한다. 더 질문해 봐야 분위기만 험악해지니 그냥 질문을 멈추곤 한다.     


결국엔 "사람" 아닐까?

제안서에 사람이 없다. 사람 사는 도시를 위해, 그 도시의 특성을 살려, 그 도시만을 위한, 그 도시의 문화와 창조성을 배가 시키겠다는 제안서에 사람에 대한 고민, 그 사람이 사는 사회와 공동체 대한 고민이 없다. 이런저런 이슈를 던져서 초반 시선 강탈은 그럭저럭 성공하는데 그 이슈의 행간, 그 이슈의 근간이 되는 근본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다.


통계청이나 각종 리서치 회사, 마케팅 회사에서 분기별로 내놓는 조사보고서나 통계 자료를 보고, 그 자료 속에 등장하는 여러 숫자들이 말하는 의미를 음미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저 한 달 치 경제 뉴스나 사회 뉴스, 지역의 주요 뉴스만 스크리닝 해도 잡을 수 있는 사실조차 빼놓는다.      


사실, 평가 위원들이 뭐 엄청난 리서치와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고급 통계와 분석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구매해야만 하는 고급 정보를 분석해서 제안서에 담으라는 것도 아니다. 노잼 도시라는 화두 하나 달랑 던져 놓고 그 화두의 근간이 되는 실질적 문제나 근본 원인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에 대해 놀랄 뿐이다.


처용무나 반구대 암각화, 대왕암이나 영남 알프스, 태화강국가정원을 소재로 쓰겠다고 해놓고 그저 그것을 춤으로만, 상형적인 아이콘으로만, 자연 관광 소재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랄 뿐이다. 처용무로 유추할 수 있는 신라 시대 울산항의 위상과 다문화 사회 신라에 대한 추론으로 그 논의가 발전되지 않아서, 반구대 암각화의 위치와 반구동의 위치와의 상호 관계나 상류와 하류를 오갔던 선사 시대에 대한 고찰이 없는 것에 대해, 영남 알프스의 간월재에 담긴 천주교 박해 역사의 아픔에 대해, 태화강국가정원을 찾는 다양한 철새의 종류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너구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아서 놀랄 뿐이다.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사람 공부

여기서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 길게, 다 말할 수는 없다. 관련 학과에서 조사론을 비롯한 다양한 이론을 깊이 있게 안 가르쳐서일 수도 있다. 자신들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확신에 눈이 멀어 사람과 도시, 공동체가 안 보여서 일수도 있다. 일과 자신에게 도취되어 타자에게 시선을 던질 시간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사람과 도시, 공동체를 위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팔겠다는 사람이라면 우선은 사람 공부를, 그것도 좀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시대, 독서 열풍과 인문학 열풍이 그야말로 지나가는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진부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아 그 독서와 인문학의 바람결을 가슴속으로 들여와야 될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는 거의 모든 사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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