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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y 10. 2023

작가의 마감-안은미 엮고 옮김

동해선에서 읽은 책 44

0. 아내와 딸은 안 방에서 자고 있다. 

딸은 나와 함께 여덟 시에 보드를 타러 가서 한 시간가량 탔다. 지는 느낄지 모르지만 속도가 빨라졌다. 자기만의 발란스와 리듬도 찾고 있다. 얼핏 애들 장난 같아 보이는 보드지만 제깐에는 제법 운동이 되는 모양이다. 땀이 제법 났다. 오는 길에 그 땀이 식지 말라고 윈드 브레이커를 입혔다. 언제나 그렇듯, 딸은 불평했다.


1.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책이다 보니 출판사 대표님들과 페친의 인연을 맺었다. 

그중 한 분이 정은문고 대표님이다. 몇 주전... <작가의 산책> 출간 기념으로 퀴즈를 페북에 내셨는데, "책의 표지에 나온 두 사람은 누굴까요?"였다. 상품은 <작가의 계절>과 <작가의 마감> 중 택 일. 흠... 아는 일본 작가도 몇 안 되는데 무슨 수로 그걸 맞추나 싶었으나 힌트는 언제나 있는 법... 여차저차해서 정답을 맞혔고... 정답자 선착순 열 명에 들어 상품을 받게 됐다. <작가의 계절>은 있으니 <작가의 마감>을 신청하여 방금 도착.. 문제는 모든 시리즈가 그러하듯 일단 시리즈에 말려들면 계속 읽어야 한다는 것...


2. 다들 치열하게 살았다.

"내게도 봄이 있었다. 파란 꽃을 찾아 헤맸다. 노란 술을 마시러 다녔다. 불타는 빨간 입술을 빨아들였다. 강렬한 것, 참신한 것, 몸도 마음도 녹아버릴 만한 것. 사랑하는 연인을 괴롭혀 죽이고는 조각낸 고기 따위를 탐했다. 인생을 예술화하려고 몸부림쳤다. 몸부림치며 무엇을 얻었는가? 아, 오직 알코올 중독!", <잡언>, 다네다 산토가, <작가의 마감>., P.52.

....

작가의 절반 이상은 모른다. 추리소설 작가라면 몰라도 일본 작가 중에 읽어본 이는 드물다. 그래도 연민이 가고 마음이 가는 건 나보다 오랜 산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길면 일흔, 짧으면 서른 안쪽에 죽었다. 사십 대에, 오십 대에 죽은 이도 흔했다. 이십 세기 초의 일본이어서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죽음들이었다. 


그 짧은 삶 속에서도 많은 글을 썼고, 많은 문예지와 동인지를 창간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혁명도 꿈꿨다. 병에 걸려 요양도 하고 쉬기도 했다. 그래도 다들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만년필로 썼고 누군가는 펜으로, 누군가는 붓으로, 누군가는 연필로 썼다. 뭘로 썼든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었기에 생계가 달린 문제였고 찬란한 문학과 비루한 생계 사이에서 작가는 괴로워했다. 그 괴로움이 행간에 드러나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3. 그래도 쓴다.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그저 꾸준히 쓰는 것이다.", 하야시 후미코, <생활>, <작가의 마감>, P.162.

....

할 줄 아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 이것뿐이다. 더 잘하고 싶고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것이 이것뿐이다. 책을 성처럼 쌓아 놓고 읽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글을 밀고 나간다. 그래도 좀처럼 맘에 드는 글은 나오지 않는다. 인쇄소에 자신만의 원고지를 인쇄해 오던 시절. 종이도 귀하던 시절. 맘에 안 드는 글이 담긴 원고지를 버리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을 터. 이래저래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4. 경의를 보낸다.

책을 읽다 보면 종종 감탄하며 그 작가에게 경의를 보낼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엔 엮고 번역한 이와 편집자인 출판사 대표에게 그 경의를 보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글은 여러 시대, 여러 지면에 흩어져 있던 것이다. 그 흩어진 것을 모아 일본에서 이미 낸 책 또한 없다. 그러니까 안은미 번역가가 발품을 팔아 저 글들을 그러모아 번역한 것이다. 그것도 주제에 맞게 찾아 모아 번역한 것이니 그 애씀이 상상도 안 된다. 고생하셨다.


5.  쓰면서 배우고 읽으면서 배운다.

-매일 뭐라도 읽고 쓴다. 봄에 넘긴 기획과 카피와 시나리오를 처내기 위해 감독이 분주히 촬영을 하는 동안 카피라이터는 읽고 쓰는데 더 시간을 들인다. 읽다 보면 쓰고 싶고, 쓰다 보면 읽고 싶다. 그 결핍과 갈망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간다. 

사진의 꽃은 바위취꽃이다. 약재로도 쓰인다더라. 박물관 뜰에 피었던데, 올해 들어서야 처음 봤다. 처음엔 백접초와 닮아, 그것이라 싶었으나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시든 꽃으로 보인다고 딸이 말했다. 딸이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술붓꽃만큼 화려하다며 놀랐다.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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