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동기이자 현재 내 칼럼의 발행인... 사적으로 누군가를 만난 건 오랜만이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써야 해서 혼자 부산에 여행 온다고 했을 땐, 이게 미쳤나 싶었다. 가정이 있는 오십 대 남자가 혼자 여행을 오는 것도 모자라, 숙소까지 하필 광안리에 잡다니....
덕분에 불타는 금요일 저녁, 부산의 청춘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해변을, 그것도 어방축제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인산인해인 그 해변을 정말 몇 년 만에 걸었다.
호텔로 찾아갔다. 길가로 내려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기다리는 동안, 알아볼 수 있으려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자마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안았다. 그는 머리를 염색했고 난 흰머리 그대로였다. 광안리로 가는 지하철에서 한 아가씨가 내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이런 나에 비하면 그는 젊어 보였다. 보자마자 한마디 했다."진짜 혼자야? 야, 난 뭐, 부산에 숨겨놓은 여자라도 있는 줄 알았지."
광안대교의 조명이 들어올 즈음, 민락 어항 쪽으로 걸어가서 코 앞에 있는 광안대교를 함께 봤다. 방파제 앞에는 나도 처음 보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민락더마켓 같은. 걸어가는 동안 기온이 내려갔다. 바닷바람이 차고 매섭게 불었다. 흰색 셔츠만 입고 있는 그를 보며 한마디 했다. "야, 관광객, 너 춥겠다.", 난 회색 반팔티에 갈색 블루종을 덧입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일곱 시 반에 하는 드론쇼를 꼭 봐야겠다고 해서 다시 해변 쪽으로 걸어가서 함께 봤다. 걸으면서 내가 한마디 했다. "야, 금요일, 이 시간에 우리 같은 아저씨들이 광안리에 있는 건 민폐야.", 그 후 우린 저녁 겸 해서 한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버펄로 윙(이 집 윙이 맛있더라.)을 안주 삼아 제법 많이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세기말을 함께 보냈다. 함께 공부했고 낮술을 마시며 토론했으며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그런 기억들을 꺼내었다. 없어진 기억과 모르던 사실들을 꿰어 맞추며 그 시절을 복기했다.
졸업하면 잘 풀릴 것 같았던, 제법 유명했던 학교와 학과의 후광을 업고 잘 풀릴 줄 알았던 청년 시절의 순진함에 대해, 믿었던 사람과 잠시의 영광에 취해 이후에도 잘 풀릴 줄 알았던 서로의 순진함에 대해 얘기했다. 그 순진함 뒤에 마주 한 상처들과 절망들, 길고 깊었던 우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절망과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와 담담히 맞은 오십 대의 소감을 나눴다.
난 그 친구가 언론계에서 유명한 아버지 덕을 보며 편하게 살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산 줄 알았다. 들어보니 대학원 졸업 후 엄청난 파도들이 그의 삶을 관통했다. 그에 비하면 내 삶은 무난한 편이었다. 이제는 온라인 언론사의 대표, 중학생 아들의 아빠로 살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다.
만난 직후, 호텔 앞 데크에서,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잘 찍어줄 것 같은 젊은 커플을 골라 내가 부탁을 했다. 그때, 함께 사진을 찍으며, 그가 그랬다. "형(내가 한 살 많다.), 이거 십 년짜리 추억이야."
호프 집에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일본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그가 내게 그랬다. "형, 나랑 일본 여행 한번 같이 가자.", "야, 무슨 남자 둘이서.", 한 참 웃었다.
이날 밤, 열 시 반까지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스트레스와 독한 위스키를 벗 삼아 사는 그에게 내가 그랬다. "야, 너 자주 내려와. 답답하고 그럴 때마다 내려와. 내가 부산에 사는 동안엔 종종 보자. 덕분에 나도 금요일 밤에 이런 데도 좀 종종 나와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