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시절로부터 걸려 온 전화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45

by 최영훈

"이승우"에게 보이스톡이 걸려 왔다. 내가 아는 이승우는 제자이자 후배 이승우뿐. 난 아내가 추석 선물로 받아온 전병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잠시 스마트폰의 액정을 응시했다. 이 "이승우"가 내가 아는 그 "이승우"라면 무슨 얘기를 하지? 첫인사는?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으려나. 여러 생각이 스쳤다. 서재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받았다. 내가 아는 "이승우"다. 몇 년만이지? 5년? 6년? 어쩌면 십 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잘 살지?" 하고 물었다. "네 엄청 잘 살아요."라고 답한다. 내가 알던 "이승우" 그 자체다.


제자이자 후배

승우는 제자이자 후배다. 모교에서 강의를 할 때 내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그때는 나도 치열하게 공부할 때였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교수들에게 막 새로 배운 지식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쏟아부었다. 게다가 아직 삼십 대였다.


광고홍보학은 특이한 학문이다. 전략적이면서 창의적이고, 계획적이면서 즉흥적이다. 커리큘럼도, 학생도, 강의도 다 그렇다. 난 이 양면을 자유롭게 오가며 강의했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젊었고 체력도 지금보다 더 좋았다. 게다가 머리도 빨리 돌아갔다. 하루에 세 시간 짜리 강의 세 개도 할 수 있었다. 세 시간 강의를 하면서 혹시라도 쉬는 시간을 빼고 강의하면 애들이 힘들어할까 싶어 미리 정해놓은 반장에게 쉬고 싶으면 살짝 손을 들어 표현하라고 했었다.


좋은 시절

승우도 이제 마흔이 넘었다. 내가 오십이 넘은 것처럼.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다. 중견 광고대행사에서 덴츠로 이직한 후 제법 오래 다니다가 한 달 전 KPR로 이직했단다. 덴츠가 어떤 회사인가. 일본에서는 업계의 지위는 물론이고 업무 강도가 너무 세서 일 년에 한두 명 자살하는 직원이 나올 정도로 하드코어 한 회사다.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세계로 그 경쟁 범위를 넓혀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그런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KPR은 또 어떤 회사인가? 한국에서 PR 회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다. 얼추 업력이 삼십 년은 넘지 않았을까? 승우는 현재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다.


"잘 돼서 좋다, 야."

"다 교수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그 공치사... 받아주마."

"아이. 공치사라뇨. 진짭니다."

"알았다. 고맙다."


2007년에서 2014년, 이 사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전력을 다한 시간이었다. 이때가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는지도... 그리고 어쩌면 딸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때 이후는 없었을, 인생의 마지막 절정이었을지도.... 그런데 딸 덕분에 아직도 살아서 쉰이 넘어버렸다. 다른 의미에서 좋은 시절을 살고 있다. 조용하고 평온한.


우연히 나를 본 후

아주 오래전, 다음에 통화하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연락을 하고 싶고, 내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갔고 애를 둘 낳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승우는 대학 졸업 후 나도 잘 아는 대학 동기와 결혼했다. 둘이 너무 안 어울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망설이다 우연히 브런치에서 내 글을 보고 다른 글들까지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승우에게 말했다. 난 이제 가르치는 사람은 안 하고 쓰는 사람을 주로 한다고. 칼럼이 게재되는 사이트도 가르쳐줬다. 그리고 부산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고 했다. "정말요?" 하고 묻기에, "당연하지. 얼마 전엔 몇십 년 만에 대학원 동기도 봤다." 하고 답했다.


끝인사로... 건강하라고 했다. 마흔이 넘어가면 모두를 위한 남자로 살아야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으로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난 주로 이기적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선배이자 스승이라고 제자이자 후배에게 주제넘은 조언을 해주고 말았다. 사진은 어느 해 강의실에서 찍힌 사진이다. 사진의 크기와 화소, 모두 작다.


이 글을 기점으로 매거진의 제목을 살짝 바꿨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오늘의 현장에서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건 마찬가지다. 여기에 이렇게 과거로부터 전해진 이야기를 첨부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