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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y 20. 2023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동해선에서 읽은 책 47

수영이 끝나고 샤워를 한 뒤 물기를 닦아낼 때, 2번 주자 아저씨와 잠시 대화를 했다. "아이고, 폼이 안 좋아서. 접영이 참 힘들어.", 난 그의 고백에 움찔했다. 힘들다는 사람이 무자비한 1번 뒤의 2번 자리를 그렇게 잘 지켜낸다는 건가...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배영도 그렇고. 오늘 스타트 시간에 보니까. 다들 자유형 폼이 다 달라.", 내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죠. 스타트도 다들 조금씩 다르게 하잖아요."


쓰쿠루의 착각, 또는 오만

우린 다 색을 갖고 있다. 색이 없는 사람은 없다. 혹자는 "난 개성이 없어.", "난 있는 듯 없는 듯 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누군가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누군가와 사랑을 했다면 그 이후엔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군가는 당신의 찬란한 색에 반하여 당신에게 모든 걸 주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난, 뭐, 무색무취하지." 하는 말을 입에 올린다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쓰쿠루의 착각, 혹은 오만은 이 지점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사랑했던 친구들과 가족과 연인이 있었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날 왜 사랑한 거야?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 같은 놈이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앞서와 같은 이유로, 이런 질문을 나를 사랑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소설에 나온 표현처럼 우린 자기 자신을 어떤, 꽉 찬 존재로 인식하고 산다. 어떤 덩어리, 질감 있는. 그러나 사랑을 할 때, 우린 비어 있는 존재다. 그런 존재여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


에리가 도자기 굽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핀란드 사람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것처럼... 그리고 그 도자기를 아주 낯선 핀란드 사람에게 파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누군가로 인하여 채워짐으로 나도 모르던 내가 되어 아주 낯선 나로 낯선 공간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 낯선 존재와 낯선 삶이 정말 내가 살아야 했던 삶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 누군가의 채움이 없다면 우린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오만은 저지르지 말길....


그러나 우리가 젊었을 때...

이 주인공들처럼 완벽한 관계와 안온한 일상으로 인해 난 충분히 완성됐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완벽한 세계와 관계의 망과 맥락 속에서 날 떼어내는 걸 두려워한다. 사춘기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목을 매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인지도....


십 대에서 삼십 대 중반까지, 종교와 그 종교 공동체 속에서 나라는 주체의 불안을 잠재웠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 소설 속 다섯 친구가 사랑의 감정이나 열정을 두려워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공동체와 신념 체계를 흔들 수 있다. 아니 심지어 그곳으로부터 날 추방시킬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랑은 그렇게 나를 나로 만들어주던 일상으로부터의 추방인지도 모른다. 유배... 단 둘이 낯선 곳으로....


달리 말하면... 사랑은 그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공동체와 일상의 나와 공간과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변화를 주는 것... 기꺼이 그로부터 격리돼서 새로운 나, 아니 사랑을 만나야지만 발견되는 나를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로

"저기, 쓰쿠루."

"응."

"잘 자. 마음 놓고 푹 자."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화요일, 새벽 네 시. 쓰쿠루는 두 살 연상의 (잠재적) 연인, 사라에게 전화를 해 당신을 원한다는 말을 한다. 수요일에 그녀의 선택, 승낙, 어찌 됐든 그 사랑의 지속 여부가 결정되는 만남을 갖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새벽에 쓰쿠루는 전화를 했다.


이 책의 많은 문장들이 맘에 들지만... 난 이 소설의 거의 막바지에 있는 이 짧은 대화를 읽다가 울컥했다. 불과 몇 년 전, 아니 몇 달 전까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던 여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으로 날 선택해서, 날 사랑하고 안아줬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함께 보냈다. 그 착했던 사람들은 내게 저런 말을 해주곤 했었다. 설거지를 하다 든 생각은 그런 생각이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아침에 쓴 글과 다시 읽고 있던 책을 생각하다가, 그리고 날 사랑했던 연인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이라도 연애를 했다면, 좋은 추억을 갖고 헤어졌다면,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린 자기 자신을 멋있고 예쁘고 능력 있고 성격 좋으며 심지어 섹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사는 것이 한때 나를 선택해서, 나를 사랑했던 그 좋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설거지를 했던 탓일까? 기네스 맥주잔을 깼다. 감독이 일부러 챙겨준 건데


순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날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다니며 물을 필요는 없다. 그때 잘 못해줘서 미안해서, 일일이 찾아다니면 사과하기 위해 순례를 떠날 필요도 없다.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위한 순례는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가 그런 순례를 하지 않는 건.... 그쪽도 그 나름의 견고한 일상을 살고 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그녀"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사족...

0. 이 책을 다시 읽고 정말 궁금한 건 쓰쿠루와 사라가 잘 됐을지, 그 여부가 아니다. 누가 시로에게 그렇게 했을까였다. 누가 시로를 강간했고 결국엔 몇 년 후 죽이기까지 했을까? 친구 중에 고르라면, 소거법으로 해 보면 아오가 남는다. 그랬을까?


1.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느 시점의 하루키다. 그래서 어떤 일을 겪었든, 겪고 있든 견고하게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며 산다. 다림질을 하고 잘 자고 먹고 운동하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 우린 그 일상을 구성하는 자잘한 것들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은 추억의 단서가 된다.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누군가를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힘은 그런 단서들이다. 그녀가 좋아했던 향수, 꽃, 음악, 디저트, 음식, 옷.... 이런 사소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건 객기에 불과하다.


2. 이 책은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을 읽다가 지겨워지면 읽었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뜨거운 사랑에 비하면... 따분한 철학이나 인문학 따위야... 밤에 할 일이 없는 노인네나 이런 독서 따위를 하는 거지... 뭐 그런 생각을.... 독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3. 이 글은 원래 이 글이 써진 전날 밤에 쓰려고 했다. 그러나 5월 19일 밤, 아홉 시 반쯤 정전이 됐다. 여섯 시 이십 분쯤, 트레일러가 동네의 전신주를 들이박았고, 그걸 교체하기로 결정한 한전의 공사가 이때 진행됐기 때문이다. 공지엔 다음 날 아침이나 작업이 완료된다고 했지만 다시 전기가 들어온 건 5월 20일 새벽 두 시 반이었다. 토요일의 일상을 위해 작업자들이 고생한 덕분이다.


4. 이날,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새벽의 날은 결혼기념일이다. 소설 속 주인공 쓰쿠루의 나이 즈음에 결혼해서 쉰이 넘을 때까지, 용케도 버티며 살았다. 예전엔 "나 같은 남자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최근엔 나 정도 되니까 성깔 있는 이 여자랑 같이 살 수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우린 모두... 그나마 서로가 되니까 붙어살고 있는 거다. 그러니 감사를 하고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덕분에 그럭저럭 채워졌으니까.


진짜 마지막 사족...

LA 대정전의 날 많은 아이들이 잉태됐다. 5월 19일, 금요일 밤, 트레일러가 전신주를 들이박은 덕에, 어쩌면 많은 아이들이 잉태됐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렇게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사건과 사람 때문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만.... 그 변화된 내가 진짜 나였는지도 모른다. 보자... 내년 2월이나 3월 생 애들은... 어쩌면 대연동 대정 전의 밤에 잉태된 애들 인지도...


진짜, 진짜 마지막 사족...

블로그를 아무리 들춰봐도 이 책을 언제 읽었는지, 날짜를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구매 목록을 봐도 그렇고... 아마 2013년 여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다시 읽고 리뷰를 쓴 것이다. 아니면 그걸 핑계 삼아 다시 읽은 건지도.... 읽은 책의 리뷰를 꼭 남기진 않지만 남길만한 책을 남기지 않았다는 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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