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즐거운 곳
아내는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그러나 출근 때만큼, 아침부터 부산했죠. 출근 때만큼 공을 들여 화장을 했고, 머리를 만졌습니다. 옷을 신중하게 골랐음을 두말 할 나위도 없죠.
아이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아침을 알차게 챙겨 먹고 한가하게 만화를 봤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되니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더군요. 시계를 볼 줄 아니 이 또한 다행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며칠 전 아이에게 바늘 시계 보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는 당연히 아날로그. 부산역이나 사상 터미널이 아닌 이상 디지털시계를 벽에 걸어 놓는 집이 없듯이 저희 집도 두 개의 벽시계 모두 아날로그입니다. 시계를 올려다보면서 아이는 시간의 진행을 궁금해 했고 시계 보는 법을 물었습니다.
전 그냥 대충 알려줬죠.
“1에서 12까지 숫자와 숫자 사이가 오 분이야. 천천히 가는 작은 바늘은 몇 시를 알려주는 거고.”
아이는 그때부터 열심히 더하기를 해서 지금이 몇 시 몇 분인지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전 일부러 “여섯시 삼십 분에 게임 한판 하자.”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한 집에 있으면서 말이죠.
그러자 아이는 만화를 보다가도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버릇이 예비 소집일에도 발휘가 됐고 아홉시가 넘어가자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나도 따라가야 하나 싶어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나도 씻고 같이 가? 좀 오반 가?”
아내는 머리에 잔뜩 헤어 롤을 만 채 웃으며 “좀 그렇지? 나랑 은채만 갔다 올게.”라고 말하더군요.
아내는 취학 통지서와 학교에서 작성해 오라는 자잘한 서류들을 챙겼습니다.
서류라고 해 봐야 아이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체크하는 종이 한 장 뿐이지만 어찌됐든 주민 센터에서 보내 온 서류 봉투에 잘 넣어서 아이의 실내화 주머니에 넣어 갔습니다.
보내 놓고 한참을 일 하는데 왠지 오래 걸린다는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한 시간은 걸리나 보다 하고 다시 일을 하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 있나 싶어 전화를 해보려던 찰나에 두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뭐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라도 들은 거야?”
내가 80년대 초등학교를 떠 올리며 물었더니 아내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아니 금방 끝났어. 끝나고 은채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랑 인사도 좀 하고 지유 엄마랑 차 한잔 하고, 애 접종 시키고 왔어.”
말을 들어보니 아이 실체 확인만 하고 보내더랍니다.
그러니까 예비 소집일은 아이를 꼭 데리고 가야 합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16년 원영이 사건 이후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애 예비 소집일에 부모만 가는 것도 이상하다 싶습니다. 학교를 구경하고 분위기를 익히고 같이 공부할 친구 얼굴을 대충이라도 봐야 할 사람은 어린이 당사자인데 당사자 없는 예비 소집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비 소집일은 초등학교 생활의 전주곡입니다.
학교가 어디인지 모르는 애들은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 보면서 집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도 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학교를 먼저 보며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마음 다짐을 할 수도 있죠.
또 부모 입장에서도 동네 주민으로서 이미 잘 알던 초등학교라 하더라도 학부모로서는 첫 번째 행사이고, 동료 학부형과의 첫 대면의 자리이니 나름 첫인상을 형성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유치원과 어린이집 동문들을 새삼 만나 진학 이후 관계를 공고히 유지해 나가자고 결의(?)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이런 자리에 따라 가지 못해서 내심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 말에 의하면 아빠까지 온 집은 거의 없고, 아빠하고만 온 아이는 한명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빠들이 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없는 걸 이때부터 당연시 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잘 해야 아이 체육대회 때나 얼굴을 내밀고 말이죠. 그 후엔 정형외과를 전전하면서 말이죠.
<투모로우>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도서관의 벽난로 앞에서 남몰래 좋아했던 여자 친구가 주인공에게 아빠와 함께 했던 가장 좋은 추억을 얘기해 달라고 하죠. 그때 주인공 소년은 북극 연구에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쇄빙선이 고장 나서 북극해 한가운데서 아빠와 단둘이 지낸 며칠이 가장 소중한 기억이라고 했습니다. 하얗기만 한 북극의 풍경과 추위 속에서도, 탐험을 위해 지어져서 아무런 위락 시설도 없는 커다란 쇄빙선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이는 항상 연구와 현지 조사를 위해 바빴던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었던 것이죠.
지나가면 다시 못 올 날들입니다.
예비 소집일에는 가지 못했지만 입학식 이후 많은 의미 있는 날들은 최선을 다해 참석해야지 다짐 했습니다. 아빠가 없는 초등학교 1학년 사진이 더 많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