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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y 31. 2023

감각의 제국 ; 라캉으로 영화 읽기 - 권택영

동해선에서 읽은 책 49

영화에 대한 칼럼을 쓰게 됐다는 핑계로 영화에 관한 책을 두 권 샀는데, 이 책은 그중 한 권이다. 영화에 관한 책이 아니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영화와 라캉, 프로이트를 통해 인생의 비밀을 말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자기개발인지, 계발인지를 위해 읽어야 될 책과 이론이 있다면 실존주의와 라캉/프로이트의 이론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한다. 새벽에 일어나기, 매일 감사하기, 하루 한번 일기 쓰기, 영어 공부하기... 기타 등등 자기를 발전시키고 개조하기 위한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론 자기 자신을 아는데서 출발하고 그 출발에 이은 실천과 행동의 누적으로 내가 상상하는 내가 그나마 만들어질 테니까.


"살인을 숨기기 위하여 벽 속에 아내의 시체를 감추었지만 그 속에서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매끄럽게 잘 발라진 벽이었지만 그 속에는 검은 고양이가 숨어 있었다.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문명이 억압한 본능은 지울 수가 없다." <감각의 제국 : 라캉으로 영화 읽기>, 권택영, 77.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에 숨은 뜻 중 하나였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던 소설의 새 이면을 알았다. 그렇다. 멀쩡히 포장된 아스팔트 밑에 저 끝 모를 싱크홀이 잠재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다.


"베일을 벗겼다가 얼른 다시 씌우는 것, 그것이 삶이다." <감각의 제국-라캉으로 영화 읽기>, 권택영, 114.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속은 척하고 살아가는 것은 베일 때문이다. 벗겨봐야 별 거 없는 걸 알지만 세상에 어디 베일이 한 두 개이던가. 이번 베일 뒤에는 진짜 뭐가 있겠지 하며 사는 거다. 이게 정신 분석의 윤리라는 것일지도.


실재는 별거 없고, 상상은 상징으로 완전히 구현될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렇게 자신의 환상을 가로질러 내가 그렇게 벗겨보려 했던 베일이 별 것 아닌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할 만 것으로 승화시켜 내며 사는 것. 그것이 죽음의 평안함을 뿌리치고 이 팍팍한 삶을 살아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말 아닐까?


"연인은 언제나 누군가의 반복이다." <감각의 제국>


그래서... 내가 취한 욕망의 결과도, 사랑도 사실은 비슷한 베일의 욕망이라는 걸... 오영수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처럼 그 꽃을 꺾어 온들 뭐 하겠나, 하며 두고 오게 되는 것. 이쯤 돼야 우린 좀 편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어디 그렇게 그 단계까지 도가 트는 게 쉽던가? 다들 그렇게 도가 트이면... 세상이 이렇지도 않겠지.


책을 읽으면서.. 애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아직 보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슬퍼해야 할 것들인데 슬퍼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뒤돌아 서서 일상을 살아내고, 카피를 쓰고, 책을 읽었다. 그래... 그렇게 쉽게 보내주면 안 되는 것들이었기에 이렇게 응어리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슬퍼해야 할 것은 슬퍼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야 참 글 잘 쓴다."하고 감탄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 문학이든, 인문학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글들은 대체로 그 사람을 궁금케 한다. 이렇게 어려운 걸 쉽고 간결하게, 심지어 멋있게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희한한 이야기를 이런 문장으로 쓰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김훈이 그랬고, 파울로 코엘료나 폴 오스터, 하루키도 그랬다. 최근엔 백상현과 사사키 아타루, 지바 마사야, 우치다 타츠루가 그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욕심과 질투가 생긴다. 나이와 성별, 국경을 막론하고 존경과 사모의 마음을 갖게 된다. 요즘 권택영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을 갖게 됐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검색을 해봤더니... 여자였다. 명예교수였고... 난 남자인 줄 알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저번에 <동사의 맛>인가를 읽을 때도 그랬는데...


사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샀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읽었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쉽게 말하면서도 그 본질을 흐트러뜨리지도 않고, 품위도 잃지 않는다. 비유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짧은 문장 안에 주제를 함축한다.


책날개에 있는 그의 저작들은 대체로 학술서인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해서 더 검색해 봤더니 십 대 시절 좋아했던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의 민음사 판본을 번역했다. 아하... 번역도 하시는구나... 알게 되자.. 감탄하며 표시해 둔 문장의 역사가 이해 됐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난 아직도 글의 군살과 싸우는 중이구나 실감한다. 다이어트할 글의 군살들... 이런 글을 쓰는 건... 잊어버릴까 봐.. 지금의 이 감탄을, 이 반성을. (2021.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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