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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n 07. 2023

생각의 속임수 - 권택영

동해선에서 읽은 책 51

신념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중

이번 선거 기간에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페친의 글을 자주 봤다. 그것은 내 이해의 영역 밖이었다. 난 서른 다섯 이후로 이렇다 할 신념이랄 것이 없다. 그전까지는 종교라는 것이 있었다. 이후엔... 권택영의 말을 빌리면, 파충류의 뇌와 인간의 문명의 뇌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나를 찾는 것이 내 신념이라면 신념이었다. 


예전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종종 어른들은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하고 책망했다. 사람만이 그렇게 동물적인 본능 이상의 것을 한다. 이 책엔 그 양극단을 오가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양극단을 뇌 안에 고스란히 갖고 사는 인간과 그 인간의 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회상, 언어, 사랑

"감각은 언제나 언어의 등 뒤에 붙어, 사랑에 빠졌을 때는 몸집을 불리고 사랑이 끝나면 몸집을 줄인다.", <생각의 속임수>, P18.


말은 잔여를 남긴다. 한 때, 딱 맞는 단어를 카피에 넣기 위해 괴로워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건 치기다. 상품과 시장, 시대와 사회, 고객에게 딱 맞는 단어만 존재할 뿐. 그 이후로 어떤 단어를 쓸 것인가 보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를 더 생각했다. 이 이후, 우리가 한 홍보 영상과 광고에는 말장난보다 굵은 이야기의 줄기가 들어가 있다. 물론 단어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지만 그 말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속에 제대로 배치되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고백을 해봐야 마음을 다 전달할 수 없다. 그 도달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이기고, 잘도 고백하며 살아왔다. 애초에 잃을 것이 없던 청춘이라 이 사랑을 놓치기까지 하면 내 청춘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 투박한 말들은 용케도 내 진심을 전해줬다. 


물론 종종 내가 육체의 열정과 마음의 사랑을 혼돈하는 건 아니었나... 자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 그리고 라캉과 이렇게 권택영의 책을 읽다 보니... 마음과 육체의 열정은 단팥빵의 겉과 속처럼 떼어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플라토닉 사랑 같은 건... 개뿔...


지킬/하이드, 배트맨/조커

"사랑은 숭고한 짐승이다.", P21.

"인간은 짐승이면서 동시에 신성하다.", P329.


그렇다. 인간은 짐승이면서 신성을 갖고 있고, 인간이 하는 사랑도 그러하다. 우리는, 권택영의 말을 빌리면, 파충류의 뇌라는 씨와 포유류의 뇌라는 과즙, 그리고 인간의 의식이라는 아주 두터운 겉껍질을 갖고 살고 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산다. 공부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놀고 싶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여비서의 엉덩이를 만진다. 고상한 척하는 외면 안에는 동물의 본능이 지구의 핵처럼 불타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그 모든 본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 철학, 종교를 지키기 위해 동물적 본능, 예를 들어 폭력, 성욕, 육욕, 명예욕, 물욕 등을 억제하는 사람에게 우린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동물적 본능을 이기지 못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가 받는 배신감 또한 상당할 수밖에 없고...


한 15년 전인가? 존 에드워즈라는 상원의원이 있었다.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였다. 아내가 암에 걸린 상태에서 함께 유세를 했고 대외적으로 금슬도 좋았다. 그러나 혼외정사, 그러니까 쉽게 말해 불륜을, 그것도 아내가 암투병을 하던 기간에 그랬다는 것이 밝혀져서 후보를 사퇴해야 했다.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오십 대 초반. 사실 난 그의 팬이었다. 잘하면 존 F 케네디의 부활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의 별명 자체가 미스터 호감맨(Favorable)이었다. 


우리도 몇 해전 그런 비슷한 일을 겪었다. 윤창중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때문에 올 부산 기초단체장은 다 국민의힘이다. 진보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컸었던 모양이다. 교육감까지 바뀐 거 보면... 부산 사람들의 배신감은 그렇게 컸다.  "아니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어."라고 화를 내는 건, "난 그렇게 살 수 없지만 당신만은 그렇게 살기 바랐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기에 존경했었는데 왜 당신도 나와 별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주느냐"... 뭐 그런 분노의 표현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내가 쉰 줄에 접어들고... 이런 책을 읽다 보니 사람 참 별거 없구나.. 그놈이 그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더 대단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소위 더 문명화되고 이성적으로 되고 더 세련되어지는 것이니까...


곱씹을 문장들...

좋은 문장들, 생각해 볼 여지들, 인용한 문학작품과 이론들이 워낙 많아 여기에 다 소개할 수는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나중에 내가 써먹을 거니까.... 험난한 봄을 보내며 이런저런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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