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un 13.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동해선에서 읽은 책 53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P57


아내가 이 책을 집에 들고 온 건 일주일 전쯤이었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대부분의 알라딘 중고서점에 최소 한 권, 많으면 서너 권이 꽂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팔았다는 것. 책의 내용도 몰랐고, 그래서 흥미도 없었는 데다가, 법정 스님의 불교 교리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서 며칠 전에야 펼쳐 봤다. 이 책을 읽는 순서로는 나-딸-아내 순이 적합할 것 같아서.. 여하간 내가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이상한 과학자에 관한 이야기인 줄...

-난 사실 이 책이 세상엔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려는, 어떤 광적인 과학자의 "소설"인 줄 알았다. 아내에게 책을 받아 들고 나서야 이 책이 "논픽션"인 걸 알았다. 그때서야 조금 흥미가 당겼다. 자... 그럼 실존했던 어느 미친 과학자에 대해 읽어볼까? 이런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나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이야기가 교차된다. 작가와 과학자의 이야기가... 엄밀히 말하면 작가가 과학자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 추적을 통해 저 아버지의 대답 뒤에 이어진, 그리고 여러 사건들로 인해 마주한 삶의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여보, 일단 150페이지까지 참고 읽어..

-다 읽고 나서 정확히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까지 계보학자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물고기에 집착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 그가 불행을 극복해 낸 휴먼 스토리.... 그러나 딱 저 정도의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 "응? 얘기가 이렇게 흘러간다고? 스탠퍼드 대학의 학장이었던 양반이... 거기에 동상이 있는 양반이 이런 인간이었다고?" 하는 질문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이나 법정스릴러, <돌로레스 크레이븐> 같은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문장이 마지막에 쏟아진다.

-메리와 애나의 이야기에서부터 서사는 절정으로 간다. 문장은 르포르타주의 느낌에서 내밀한 에세이로 변화해 간다. 추적은 멈추고 사유가 시작된 뒤 인생의 비밀과 만난다.


혼돈, 인생의 모퉁이

-우리는 민들레다. 아니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 존재다. 나와 내 인생은 작고 무의미 하지만 동시에 크고 의미심장하다.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딸이 처음 만들어준 모조 플라스틱 보석으로 만든 팔찌를 소중하게 차고 다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는 내게 있어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다.


-주인공은, 그러니까 작가는 결국 자신을 만난다.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새로운 인생을 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과 만남이었다. 모퉁이를 돌기 전까진 거기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지 않나? 작가의 큰 언니도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직업을 찾았고, 아버지와도 의외의 방법으로 화해하고 친해졌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적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ruler 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P268


새로운 나, 인생, 그리고 그대를 만나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저 문장에 그 과제의 힌트가 들어 있다. 자기와 타자, 우리와 저들을 가르고 가둬 뒀던 그 "범주"와 "척도"들에 대해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한계부터 의심하자. 그것부터 우선 시작해야 한다.


사족...

-며칠 전, 수영 클래스가 끝난 후 마무리로 자유형을 했다.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최대한 무호흡으로 가보자 생각하고 무심히, 느린 템포로 물을 가르기 시작했다. 가다 보니 끝까지 다다랐다. 25m를 무호흡으로.. 그러니까 수영장 바닥만 보고 간 것이다. 처음이었다.


혹독한 강사와 함께, 알게 모르게 체력이 좋아진 모양이다. 무호흡 수영을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네 번이나 다섯 번 스트로크를 하고 숨을 쉬어야지 하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놨다면 아마 지금도 몰랐을 것이다. 강사는 이번 주부터 드릴 훈련(수영 테크닉 훈련)을 줄이고 본격적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응? 그럼 지난 몇 달 동안 한 건 뭐였어? 아.. 이제 정말 술을 확 줄여야 하나 보다... 덕분에 책은 많이 읽겠네.


마지막 사족...

출판사가 낯설다... 그런데 이런 책을 번역해 내고... 다들 정말 전력을 다하는구나... 싶다.


진짜, 진짜 마지막 사족..

후반부의 반전과 스릴러를 만끽하시라고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했다. 2023.0612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로 숨 쉬는 법 ; 김진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