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P57
아내가 이 책을 집에 들고 온 건 일주일 전쯤이었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대부분의 알라딘 중고서점에 최소 한 권, 많으면 서너 권이 꽂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팔았다는 것. 책의 내용도 몰랐고, 그래서 흥미도 없었는 데다가, 법정 스님의 불교 교리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서 며칠 전에야 펼쳐 봤다. 이 책을 읽는 순서로는 나-딸-아내 순이 적합할 것 같아서.. 여하간 내가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이상한 과학자에 관한 이야기인 줄...
-난 사실 이 책이 세상엔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려는, 어떤 광적인 과학자의 "소설"인 줄 알았다. 아내에게 책을 받아 들고 나서야 이 책이 "논픽션"인 걸 알았다. 그때서야 조금 흥미가 당겼다. 자... 그럼 실존했던 어느 미친 과학자에 대해 읽어볼까? 이런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나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이야기가 교차된다. 작가와 과학자의 이야기가... 엄밀히 말하면 작가가 과학자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 추적을 통해 저 아버지의 대답 뒤에 이어진, 그리고 여러 사건들로 인해 마주한 삶의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여보, 일단 150페이지까지 참고 읽어..
-다 읽고 나서 정확히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까지 계보학자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물고기에 집착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 그가 불행을 극복해 낸 휴먼 스토리.... 그러나 딱 저 정도의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 "응? 얘기가 이렇게 흘러간다고? 스탠퍼드 대학의 학장이었던 양반이... 거기에 동상이 있는 양반이 이런 인간이었다고?" 하는 질문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이나 법정스릴러, <돌로레스 크레이븐> 같은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문장이 마지막에 쏟아진다.
-메리와 애나의 이야기에서부터 서사는 절정으로 간다. 문장은 르포르타주의 느낌에서 내밀한 에세이로 변화해 간다. 추적은 멈추고 사유가 시작된 뒤 인생의 비밀과 만난다.
혼돈, 인생의 모퉁이
-우리는 민들레다. 아니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 존재다. 나와 내 인생은 작고 무의미 하지만 동시에 크고 의미심장하다.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딸이 처음 만들어준 모조 플라스틱 보석으로 만든 팔찌를 소중하게 차고 다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는 내게 있어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다.
-주인공은, 그러니까 작가는 결국 자신을 만난다.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새로운 인생을 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과 만남이었다. 모퉁이를 돌기 전까진 거기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지 않나? 작가의 큰 언니도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직업을 찾았고, 아버지와도 의외의 방법으로 화해하고 친해졌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적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ruler 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P268
새로운 나, 인생, 그리고 그대를 만나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저 문장에 그 과제의 힌트가 들어 있다. 자기와 타자, 우리와 저들을 가르고 가둬 뒀던 그 "범주"와 "척도"들에 대해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한계부터 의심하자. 그것부터 우선 시작해야 한다.
사족...
-며칠 전, 수영 클래스가 끝난 후 마무리로 자유형을 했다.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최대한 무호흡으로 가보자 생각하고 무심히, 느린 템포로 물을 가르기 시작했다. 가다 보니 끝까지 다다랐다. 25m를 무호흡으로.. 그러니까 수영장 바닥만 보고 간 것이다. 처음이었다.
혹독한 강사와 함께, 알게 모르게 체력이 좋아진 모양이다. 무호흡 수영을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네 번이나 다섯 번 스트로크를 하고 숨을 쉬어야지 하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놨다면 아마 지금도 몰랐을 것이다. 강사는 이번 주부터 드릴 훈련(수영 테크닉 훈련)을 줄이고 본격적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응? 그럼 지난 몇 달 동안 한 건 뭐였어? 아.. 이제 정말 술을 확 줄여야 하나 보다... 덕분에 책은 많이 읽겠네.
마지막 사족...
출판사가 낯설다... 그런데 이런 책을 번역해 내고... 다들 정말 전력을 다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