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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Aug 31. 2023

언제나 더 중요한 건 있다.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25

어떤 미친놈

습관적으로, 아침 여덟 시 반쯤이면 내가 갈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알라딘 중고 서점에 새로 들어온 책들을 확인한다. 무슨 주식 시황 확인하듯이 말이다. 보통은 가장 가까운 경성대/부경대점을 시작으로 센텀점-서면점-울산점 순으로 확인한다. 확인하는 이유는 뭐, 크게 두 가지인데 요즘 어떤 책이 잘 팔리고 유행인가를 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나 저자의 책이 들어왔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당연히 후자의 목적이 더 크다.


물론 내가 관심 있어하는 책이 들어왔다고 당장 바로 나가서 사 오거나 하진 않는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책도 있고 울산점 같은 경우엔 작업실에 출근하는 김에 들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책은 나 외에 다른 사람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책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가끔은 어떤 책이 얼마나 오래 안 팔리고 버티는지를 눈여겨볼 때가 있다.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울산점에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들어왔는데 아직 안 팔렸다. 아, 난 있다. 읽었다는 말이 아니다. 있다는 거다. 여하간 이 책이 얼마 만에 팔릴지 지켜보고 있다.      


어제도 그러고 있는데 집이랑 가장 가까운 경성대/부경대점에 들뢰즈의 책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순간 "어떤 미친놈이, 오늘이 내 생일인 줄 알고 이렇게 선물을 넣어 놓으셨나."하고 중얼거렸다. 문제는 이 서점이 여는 시간이 내 수영 시간과 겹치는 열한 시라는 것이다. 수영이 없는 주말의 경우, 맘에 드는 책이 들어와 있으면 요즘 친구들 말로 오픈런, 그야말로 셔터가 올라가기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평일에는 당연히 수영이 더 중요한지라 수영을 하고 가기로 했다. 솔직히 "뭐, 판 놈하고 살 놈, 이 두 놈 말고, 우리 동네에 들뢰즈를 좋아하는 미친놈이 또 있진 않겠지." 하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강사가 내 생일을 알고 있나?

수요일은 핀 수영을 하는 날이다. 다 하고 계산해 보니 대략 1천6백 정도를 돌았다. 메인 세트는 접영 25m, 30개. 처음엔 잘 못 들은 줄 알았는데 맞더라. 숫자가 너무 터무니없었는지 1번도 잘못 듣고 여덟 개만 하고 잠시 쉬었을 정도다. 강사가 숫자를 말했을 때, 슬쩍 시계를 봤는데, 설마 시간 안에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다 하고 나서도 몇 분이 남았다. 생일 기념으로 생각하고, ‘아이고. 고맙습니다.’     


역시

작은 풀에서 열을 식히는 마무리 운동도 하지 않았다. 강사의 "오늘은 여기까지" 말이 끝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나왔다. 몸의 열기가 빠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점으로 직행. 집을 나서기 전 찍어 놓은 스크린 샷에 의지해 망설이 없이 서가로 갔다. 다행히 다 있었다. 그렇다. 경성대/부경대 지점 인근에서 낮 열두 시에 들뢰즈의 책을 사러 올만한 미친놈은 두 명 정도였다.


집에 있고 이미 읽은 <감각의 논리>와 <들뢰즈의 철학>은 놔두고 나머지 걸 챙겨 집었다. 이후 이정우 선생님의 책을 찾았다. 서가 번호가 독특해서 가 보니 대학교재 코너다. 아니 이 책이 왜 이 코너에 있는 거지, 잠시 생각해 보니 이정우 선생님이 철학 아카데미에서 진행한 강연을 옮겨 놓은 책이라 직원들이 이렇게 분류를 해놓은 모양이다.


제법 괜찮은 생일

생각해 보니, 음... 제법 괜찮은 생일 선물이다. 원래 들뢰즈를 다 읽어 제켜버리겠다는 결심이나 다짐 같은 건 없었다. 이정우 선생님을 비롯해서 내가 읽은 여러 책에 들뢰즈가 하도 빈번하게 등장해서 '그래, 뭐, 들뢰즈도 읽어봐야 되려나? 뭐 천천히 읽지. 동네 중고서점에 들어오면 한번 사 보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의 어떤 미친놈이 얼마 전부터 자꾸 들뢰즈나 들뢰즈에 관한 책을 내다팔아서 나도 덩달아 사 들이고 있다. 덕분에 나중에 읽으리라는 계획과는 상관없이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말이다. 누가 이렇게 열심히 팔아대는지 얼굴이 궁금하다.      


두 장소의 초조함

아마 한 십 년 전이었다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했을 것이다. 서점이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얼른 책을 사서 나온 뒤 건너편에 있는 수영장으로 최대한 빨리 달려가서 십 분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고 수영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양쪽에서 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오늘만이라도 1,2분 일찍 문을 열어주지 하는 생각을 했을 테고, 제시간에 문을 연 직원은 아무 잘 못도 없이 내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책을 골라 결제를 하는 내내 초조했을 것이다. 아, 되도록 몸 풀기 개인 혼영 두 세트가 끝나기 전에는 들어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수영장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 마음이지 않았을까? 오늘따라 수건과 라커 열쇠를 건네주는 데스크 직원의 손이 느려 보이고 라커의 열쇠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오늘따라 체조도 빨리 끝나서 몸 풀기도 벌써 끝났다는 걸 확인하며 약간은 초조함을 느꼈을 것이다. 풀리지 않은 몸으로 핀 수영을 소화해 내면서 종아리와 발가락에 경련이 왔을지도 모른다. 결국 원하는 책도 샀고, 수영도 했지만 그 책을 사는 과정의 즐거움도, 작은 풀에서 하는 혼자만의 체조로 시작하는, 그래서 몸에게는 운동을 주지만 마음에는 평안을 줬던 완벽한 한 시간의 수영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를 향한 마음

이거 아니면 안 돼, 지금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을 좀 내려놓았으면 한다. 많은 스포츠 동호인들이 이 두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좋아하는 스포츠를 중간에 그만두곤 한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지 못해서 부상을 당하거나 같이 사는 사람을 질리게 해서 말이다. 인생엔 배드민턴이나 축구, 야구, 농구, 탁구, 마라톤, 사이클, 스포츠 클라이밍과 철인 3종 경기, 그리고 수영보다 중요한 게 있다. 아니 많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한 5,6년 전 일이다. 리투아니아 프로농구 리그의 잘기리스라는 팀이 플레이오프 준결승에 진출했다. 2차전을 3점 차로 애석하게 졌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 기자가 감독인 사루나스 야시케비시우스에게 물었다. “팀의 에이스인 아우구스토 리마가 아내 출산 때문에 결장해서 졌다고 봅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 에이스에게 휴가를 주는 것이 맞습니까?”, 감독이 답했다. “내가 다녀오라고 했어요. 기자 양반, 애가 있습니까? 애를 키워보면 내가 오늘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될 거요. 인생엔 말이야. 농구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자기 자식이 태어나는 걸 보는 건 인생의 최고의 순간입니다. 아이의 탄생만큼 경이로운 경험은 없습니다.”, 에이스는 돌아와서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팀을 NBA 우승으로 이끈 니콜라 요키치도 얼마 전에 비슷한 말을 했다. “농구는 내가 잘하는 거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인 카일리 어빙도 자신의 SNS에 “삶의 의미는 농구공이 림을 가르는 것에서 찾아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메시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사우디의 거대 자본을 뿌리치고 - 물론 엄청나게 돈을 벌어놨지만 - 마이애미로 향했고 그곳에서 축구의 낭만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저번 시즌, AC 밀란과 동행을 결심하고 후배들의 연봉과 팀의 재정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연봉을 자진 삭감하기도 했다.      


절대적 가치와 인생의 선택 사이

인생엔 언제나 A보다 중요한 B가 있다. A가 사람이든, 돈이든, 직업이나 직장이든, 커리어든, 결혼과 가정과 아이이든 간에 말이다. 당신이 삶의 최우선 가치를 무엇에, 어디에 두고 있던지 간에 그것 하나만으로는 삶의 의미만들 수 없다.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초콜릿과 우연한 역사적 사건들의 연쇄처럼 언제, 어떻게, 무엇이 내 인생을 변하게 할지 모른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언제, 무엇으로부터 찾아질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이 언제, 어떻게 어우러져 내 삶의 의미를 만들지도 모르고.


솔직히 말해서, 나 또한 불과 십몇 년 전만 해도 열두 살짜리 소녀가 내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될지는 몰랐다. 그러니 어디 가서 “난 애 별로 안 좋아해.”라는 장담 같은 건 하지 마라. 또는 “아우, 난 결혼 안 해도 돼.”나 “야, 난 남자(여자) 없이 살 거야.”같은 말도 말이다.       


그럼 어떻게 살라는 건가, 하는 질문을 내게 하고 싶을 것이다. 굳이 그 대답을 내게 듣겠다면 뭐, 난 이렇게 대답해 줄 수밖에 없다. 지금 아니면 안 돼, 하는 마음가짐과 다음에 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 사이, 어딘가에서 합의점을 찾아 살라는 것이다. 이거 없으면 안 돼, 하는 마음과 이거 없으면 저걸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라는 것이다.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마음과 너 없어도 난 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 그 사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앞서 다른 글에서 썼듯이, 솔직히 딸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까 딸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내? 아내는... 음... 나름 합의점과 균형점을 찾아 살고 있다. 자세한 건 묻지 마라. 오늘은 여기까지.     


사족 - 들뢰즈를 읽는 이유

종종 사람들이, 심지어 나랑 오래 산 마누라도 "아니 당신은 그런 걸 왜 읽어?"하고 묻곤 하는데, 내 대답은 한결같다. "재미있어." 그렇다. 재미가 없는 책을 누가 읽겠나? 흥미롭고 나랑 생각이 비슷하고, 뭐 그러니까 들뢰즈든 뭐든 읽는 것이다.  재미도 없는 지루한 예술 영화를 졸음을 쫓아가며 볼 나이는 지났다.

 

사족 - 공공의 적

요즘엔 들뢰즈의 꼼꼼한 번역가이자 심지어 시인이기까지 한 서동욱 교수의 책을 읽고 있다. 이런 사람은 사실 공공의 적이다. 아는 것도 많은데 글도 잘 쓰고 번역도 잘하고. 다행인 건 나보다 잘 생긴 것 같진 않다. 서동욱 교수님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면, 뭐 메시지를 보내시던가. 참고로 서동욱 교수님은 나보다 서너 살 많으시다. 아, 참고로 알라딘 울산점에 서동욱 교수님의 책이 한 권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 보시길.    

사족 - 음력 7월 백중

내 생일이다. 이 날은 달이 희고 크다. 절도 바쁘다. 석가탄신일과 쌍벽을 이루는 불교의 큰 날. 여자를 안 좋아했다면 스님이 됐을... 그만하자. 여하간 이 날만큼은 다들 희고 둥근달을 보시면서 나보다 먼저 죽은 이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나보다 나중에 죽을 이를 위해선 그 사는 날 동안의 안녕과 건강을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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