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음악이 나에 음악과 만날 때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48

by 최영훈

우리가 고른 노래

일요일 저녁, 딸은 숙제 하나를 해야 했다. 숙제라고 할 것까진 없고... 뭐랄까.. 가벼운 과제? 그게 그건가? 선생님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필사해 오라고 했다. 괜찮은 숙제다.


여덟 시, 딸은 "무슨 노래를 하지?" 하고 뒤늦게 <사랑의 불시착>을 몰아서 보고 있는 엄마와 서동욱의 <차이와 타자> 중 난해한 한 챕터를 힘겹게 통과하다 잠시 물 마시러 나온 아빠에게 동시에 물었다. "어이, 딸,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같은 거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진짜 아빠 뭐 하시는지 물어본다."하고 농담을 했다. 요즘 딸은 삼촌이 건네준 파일을 통해 옛 팝송을 듣고 있다. 그러자 딸은 "진짜, 폼 나게 팝송을 할까?" 하며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를 말했다. 난, "너 4학년때인가, 학예회 때 했던 <위대한 쇼맨>의 그 노래도 가사 좋을걸?", "아, this is me?", 그렇게 순식간에 여러 노래가 언급됐다.


아내가 잠시 제이슨 므라즈의 가사를 검색해서 보다가 불쑥 "아빠가 들을 때마다 너 생각난다는 노래 어때?" 하며 노래 하나를 추천했다. 셋 다 멜로디는 아는 데 가수도, 가사도 생각 안 나는 와중, 아내가 찾았다. 김상진의 <너를 선택한다.>. 분류를 하자면 CCM이지만 화자를 아빠나 엄마, 애인으로 해도 무방한 노래다.


잠시 후, 딸이 이 노래를 듣다가 또 울었다. 딸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운다. 가사도 가사지만 아빠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자신을 생각한다는 사실에 더 울컥한다고... 결국 <this is me>와 <너를 선택한다.>가 결정됐다.


넓어지는 음악 세상

아침 등굣길, 아이브와 제로베이스원의 새 음반 출시가 화제에 올랐다. 요즘 아이돌은 같은 내용의 음반을 표지와 안의 사진 등을 바꿔서 여러 에디션으로 출시한다. 동네서점 에디션이니, 크리스마스 에디션이니 해서 내용은 그대로인 책을 표지만 바꿔가며 내는 신간처럼 말이다.


딸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과 오빠, 언니들의 스타일을 고려해 어떤 앨범을 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들을 수도 없는 앨범을 여러 장 사는 건 낭비이니 말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막 조각 공원으로 접어들 때였다. 내가 불쑥 말했다. "너 때문에 CD플레이어를 하나 사야겠다. 아빠도 다시 CD로 음악 좀 듣게...", "아 그래?"...


잠시 후, 딸이 "아빠, 난 요즘 Giveon의 <heartbreak anniversary>에 꽂혔어."하고 말했다. 얼마 전 내가 우연히 듣고 딸에게 권해줬다. "그 친구 스타일이 아빠가 한참 흑인 음악 듣던 90년대 말의 스타일이야", 잠시 후 또 딸이 "아, 나 그 노래도 좋더라. 그 뭐지, <호텔 캘리포니아>인가?", "아, 이글스의 노래. 좋지.", 삼촌이 준 <배철수의 음악 캠프 선정 팝송 100곡>을 열심히 들은 효과다.


내가 그랬다. "보자. 그 노래가 말이야. 록 음악에는 1절과 2절 사이에, 기타 간주 같은 게 있거든, 또는 전주나 후주에도... 그걸 기타 리프라고 해... 그 노래가 기타 리프가 좋은 록 음악 100선에는 당연히 들어가는 노래야. 50선? 당연히 들어가지... 20선... 그것도 당연히.. 아빠 생각에는 아마 베스트 10에도 들어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후 후주의 기타 리프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음악의 궤적

내가 처음 팝 음악을 들었을 때도 딱 은채만 할 때였다. 옆집에 살 던 이모를 통해서였다. 그때 들은 음악들은 사이먼 앤 가펑클, 비틀스, 엘비스 플레슬리 같은 그야말로 올드 팝이었다. 그러다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 동시대의 팝과 가요로 넘어왔고... <전영혁의 음악세계> 같은 심야 라디오를 통해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록도 들었다. <방코>나 <뉴트롤스> 같은...


그 뒤 대학에 가서 재즈와 얼터너티브 록을 열심히 듣다가 카피라이터를 하기 시작한 21세기부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린킨파크>와 같은 뉴메탈, 또는 헤비메탈을 엄청 들었다.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다프트 펑크>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도 정말 많이 들었고... 이 여정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누가 권해준 사람도 없고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다.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들리는 대로 들었다.


요즘 딸의 음악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CD 플레이어가 있으면 아빠가 숨겨 놓은 CD를 꺼내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좋은 일 생기면 하나 사보자고... 말을 꺼냈다. 일단은 엄마부터 설득하자고....


사족...

딸의 등하굣길... 금목서와 은목서가 한창이다. 금목서의 향기는 화려하고 덮쳐오지만 은목서의 향기는 그 향기를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가장 향이 진한 이유다.


얼마 전 방코와 뉴트롤즈를 다시 들어 봤다. 젊었을 땐 이 난해한걸 용케도 참고 들었구나 싶었다. 그땐 이런 걸 들으면서 "가오"를 잡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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