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요즘 입시와 관련된 콘텐츠를 종종 본다. 주로 미미미누의 채널을 즐겨 보는데 이 친구는 5수 끝에 고려대에 간 청년인데 내가 봐도 재치 있고 부지런하다. 엄마하고는 EBS와 다른 채널에서 하는 입시 관련 방송도 보는데 대체로 무모한 사교육의 문제점을 논하거나 문해력에 관한 프로그램, 또는 성적이 안 좋은 애들의 성적을 단숨에 바꿔주는 일타 강사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다.
이런 콘텐츠를 어깨너머로 보다 보면 요즘 입시는 정보와 돈, 부모의 열성(극성), 그리고 자녀의 엄청난 노력이 어우러져야 성공의 싹이 그나마 보이는 것 같다. 혼자서 이리저리들이박으며 이 대학, 저 대학 전전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부모의 극성도, 아이들의 공부량도,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막연했던 시간들
그전에도 잠시 얘기했듯이 난 대학을 또래보다 늦게 갔다. 내 또래는 91학번이다. 난 95학번이다. 십 대 중후반, 원치 않은 일들 속에서 고등학교를 못 가게 됐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방위로 군복무를 마친 후 1년 정도 입시 공부를 한 후 대학에 들어갔다.
학원도 가지 않았다. 기지촌 골목의 작은 방에서 혼자 살면서 공부했다.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학습지 하나를 받아 봤을 뿐이다. 최소한 입시 공부하는 애들이 뭘 공부하는지는 알아야 했으니 말이다. 나머지 공부는 적당한 참고서를 사서 공부했다. 수학은 포기했다. 다른 과목은 중학교 때 다져놓은 기초가 있어서 감당할 만했다.
전공은 공부를 하면서 정했다. 지도교사도 선배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이 시절, 내가 세상 소식을 접한 미디어는 신문과 라디오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때는 인터넷도 없을 때였고 컴퓨터도 없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모아보니 광고홍보학과가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전공을 정하고 나니 가야 할 대학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졌다. 그때만 해도 광고홍보학과가 있는 대학은 네 개뿐이었다.
대학이 네 개뿐인 것도, 이 대학들의 커트라인도 다 신문을 통해 알았다. 당시에는 입시 때가 되면 주요 대학과 학과의 경쟁률과 커트라인이 실렸다. 수능을 치르고 보니 J 대는 어려웠고 H 대는 가능해 보였다. M 대는 그 해에 막 생겨서 정보가 없었다. 어머니는 C 대는 모르겠는데 M 대는 알겠다면서 안전하게 지원할 거라면 거길 쓰라고 했다. 결국 중학교 때부터 가고 싶었던 영문과에도 미련이 남아 다른 대학의 지방 캠퍼스에 있는 영문과와 M대 광고홍보학과를 지원했다.
영문과는 떨어졌다. 예비 합격자 순위가 몇 위였더라? 기억도 안 난다. 장학생으로 합격한 데다가 기숙사도 된 M대로 결정했다. 그때는 1기가 헤쳐 나가야 될 험난한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짐을 싸고 M대로 가기 전전날이었던가? 영문과에서 추가 합격했다고 전화가 왔다. 늦었다. 난 간다. 미련 없었다. 그때 영문학을 전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가지 빼먹은 사실이 있는데, 거짓말 같겠지만, 전공을 정한 후 내가 세상의 흐름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입시 준비를 하는 일 년 동안 라이선스 패션 잡지를 열심히 읽었다. 진짜다. 여성용은 <마리 끌레르>, 남성은 <GQ>와 <에스콰이어>. 그렇게 잡지로, 그야말로 글과 사진으로 익힌 감각을 갖고 대학에 들어갔던 것이다.
입학이 끝이 아니었다.
OT를 갔다. 40명의 초짜가 모였다. 그런데 그중 나이 많은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럼 당연히 그 사람에게 의지한다. 불행히도 동기들은 몰랐다. 내가 얼마나 세상 경험이 없는지를. 게다가 나도 대학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우리는 낯선 전공과목과 더 낯선 교양 과목에 맨 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어떤 과목이 학점을 받기 쉽고 어떤 교수가 깐깐한지도 몰랐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교수진은 좋았다는 것 아닐까?
돌이켜보면 다들 미국 유학파였고 그것도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선 정평이 나있는 학교 출신들이었다. 그래서 우린 필요 이상으로 수준 높은 강의를 들었다. 물론 이걸 깨달은 건, 그러니까 우리 1기가 필요 이상으로 수준 높은 강의를 들었다는 건 훨씬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야 알았다. 그 대학원의 강의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으니까.
졸업을 일 년 앞두고 IMF가 터졌다. 지금도 단숨에 이해할 수도, 간략하게 설명할 수도 없는 사태인데 당시에는 어땠었겠는가? 교수도, 학교도, 학생도 다 “멘붕”에 빠졌다. 전국에 네 개 밖에 없으니 너희들은 졸업만 하면 취업은 걱정할 것 없다던 유학파 교수들은 그야말로 이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허둥지둥 댔다.
대부분은 취업을 못했고 몇몇은 대학원으로 도망갔다. 당시 대학원 시험을 보러 가면 무슨 운전면허 시험장에 온 느낌이었다. 어느 대학에나 학생들로 넘쳐났다. 유명한 대학이든, 그저 그런 대학이든 마찬가지였다. 다들 취업 안 되니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땐 그 사태가 21세기까지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인생과 주사위 게임
요즘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을 느리게 읽고 있다. 읽은 부분부터 읽어나가려고 책을 펼치면 그전에 뭔 소리를 했었는지 감을 잃어 몇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 때문에 속도가 더 느리다. 그 내용 중 주사위 게임이 나온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통계학을 배울 때, 동전 던지기와 주사위 게임의 예가 많이 나왔다. 물론 들뢰즈와는 다른 맥락에서. 통계적인 맥락에선 몇 번 이상을 던지면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 숫자 몇이 나올 확률을 계산하고 했다. 통계학을 배우다 보면 아무리 변수가 많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변수에 따라 통계 기술도 따라 복잡해지다 보니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통계학에선 우연은 필연의 적이다. 지금 일어나는 사태는 결말지어지고 완성된 현상의 부분이거나 심지어 반대 항이다. 결국 통계는 우연을 통제해 필연의 결과를 찾으려 한다. 예측 가능한 결말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 내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 이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우연과 필연, 생성과 완성은 반복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여기서 등장한다.
바라던 값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주사위를 던지다 그 숫자가 나오면 환호를 지른다. 실패는 잊히고 성공의 기억만 남는다. 게임은 끝났나? 인생은 그렇지 않다. 다시 예측 불가능한 내일이 시작된다. 결국 어제의 필연, 즉 바라던 숫자의 등장은 우연의 연쇄 속에 맞이한 하나의 완성이고 그 완성을 향해 우리가 몸을 던졌던 매일매일은 생성의 연속이다.
완성된 순간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주체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후기의 들뢰즈가 정신분석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사건을 실패와 억압, 상처로만 규정하는, 그것을 만든 오이디푸스 같은 절대적 존재의 상정이, 매일 만들어지는 주체와 매일 완성되는 주체의 생성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끝없이 완성되는 존재
요즘 딸을 보면서 인간은 이토록 끝없이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자음과 모음에서 단어로, 단어에서 문장으로, 읽기에서 쓰기로, 한글에서 다시 영어로 나아간다. 숫자에서 더하기로, 더하기에 빼기로, 빼기에서 곱셈과 나눗셈으로, 자연수의 사칙연산에서 분수와 소수로, 다시 도형으로...
틀릴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 어려워서 머리를 싸매고 이해가 안 되어서 답답해할 때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딸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 포기하고 멈추면 거기서 성장은 끝난다. 미분과 적분을 풀 줄 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대학 입시가 공부의 끝이라고, 대학만 가면 이렇게 힘들게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고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나오는 애플의 광고도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두들 공부의 완성, 그 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끝은 없다. 사람은 매일 완성된 자신을 매일 죽이고, 다음 날 아침 흔들어 깨워 살려 생성된 나로 살아가는 존재다. 삶은 이 무한한 반복,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즘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 딸을 보면서, 미국에 갈 짐을 싸기 위해 큰 캐리어를 거실에 내놓은 딸을 보면서, 그 캐리어를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 않는 딸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지난 일요일, 딸은 공부를 했다. 나중에 보니 공부할 과목과 그 시간, 순서를 정해 놓고 공부방에 들어갔었다. 거실로 쫓겨난 후 한참이 지나서, 딱히 할 게 없어서 나도 공부방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한 십 분쯤 읽으니 슬슬 잠이 왔다. 그렇다고 나가긴 민망해서 삼십 분만 버텨보자 생각했다. 딸은 미동도 없었다. 난 책을 바꿨다. 그렇게 졸다 읽다, 를 반복하며 겨우 한 시간을 버텼다. 딸은 여전히 꼼짝도 안 했다. 거실로 탈출해, 공부방의 투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가롭게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내를 보며 말했다. “독한 년. 엉덩이 더럽게 무겁네.”, 이 날 딸은 다섯 시간 동안 공부방에 있었다.
앞서 다른 글에도 썼듯이 인생을 길들인 사람은 없다. 늑대 같은 삶을 온순한 애완견 같이 만든 사람은 없다. 거친 바다와 같은 삶을 잔잔한 호수처럼 만든 사람도 없다. 그저 더 나은 내가 이 파도 뒤에 있으리라 기대하면 헤쳐 나가는 것이다. 하나의 파도를 넘은 후에는 파도가 없길 바라지만 그 바람을 배신하며 더 큰 파도가 올 때, 그 파도 또한 묵묵히 헤쳐 나가는 것이다. 헤쳐 나가다 보면 더 나은 나, 더 나은 주체가 되어 있으리라 기대하며, 계속 성장하며 탈피하며 변신하는 내가 되리라 기대하며.
사족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 대학원 덕분에 입시 당시 가고 싶었던 H대와 J대에서 공부를 해 봤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안 되어 도망친 대학원이 H대 신문방송학과였고, 후에 대학 강사를 겸업하다가 서른다섯쯤에 박사 과정을 공부하러 간 곳이 J 대였다. 인생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