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50

by 최영훈

설마설마하다 맞은 오늘

딸은 오늘 미국으로 떠났다. 한 달가량 머물다 돌아온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혼자 갔다. 물론, 당연하게도, 보호자 없이 가는 서비스를 받지만...


올 초, 아내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딸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잠시라도 머뭇거렸으면 좀 더 커서 가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티켓팅을 하고, 떠나는 날짜가 결정된 후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12월이 되니 슬슬 실감이 났다. 1주일이나 먼저 학기를 마무리하고 반장이 자리를 비운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기념품을 사다 달라는 친구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딸하고 엄마는 반 친구들 선물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흠... 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오늘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씻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캐리어 두 개와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삼촌은 조카의 가는 모습을 배웅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서 손수 운전을 해줬다. 덕분에 아내도 나도 편하게 갔다. 좋은 차는 좋은 차니까.


공항이 사람으로 꽉 찼다. 경제도, 경기도,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뉴스는 여기에 적용이 안 된다. 짐을 부치고, 카페에서 간단히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일곱 시 십 분, 오라는 장소에 가니 직원이 왔다. 출국 게이트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옆으로 아이를 데려간 직원은 별도의 게이트로 데리고 나갔다. 딸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매정한 것.


두 종류의 쿵쾅거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휴대폰이 연신 울린다. 미국에 사는 이모와 미국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감전동의 외할아버지의 연락이다. 미국에선 출발했는지를 묻고, 혹시 공항에서 못 알아볼 수 있으니 최근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가장 최근에 찍은 것으로. 아내는 오늘 아침, 처남이 찍어준 사진을 보냈다. 외할아버지는 "그 쪼만한 것이 잘 가겠나..." 하는 염려를 하셨다. 아내가 답했다. "걱정 마세요. 뒤도 안 돌아보고 갔어요."


자동차의 오른쪽으로 멀리 동서대와 경남정보대가 보일 즈음 아내가 그랬다. "아까 카페에서, 엄마 나 심장이 쿵쾅거려 설레고 흥분 돼, 그러러라고. 지금 쟤는 업 되어 있어. 다 줄 서 있는데 지만 다른 게이트로 쏙 나가지. 친구들보다 일주일 일찍 방학을 했지.. 미국에 가지."


내가 말을 받았다. "혼자서 비행기를 탈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두 가지 경우지 뭐. 하나는 걱정, 하나는 설렘... 은채는 설레고 신나는 거밖에 없는 거지... 걔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는지."


아내가 말을 이었다. "그냥, 가 본 데고, 뭐 비행기만 타면 가는 곳이고, 거기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걱정이 안 되나 봐.", "그렇지. 지한텐 그냥 좀 차비가 비싼, 멀리 사는 친척집 가는 거겠지."


새로운 지식, 낯선 영역 앞에서 두려움 대신 설레는 사람, 그런 나이가 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고 딸은 그런 사람이자 나이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나 현재는 아닌지도. 얼마 전 걱정하시는 장인어른에게 그랬다. "전 다른 걱정은 안 하는데... 한번 갔다 온 뒤로 지 혼자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방학 때마다 달랑 가방 하나 들고 떠날까 봐. 그럴까 봐 걱정입니다."... 장인어른은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하셨다.


딸은 두려움 없이 게이트를 건너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맘에 든다. 용 띠 해에 태어난 딸은 다가오는 용띠 해를 미국에서 맞는다. 그야말로 용과 어울리는 스케일이다.


무탈하게, 그거면 됐다.

좋은 뉴스도 없지만 나쁜 뉴스도 없다. 개인적으로, 그러니까 가족의 맥락도, 우리 팀의 맥락도 아닌, 순전히 개인적으로 바라던 일이 있고, 있었지만 안 이뤄져도 무방하다. 어찌 됐든, 그래도 개인적으론 좋은 뉴스도 없지만 나쁜 뉴스도 없다.


아무도 없는 빈 레인에서 명상을 하듯 조용히 자유형을 하는 듯한 일상이다. 좋은 뉴스도 없지만 나쁜 뉴스도 없다. 불만 없다. 미국에 한 달 살고 왔다고 뭐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갔던 모습 그대로 오면 된다. 그뿐이다.


사족....


굳이 걱정이 있다면 이 긴 겨울을 아내와 단 둘이, 적막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 흠...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간에도, 대화의 장에도 아이가 없는 연말연시다. 크리스마스트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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