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에서 돌아온 딸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51

by 최영훈

여행자의 운

폭설과 혹한에 시달리는 미국 곳곳의 여파가 그 시련과 뚝 떨어져 있는 텍사스의 달라스 공항에도 약하게나마 영향을 끼쳤다. 딸이 타야 될 비행기는 예정보다 삼십 분 늦게 출발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인천공항 도착이 예정됐고, 도착 전, 항공사 직원은 부산행 비행기의 시간을 좀 당길 수 있는 데 그러시겠냐고 아내에게 문의를 한 뒤 시간을 바꿔줬다.


덕분에 인천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은 세 시간에서 한 시간 안쪽으로 줄었고, 딸은 도착 예정 시간보다 세 시간 정도 이른, 다섯 시 반쯤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여행을 할 때마다 불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운이 따라주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처제, 후자는 아내와 딸이다. 난 다행히도 이 두 여자의 운명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담담한 귀국

아내는 공항에서 늘 울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을 다시 보내거나 그 사람을 두고 떠나올 때도 울었다. 처제의 산후 조리와 간호를 도와주고 한 달만에 돌아오는 장모님을 배웅나가서도 울었을 정도다. 미국의 시댁에 갔다올때마다 우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우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시어머니는 아예 공항에 배웅 나오는 걸 포기했을 정도다. 시어머니가 한국에 올 때는, 마중과 배웅 나오는 며느리는 말릴 수 없으니, 그때마다 "아, 왜 울어?"하고 억지로 웃으셨고.


그러나 아내는 딸이 떠날 땐 의외로 담담하게 보냈다. 한 달 만의 상봉에도 그럴 수 있으려나? 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담담, 덤덤, 시크한 딸 덕분인지 아내는 울지 않았다. 어쩌면 입국장까지 에스코트해 준 항공사 직원이 내민 서류에 사인을 해주느라 타이밍을 놓친 탓에, 게다가 갈 때는 두 개였는데 올 때는 세 개로 늘어난 캐리어를 얼른 받아주는 바람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번엔 울지 않았다.


입국장에 들어선 딸은 '야, 이런 윈드브레이커는 한국에선 사고 싶어도 못 사겠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화려한 윈드브레이커를 걸치고 그 안에 얇은 흰색 경량 패딩, 그 안에 스타벅스 녹색의 맨투맨 티를, 바지는 회색 조거 팬츠를 입었다. 마치 한국에 원정 경기 온 미국의 15세 이하 농구팀의 슈팅 가드 같았다. 아우~쿨 해.


아빠를 보고도 씩 웃는 게 다였다. "안 피곤해?", "응, 괜찮아.", 대화는 이게 다였다. 피곤한가 보다. 주차장이 만차라는 싸인을 무시하고 들어간 주차장에선 마침 카니발 한 대가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운 좋게 차를 세운 삼촌은 조카의 캐리어 하나를 건네받으며 농담을 던졌다. "오, 미국 가더니 쌍꺼풀이 짙어졌어.", 우리가 막 짐을 실으려 할 때 역시 우리처럼 믿음을 갖고 들어 온 중형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조수석의 창문이 내려갔다. "나가시는 거예요", "네.", 그 가족은 출국하는 듯했다.


그걸 안 가져왔다고?

감전동 외갓집에 들를까 했으나 딸은 솔직하게 피곤하다고 했다. 애가 그렇다면 그런 거니 전화로 인사를 대신하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모녀의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무한 티키타카... 딸은 기내에서 주는 저녁은 물론이고 컵라면까지 먹어서 저녁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아내와 나, 처남은 아직 식사 전이었다. 허기에 민감한 처남을 생각하면 이쯤 해서 저녁을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막 생각이 드는 찰나에 처남이 입을 열었다. "저기, 일단 저녁을 주문하고 대화를..." 아내는 주문 앱이 없는 나와 운전하는 처남을 대신해 가볍게 숯불구이치킨을 주문한 뒤 다시 수다에 빠졌다.


집에 도착 후 두 여자는 부지런히 짐을 해체했다. 난 그 사이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왔다. 집에 들어선 날 보며 딸이 말했다. "아빠, 어이없는 얘기 하나 해줄까? 나, 할머니집에 싸갔던 옷 몇 개를 그대로 두고 왔어.", "응?", 아내가 말을 받았다. "싸갔고 갔던 옷을 그 집 자기 방 서랍장에 잘 챙겨놨는데, 그걸 두고 왔다고."


아니, 어떻게 그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나 싶었으나, 딸이 가족 단톡방에 올린 사진 속 옷차림을 떠올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관광지마다 딸이 입고 있었던 옷이 다 새 옷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일 갈아입는 속옷과 양말, 잠옷만 기존의 자기 것이고, 겉옷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가 사준 티와 바지, 여기에 집에서 가져간 아우터만 바꿔 입고 다녔던 것이다. 때문에 평소에 입고 다녔던 맨투맨 티나 후드티, 바지 같은"헌"옷들은 등장할 일이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아내와 난, 괜찮다고 했다. 낯선 도시의 호텔에 두고 온 것도 아니다. 게다가 함께 체크해 보니 텍사스 집의 서랍장에 고이 모셔놓은 옷은 티 두세 벌, 바지 두세 개 정도였다. 택배 박스 하나에 다 담길 수 있는 정도니, 보내달라고 하면 그뿐이다. 치킨을 기다리며 처남에게 말했다. "야, 이제 좀 인간적이네. 열두 살짜리 치고는 너무 완벽하다 싶었거든. 난 솔직히 패드, 여권, 그리고 미국 할아버지가 사준 비싼 블루투스 헤드셋만 잊어버리지 않고 가져와도 성공이라고 봤거든. 책 따위야 뭐 사면되고. 선물이나 기념품이야 뭐 보내달라고 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자기 옷을 안 가져왔다니."


그 뒤로 처남과 난 여행지에 두고 온 물건으로 잠시 수다를 떨었다. "아, 난 말이야 홋카이도의 기차 짐 칸에 백팩을 두고 내린 적이 있어. 옷 몇 벌 든 게 다여서 포기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백팩, 한 달 만에 집으로 왔어. 혹시 몰라서 집사람이 찾아달라 부탁하면서 주소를 남겨놨었거든.", 이때 돌아 온, 백팩 속에 있던 등산용 폴라텍 오렌지색 풀오버는 아직도 입고 있다. 대학 입학 때 산 것이니 거의 사반세기가 넘었구나.


선물과 기념품

그 와중에 반 친구들, 단짝 친구들, 아빠와 엄마, 삼촌과 외할아버지 선물은 잘 챙겨 왔다. 심지어 여행지 곳곳에서 산 기념품과 기념 티셔츠, 심지어 머그컵까지. 의외로 실용적인 아빠 입장에서는 이런 걸 도대체 뭐에 쓸까 싶은 기념품도 아주 착실히 챙겨 왔다. 게다가 이모가 공부한 영어 유의어 사전과 숙어 사전, 사촌 언니가 학교에서 보던 영어책도 챙겨 왔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사준, 미국의 국립공원을 소개하는 책까지. 아니 이걸 왜 굳이.

혹시나 잊어버릴까 싶었는지 할머니 이웃집에 사는 멕시칸 신사가 선물한 텍사스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은목걸이는 아예 목에 걸고 왔으며 반 친구들에게 선물할 과자와 사탕, 담임 선생님께 드릴 작은 방향제품까지, 여하간 뭐 하나 빠진 것 없이 다 챙겨 왔다. 자기가 부산에서 싸갖고 간 옷 몇 벌만 쏙 빼고.


딸도 크게 개념치 않는 듯했다. 옷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은 건 달라스를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기전, 그 준비를 한다는 멘트를 들었을 때라고 한다. 그야말로 "현타"가 와서 함께 탄, 안산에서 텍사스 이모집에 놀러갔다 오는 또래에게 그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아마 이미 그때, 무슨 옷을, 몇 벌 두고 왔는지 어림잡아 보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좋아하고 아끼는 옷이 몇 벌 있다는 사실에 약간 속상했겠지만 어떻게든 받아볼 수 있으리라 믿고 금세 마음을 정리했을 것이다. 어차피 후진도, 돌아가기에도 불가능하니까. 역시, 멘털은 나보다 좋다.


이렇게 멘털 좋은 딸이 집에 오자마자 한 일은 짐을 정리한 것도, 샤워를 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딸이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제로베이스원의 시즌 그리팅 앨범과 굿즈 박스를 뜯어보는 것이었다. 오빠들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는 일... 그걸 얼른 하고 짐 정리, 샤워를 한 뒤 삼촌과 딸기를 먹고 난 후 이빨을 닦고 잠이 들었다. 애 다워서 좋았다.


딸이 도착한 밤, 딸이 잠든 뒤 아내는 처제와 통화를 했고, 다음 날 아침엔 시어머니와 짧은 통화를 했다. "헌"옷이지만 꼭 필요한 옷은 태평양을 건너서 올 듯. 놀랍게도 딸은 다음 날, 늦게까지 잤다. 그러니까... 열두 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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